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변주곡
추석맞이 변주곡
  • 배운태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 동구노인요양원 분회(요양보호사)
  • 승인 2018.09.23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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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엘리제

이곳 동구노인요양원에서는 암흑이 짙게 깔려 있기 전에 어르신들은 침실에서 잠을 주무시거나 텔레비젼을 보는 분이 있습니다. 요양원에서의 저녁은 다른데 보다 훨씬 일찍 잠을 잡니다. 일반 가정에서 저녁을 먹는 시간 쯤에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께서는 취침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한 통의 전화벨이 울립니다. 000 보호자입니다. 조금전 일을 마쳤고 요양원에 가서 000를 집에 데려가 3박4일 동안 명절을 지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당연히 되며 이곳 요양원에 오시는 동안 외박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하고 말을 합니다. 보호자분은 고맙습니다, 택시 타고 가겠습니다, 는 말과 함께 전화 끊김음이 들려옵니다. 000어르신이 외박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000어르신은 집사람이 온다는 소식에 맘껏 기뻐하고 있습니다.  

000어르신은 요양원에 입소한 지 얼마 안 된 분입니다. 요양원 생활 환경이 낯선 탓인지 낮이나 밤이나 아내 이름을 부르면서 배회를 합니다. 그러나 이 분은 아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분은 치매 환자 입니다. 요양원에 도착한 아내의 얼굴을 보자 누나야~ 처제, 하는 소리에 아내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아내 라고 말을 합니다. 000어르신은 아~ 아내구나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고요한 눈동자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아내의 모습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가슴 한켠이 울컥해지면서 어느새 눈가에는 눈시울이 붉어쪘습니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흐를까봐 그 분의 아내처럼 애써 눈물을 참습니다.

이런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한 택시 기사분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는데 짜증과 화를 내는 대신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네요. 그리고 말 없이 어르신과 보호자분을 태웁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택시 뒷 좌석에 앉은 보호자분에게 말합니다. 명절을 잘 보내시라고~, 너무 힘들면 이곳에 빨리 데리고 오세요, 하는 얘기도 전달합니다. 보호자분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택시를 타고 떠나는 어르신과 보호자분의 뒷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회는 새삼스럽다 못해 애처로움을 느낍니다.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밤에 들려오는 귀뚜라미의 소리는 평소보다 슬프게 다가옵니다.  같은 귀뚜라미 소리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달리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야간 근무를 하면서 변함없는 기도를 합니다. 밤에 일이 없게 해주세요, 어르신은 밤새 잘 주무시고 낙상 사고가 없게 해 주세요, 하는 변함 없는 주문을 외면서 오늘도 이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퇴근시간에는 어르신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할겁니다. 즐거운 명절을 잘 지내세요, 하는 인삿말을 남기고 야간 근무자는 추석을 맞이 하러 갈 것입니다.  

고요하고 슬프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멀어져 갑니다. 암흑속에 침묵된 고된 야간근무를 마쳤다 해도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곳 요양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거의 여성이며, 누구의 아내이며 누구의 며느리가 되는 분들입니다. 여성이라는 이름에, 며느리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명절음식 제사음식을 만들어서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속에 고된 가사노동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같은 굴레에 갇혀 살아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여성들만이 걷는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해는 떴고 퇴근시간이 다가 올수록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이곳으로 출근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간에 즐거운 명절이 되라고~, 명절후에 웃는 얼굴로 보자고~ 하면서 마음의 위안과 착잡한 심정을 교감하고 서로간에 각자 다른 위치에서 추석을 맞이합니다. 마음의 위안은 야간근무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냈다는 것을 의미하며, 착잡한 심정은 앞으로 일어날 줄 모르는 일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출근자의 마음을 말합니다. 어르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일차적으로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죠.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습니다. 웃음과 밝은 얼굴으로 어르신을 모셔야 하기 때문이죠. 웃음속에 감춰진 잔혹한 근무여건과 처우는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어르신들께서 아무 사건.사고 없이 즐거운 추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조금이나마 맘 편한 즐거운 추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화이팅 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명절이 되도록 해요!

* 이 글은 22일(토) 야간근무를 하면서 메모지에 엉망으로 기록한 글을 다음날 퇴근 후에 옮겨서 쓴 글 입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도 가을처럼 풍성한 즐거운 추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배운태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  동구노인요양원  분회(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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