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퇴노동자조합의 가능성
울산은퇴노동자조합의 가능성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8.09.19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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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이탈리아 은퇴노동자조합을 찾아(5)

기획취재: 이탈리아 은퇴노동자조합을 찾아
1. 과소비-과노동체제 붕괴, 어떻게 살아야 하나?
2. 이탈리아 노동조합과 은퇴노동자노조
3. 이탈리아 은퇴노동자조합의 활동
4. 이탈리아 지역사회와 은퇴자 노조
5. 울산은퇴노동자조합의 가능성

 

세대별노조로 뭉친 한국의 은퇴자노조들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의 기자회견 모습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의 기자회견 모습

 

이탈리아처럼 규모와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한국사회에도 고령세대노조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2년 9월 24일 결성된 노년유니온을 시작으로 2014년 4월 29일 전국시니어노동조합이, 같은 해 9월 20일 노후희망유니온이 창립됐다.

노년유니온은 창립대회에서 사업계획을 확정하면서 기초노령연금을 2022년까지 30만원으로 인상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90%로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또 연간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실시와 국민연금 재원의 사회복지 투자,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기간 12개월로 연장, 노인일자리 사업 급여액 30만원으로 증액, 노인일자리 전담 인력 사업기간 12개월로 연장, 급여 120만원으로 인상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청년실업, 등록금, 최저임금 문제를 청년유니온과 공동대응하기로 했다.

노년유니온의 조합원은 500여 명. 서울 300여 명, 광주 200여 명이 조직돼 있다. 따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 가입하지 않았다.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은 “세대별노조로서 노년의 이익과 기존 조직노동의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조직 가입보다 독자 조직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노년유니온은 기초연금액과 대상자를 늘이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고현종 사무처장은 “기초연금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노인 일자리를 통한 소득을 합쳐서 노후 생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기초연금을 최소한 1인 최저생계비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노년 문화를 만드는 데도 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노인이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돕는 것, 좀 더 여유가 있는 노인이 자신이 가진 것 일부를 같이 나누는 것, ‘노인이 노인을 돕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집에 안 쓰는 물건이 있으면 고물상에 팔거나 버리지 말고, 물건 파는 노인들을 모집해서 동네장터에 내다 팔고 수입을 나누는 식이다. 몸이 불편해 병원에 혼자 가기 힘든 노인을 돕는 노인을 연결해주고, 혜택을 받은 노인에게 독거노인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거는 일 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준다. 고현종 사무처장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이런 문화는 자원봉사와는 개념이 다르다”며 “이런 문화가 발전하면 공제조합이나 노인돌봄은행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미래세대와의 관계도 중요시하고 있다. 노년세대들은 청년들의 세 부담으로 노후 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청년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현종 사무처장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모여서 스스로 사업 모델을 만들고, 수익의 일부를 갖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인들이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전국시니어노동조합의 창립 취지는 홈페이지 박헌수 위원장의 인사말에 잘 나와 있다. 박헌수 위원장은 “시니어세대 노동자들은 산업현장에서 인생의 2/3를 보내고 퇴직하지만 우리의 향후 인생 30년 이상은 아무도 지켜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인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으로 우리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나머지 인생을 우리 자신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지만 그마저 녹록치 않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의 노동조건은 너무 열악한데 우리가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정말 슬픈 일일 것”이라며 “시니어세대 노동자들의 인생 2막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전국시니어 노동조합이 출범했다”고 밝혔다.

 

전국시니어노동조합 창립총회
전국시니어노동조합 창립총회

 

노후희망유니온도 홈페이지에 “5563세대인 베이비부머들이 지속적으로 퇴직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고,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노력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60~65세 사이의 퇴직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사회에 내팽개쳐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이 50%에 달하고 노인자살률이 OECD 1위인 절망적 상태를 장.노년층 스스로가 단결하여 극복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의 일환으로 희망유니온을 건설했다”고 밝혔다.

 

노후희망유니온 “희망노보” 창간호
노후희망유니온 “희망노보” 창간호

 

노후희망유니온의 조합원은 2000여 명. 서울과 경기, 인천, 충북, 대전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민주노총과는 참관단체로 관계를 맺었다. 노후희망유니온은 기초연금법을 고령자 기본소득법으로 전환, 노인의료비 국가책임제 실시, 노인 주거복지 강화, 노인관련법 정비와 사전유언 등록제 실시 등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올해 중점 사업으로 대정부 교섭과 서울.경기.인천 등 최소 3개 이상의 광역시도와 사회적 교섭 타결, 은퇴자 공동체 전원마을 건설, 지역사회와 연대.협력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후희망유니온과 서울시는 지난 4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노사정책비서관, 정책지원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적 교섭을 벌여 서울시의 50+ 사업과 정책 결정 시 노후희망유니온의 참여를 보장하고, 노동조합 사무실과 조합 상근자 3명에 대한 인건비를 보조하기로 합의했다.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상임위원장은 “본교섭 이전에 작년부터 7~8차례 실무교섭을 벌여왔다”며 “전태일재단 사무실 리모델링이 완성되면 입주와 동시에 상근자들이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 인근 임야 약 80만 평 부지에 1000세대가 모여 사는 은퇴자 전원마을을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배범식 위원장은 “협업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소득도 올리고 레저와 건강도 챙기는 명품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사업은 상당히 많이 진척돼 있다”고 밝혔다.

 

울산지역 은퇴노동자조합의 모색

한국노총울산지역본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퇴직을 1년 앞둔 조합원 가운데 희망자를 모집해 20~30명씩 1박2일 퇴직자지원교육을 실시해왔다. 교육은 노사발전재단의 지원을 받아 (주)좋은일자리에 위탁해 진행했다. 김재인 정책실장은 “퇴직 10년 전이나 5년 전에 미리 퇴직 후 삶을 준비시키는 교육이 필요한데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다소 여유가 있어서 퇴직지원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엄두를 내지 못 한다”며 “법으로 사전 퇴직자지원교육을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는 정년이 연장되면서 퇴직지원교육도 신청자가 많지 않아 중단된 상태다. 김재인 실장은 지역본부 차원의 퇴직자 조직화 계획은 당장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는 본부 사무실 건물을 증축하면 그곳에 퇴직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퇴직자 공간을 만드는 게 바람이지만 당장 퇴직자 조직화에 지역본부의 인력과 재정을 쏟을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김정아 정책국장은 “퇴직자 조직 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신규노조와 현안 처리에 급급한 게 현실”이라며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활동가 선배들이 먼저 당사자 조직을 만들어 주체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노사 합의로 2014년부터 퇴직자지원센터에서 정년퇴직 5년 전, 2년 전, 당해 년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퇴직자지원교육을 해오고 있다. 노조의 요구로 만들어진 퇴직자지원센터였지만 막상 노조는 센터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임금단체협상 중심으로 운영되는 노조가 현안에 치여 퇴직자나 퇴직예정자를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퇴직 당사자들이 스스로 모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57년생 퇴직자들이 모여 만든 ‘아리울’이나 은퇴자협동조합 등이 만들어졌다. 오오회, 오륙회, 오칠회, 58~60년생 개별 회원들이 모여 ‘현대차 정년연장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정년연장추진위는 정년퇴직자도 평생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현대차지부 규정을 개정하고, 지역별 은퇴자 조합원 쉼터를 마련하라고 노조에 주문했다. 회사에는 국민연금 지급시기까지 소득공백기 없는 정년연장, 장기근속자 해외공장 기술직 파견, 정년퇴직 조합원의 재취업 및 창업 프로그램 제시 등을 요구했다.

 

현대자동차 57년생 정년퇴직자 모임 ‘아리울’
현대자동차 57년생 정년퇴직자 모임 ‘아리울’

 

현대중공업도 노사가 합의해 2013년부터 정년퇴직을 2년 반 앞둔 조합원을 대상으로 3일 동안 퇴직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노동조합 노동문화연구소가 퇴직예정자나 퇴직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해 희망자를 모집해서 실시하는 1박2일 적정기술 현장학교 교육도 따로 있다. 퇴직자와 퇴직예정자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들도 전기교육협동조합, 태양열교육협동조합, 피자교육협동조합 등이 있다. 태양열교육협동조합은 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소가 지원하는 그루경영체로 선정됐다. 조선업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10일부터 6주간 산림기능인 양성 교육과정에 들어간 영림희망단도 그루경영체다.

 

현대중공업 퇴직자를 중심으로 교육 중인 영림희망단
현대중공업 퇴직자를 중심으로 교육 중인 영림희망단

 

김호규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은 “정년퇴직한 87년 세대 노동자들을 재조직화하는 과정은 분명히 중요하다”며 “재조직화 과정의 핵심은 중앙보다는 지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라는 공동체 경험을 살려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뤄가자는 제안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공장에서 버티려고 하는 건 공장 밖 삶이 캄캄해서라며 ‘공장 밖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식 전환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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