농사와 날씨
농사와 날씨
  •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 승인 2018.08.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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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뜨거운 여름을 품에 가둔 박
뜨거운 여름을 품에 가둔 박

농사짓기 좋은 날은 연중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날씨 탓입니다. 기온과 일교차, 일조량과 강수량 등 날씨를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적정하지 않을 때 농민들은 날씨 탓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 날씨에 대응하지만, 그 자체가 날씨에 무력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류를 제외한 지구 생태계는 별로 불만이 없어 보입니다. 오랜 세월 날씨의 변덕스런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 종족의 번성에 집착하는 법 없이 그에 알맞은 생존방식을 택해왔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날씨에 대한 불만은 원초적으로 농사 탓이고, 생태계 이탈을 시도하는 인류의 업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지구는 자원이 풍성한 편이 아닙니다. 들과 산의 나무와 풀이 무성하지만 그렇습니다. 식물들은 제자리에 서서 양분의 유입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자신이 흡수하였던 무기물 등을 이웃한 식물들과 함께 재활용하면서 살아갑니다. 특히 생장에 필수적이면서도 유동성이 강한 질소 같은 성분은 늘 부족한 상태여서 자유로운 생장이 어렵습니다. 그 사이에 깃든 동물들 역시 먹잇감의 부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식물들의 비생산적인 생존방식으로 인하여 초식동물들의 개체수가 제한됨으로써 육식동물 또한 번식에 영향을 받는 것이죠.

여름내 가격등락을 거듭하는 쥬키니호박
여름내 가격등락을 거듭하는 쥬키니호박

그런데 기후조건 등으로 인해 일시적인 자원의 편향이 발생하면 놀라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특정 식물이나 동물 등의 이상증식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형성된 환경을 극단적으로 탕진해버립니다. 그 과정에서 소수에 편중된 절대 우점의 시기가 도래합니다만, 마침내는 급격한 몰락에 직면하여 개채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러한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더욱 가혹하게 진행됩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절대강자가 빠른 속도로 바뀌는 불균형이 쉼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격동은 큰 틀에서 평형을 향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바다가 잔잔하기 위하여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농업생태계와 그 주변에서는 더욱 날카롭게 진행될 뿐 아니라 편향된 방향으로 가속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자연 생태계와 달리 농업 생태계는 사람에 의해 관리, 통제되는 유사 생태계이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을 비롯한 온갖 벌레들이 이상 증식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상대적으로 과영양화된 토양환경이 원인입니다. 이를 다스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농약은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사람의 노력과 이해를 벗어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농토에서 발생합니다. 이러한 생태 파괴적인 경향은 농토의 바깥까지 퍼져나가 들과 산의 생태계마저 교란시킵니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의 질소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농업이라고 합니다. 특히 질소비료의 발명 후에는 그 증가의 폭이 훨씬 커졌다고도 합니다. 농업의 환경보존기능은 그 재배방식과 관련해서만 그 제한적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폭염을 먼저 이기는 채소들
폭염을 먼저 이기는 채소들

우리가 유례없는 폭염을 온실가스 증가의 혹독한 실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인류가 개척한 삶의 조건들의 기저를 이루는 농업이야말로 지구환경을 왜곡하는 첫걸음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상이변은 인류의 총체적인 생존방식이 초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위적인 생산과 소비, 그리고 번영이 지속적으로 환경을 악화시키는 근본원인으로 파악할 때에 비로소 환경변화에 대처할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온실가스 저감정책은 그 성패와 무관하게 대증요법일 뿐입니다. 어쩌면 생산에 대한 경제적 개념에 환경을 제약조건으로 포함하는 체제변환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변화의 직격탄은 농업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지겹도록 듣는 말이지만, 농업의 위기는 환경의 위기와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농업의 사회경제적 위상과 역할이 환경의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농업의 내적 유통과 식량자급률입니다.


유통은 농산물의 생산방식을 결정합니다. 농산물은 그 특성상 생산이 수요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적정 수요에 조응해야만 그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산물 생산은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산량의 변동이 심하고 유통기한마저 짧아 합리적인 통제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수요보다 생산량이 적을 경우에는 가격이나 대체 등을 통해 사회적 극복이 가능하지만, 생산과잉은 농민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게 됩니다. 최근 들어 과잉의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식생활의 다양화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유통에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급감과 생활방식의 변화로 농산물의 주 수요층이 가족단위에서 요식업 등 대형 외식업체로 바뀐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산물에 대한 품질 기준이 외양에 집중되고, 맛 또한 단맛 등으로 단순화 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재배방식을 제약하게 되고, 농산물의 내적 품질은 물론 환경 친화성을 현저히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농작물이 눈에 밟혀 병원을 내친 마을 어르신
농작물이 눈에 밟혀 병원을 내친 마을 어르신

여기에 농산물 수입증가에 따른 자급률 저하는 농산물의 품목을 편협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내 생산비와 수입비용의 차이는 국내 생산의 편협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건고추 시세는 수입산 대비 국내산은 그 가격에서 세 배에 달합니다. 농산물의 주 수요층을 감안할 때, 국내산의 경쟁력은 가격에 반비례할 것이 빤합니다. 농민들이 작기가 길고 재배가 어려운 고추재배를 피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습니다. 수입산에 대한 국내산의 경쟁력 하락은 이러한 경향에 의해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농산물 폭등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딱합니다. 그들이 기사로 그렇게 외치는 동안 일부 농산물은 포장 값도 안 되는 낙찰가로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말 그대로 구조적인 문제로 농업이 퇴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고 환경 보존의 기능성을 농업에 요구할 수 있을까요?


마을을 지나다가 뙤약볕을 온몸에 받으면서 고추밭에 물을 주는 팔순 노인농민을 만났습니다.
- 가물어서 물 대시네요.
- 고추값 좋다는데,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르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폭염에 대낮 물주기는 자칫 작물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 하는 것은 마음이나마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연일 대낮이면 이파리를 축 늘어트리는 고추나무는 어느 날 비라도 흠뻑 오게 되면 되살아나기도 전에 온갖 병충해에 시달리고 수확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평생 농사를 지은 분께서 그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혼잣말을 하십니다.
- 이런 날에는 물을 줘야 해요, 이렇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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