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 원영수 국제포럼
  • 승인 2018.10.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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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켄 로치 인터뷰
켄 로치 감독 ⓒ위키피디아
켄 로치 감독 ⓒ위키피디아

자신의 영화와 그 이상에서 포퓰리즘, 임시직경제, 초국경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켄 로치의 생각을 들어본다.

영국 영화감독인 켄 로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유명한 영화인 가운데 한 명이다.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켄 로치는 적극적인 참여예술인이며, 그의 작품은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스페인(땅과 자유), 로스앤젤레스 청소노동자 파업(빵과 장미), 이라크 점령(라웃 아이리시), 아일랜드 독립전쟁(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복지국가의 강압성(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켄 로치의 작품은 다양하다.

이른바 “포퓰리즘”의 반란이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의 역할에 관한 많은 논쟁을 유발한 과정에서, 켄 로치는 노동계급의 의식과 신자유주의 아래서 의식의 변화를 가장 뛰어나게 말하는 이야기꾼 가운데 한 명이다.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정치활동가인 로렌조 마르실리(Lorenzo Marsili)와의 대화에서, 켄 로치는 정치적 변혁의 순간에 예술의 역할, 노동계급의 진화, 오늘날 계급투쟁의 의미, 근본적 변혁을 추지하는 데에서 좌파의 실패 등을 다룬다.

인터뷰는 로렌조 마르실리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경제위기 이후 10년 동안 초국경적 연대를 연구하는 다큐멘터리 데모스(DEMOS)의 찰영 중인 9월 16일에 이뤄졌다.

 

로렌조 마르실리: 정치적 변화에서 예술의 역할에 관한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명확하게 거대한 지정학적 변혁과 전지구적 방향상실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그런 순간에 예술적 창조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켄 로치: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진실을 말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해야 한다”고 시작하는 문장은 어떤 것이든 잘못된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예술의 다른 역할들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작가, 지식인, 예술가의 역할은 이것을 핵심원칙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와 투쟁을 길게 바라보는 것이고, 따라서 전술적 후퇴가 불가피한 경우에 이것이 여전히 후퇴임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고, 핵심원칙은 우리가 항상 염두에 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의 전술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로렌조: 당신 작품에서 인간적 요소는 단순히 이론의 표현이 아니라, 진정하게 정치적인 것을 체현하고 정치화된다. 예술이 그런 것을 보여줄 힘이 있고, 궁극적으로 거대한 경제정치적 과정의 뒤에는 인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시는지?

로치: 절대적으로 그렇다. 정치는 사람 속에서 살고, 생각도 사람 속에서 산다. 정치나 사상은 사람들의 구체적 투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까지 결정하며, 우리의 선택은 다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가족의 상호작용은 엄마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어떤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상황,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 등과 관계있다. 경제와 정치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맥락과 연결되어 있지만, 이 삶의 세부적 내용은 아주 인간적인 것이고, 자주 웃기거나 슬프기도 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순과 복잡성으로 가득 차 있다. 함께 작업한 작가들에게 일상생활의 개인적 코미디와 그런 삶이 이뤄지는 경제적 상황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매우 중요했다.

로렌조: 그러니까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경제적 변화와 인간 행동 사이에는, 특히 집단적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켄 로치: 노동자의 예를 들어보자. 노동자 가족은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개별적으로 그들은 권력이 없기 때문에 힘이 없다. 그들은 단순히 그런 상황의 창조물이다. 반면 나는 집단적 힘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상황이 어려워지는 지점이다. 집단적 힘이 즉각적으로 명백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 모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공중에 주먹을 휘두르거나 전투적 행동을 호소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조잡하고 멍청한 짓이다. 이것은 항상적인 딜레마이다. 경제정치적 상황에 의해 비극적으로 파괴된 노동계급 가족의 이야기를 말하면서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어떻게 말할 것인가?

로렌조: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암울한 영화에서도 여전히 희망적인 것을 발견한다. 이 영화에서 국가의 강압기구를 목격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인간적 연대의 강건함을 보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돕고, 다니엘 블레이크가 구직센터 외벽에 그래피티를 쓸 때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춰서서 박수를 친다. 이 의미는 우리가 아직 완전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변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모든 삶의 상품에 대한 저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켄 로치: 그렇다, 그것이 중산층 평론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노동자들은 오줌을 싸면서도 웃는다. 전쟁터의 참호에서도 신랄한 코미디가 있고, 심지어 가장 암울한 장소에서도 저항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특히 푸드뱅크가 늘어나고 있고, 자선음식이 제공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상반된 두 가지 얼굴이 드러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한 여성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여주인공에게 음식조각을 내밀면서, “여기 자선음식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당신의 쇼핑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한다.

한편에는 관대한 배려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국가가 존재한다. 국가는 자신이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음을 알면서도 가능한 한 가장 의식적으로 잔인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신경분열 상태에 빠져있고, 우리가 연대를 조직할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로렌조: 흔히 전통적인 경제적 소외가 국가에 대한 소외로 변형된 것 같다. 이것이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 심지어 브렉시트와 같은 현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주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외에도, “아무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도 있다.

켄 로치: 그렇다. 우익 포퓰리즘이 실제로 보여주는 분위기는 1920년대와 1930년대와 유사하게 좌파의 실패라고 나는 생각한다. 극우 정당들은 아주 간단한 대답을 가지고 접근한다. 당신의 이웃이 문제다. 당신의 이웃은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고,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당신의 이웃이 당신 집에 살고 있다. 이런 식이다. 진짜 위험은 이런 논리가 대중매체의 지지를 받고 있고, BBC 같은 공영방송에서 용인하고 촉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BBC는 나이젤 파라지[영국독립당UKIP 지도자]와 그 일당이 원하는 시간에 그들의 방송시간을 배정했다.

로렌조: 당신 작업의 초점은 언제나 노동계급 연대였다. 당신은 전후 사회적 자본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 도래까지의 시기를 경험했는데, 이 시기 이후 계급적 연대가 어떻게 됐다고 보는가?

켄 로치: 가장 큰 것은 노동조합의 힘이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그들은 공장, 광산, 항만 등과 같은 사회적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힘이 강했다. 그런 생산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은 쉬었다. 그러나 그런 오래된 산업은 죽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훨씬 더 파편화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가 생산을 멈출 수 있을 때 가장 강력하다. 그러나 생산의 현장에서 조직되어 있지 않으면 당연히 우리는 더 취약하다. 문제는 현재 생산이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세계화로 인해 우리 노동계급은 현재 극동이나 라틴 아메리카에 존재한다.

로렌조: 배달업체에서 자전거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같은데.

켄 로치: 그렇다. 아니면 프랜차이즈 소속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른 “자영업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이다. 노동계급 조직화의 커다란 문제이다.

로렌조: 여전히 계급개념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때로 비참하다고 느끼면서도 자신을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켄 로치: 나는 계급이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이 다른 종류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대로 단지 계급의 형태가 변할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력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고, 과거보다 더 집약적으로 잉여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로렌조: 그것은 오늘날 커다란 과제 가운데 하나다. 자신을 계급의 일부를 생각하지 않는 파편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투쟁을 다시 시작하는 것.

켄 로치: 그것은 우리 이해 방식에서 큰 도전이다. 그것은 과거에 아주 재미있었다. 최근에 일본에 가서 나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던 아주 예의바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계급과 투쟁을 이해할 필요에 대해 역설했다. 그런데 아주 예의바른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 영화를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내가 “정말 그런가요, 왜죠?”라고 묻자 그녀는 “그들이 생각을 바꾸게 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하지만 그게 제가 말한 요점이죠! 그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아요. 그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데 충실하고, 그들은 설득되지 않아요. 그들은 제거돼야 한다구요!”라고 대답했다.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한다는 관념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을 때에 아주 설득하기 힘들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맞서 싸워야할 사회민주주의의 끔찍한 유산 가운데 하나다.

로렌조: 당신의 영화 팬들이 당신에게 말하면 당신이 자신들의 관심을 고려해줄 것이라고 믿을 때에는 그것은 사회적 통제의 효과적 형태다.

켄 로치: 그래서 우리는 이행기 요구라는 개념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이해에 기초한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요구들을 제시해야 한다.

로렌조: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되는데, 옛날에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한 것을 알게 됐는데.

켄 로치: 잊어버렸다.

로렌조: 여기 영국에서 유럽이 별로 논쟁거리인 적이 없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갑자기 브렉시트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유럽연합에 대해 말하고 있고, 축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말하는 주제가 되었다. 초국경적 민주주의를 건설할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이미 너무 늦은 것인가?

켄 로치: 진짜로 답을 모르겠다. 그러나 명백하게 국제연대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내에서 어떻게 국제연대를 조직할 것인가? 모르겠다. 유럽연합의 구조는 정말로 난해하고,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명백하게 모든 변화는 모든 정부가 승인해야 하고 우리 모두 이 과정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다 알고 있다. 분명하게 우리는 다른 원칙에 기반한 다른 유럽이 필요하다. 공동소유, 계획, 평등한 경제, 지속가능성, 그리고 일반적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원칙에 유럽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기업이 우선이고 이윤이 우선인 상황에서, 법률제도가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한 그런 유럽은 불가능하다.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야니스 바루파키스[그리스 전 재무장관]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가 옳다고 확신한다. 그를 신뢰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출처: international viewpoint

번역: 원영수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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