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택시 드라이버 ‘J’, 웃으며 달릴 울산 도로 꿈꾼다
일흔의 택시 드라이버 ‘J’, 웃으며 달릴 울산 도로 꿈꾼다
  • 어마루 시민기자
  • 승인 2018.10.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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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택시를 두고 소위 ‘도로 위의 여포’라는 좋지 않은 수식어가 들러붙지만, 자이언 티(Zion.T)의 <양화대교> 속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는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세상 도로 위를 거닐고 있는 택시 대다수의 주인이 ‘아버지’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루가 끝난 자정 무렵이면, 텅 빈 도로에는 붉은색 ‘빈 차’ 글씨가 적힌 택시들이 한 가득 돌아다닌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누가 저 많은 아버지들을 갈 곳 정해지지 않은 길 위로 쏟아냈나” 싶어진다. 낮이라고 다르진 않다. 높아진 명도와 늘어난 차 덕에 택시의 존재감은 한층 희미해진다.

그렇게 한산한 오후 시간이면 울산 택시들은 이곳저곳에 장사진을 이루고 손님을 기다린다. 울산 태화강역도 매한가지였다. 여전히 무더운 9월의 태양을 피해 그늘에 모인 택시기사에게서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택시기사’라는 이름의 부정적인 면을 뜯어낸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40년 가까이 택시기사로 삶을 산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부디 이름과 얼굴은 밝히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지만, 한산한 태화강역과 울산의 복잡한 거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그동안 ‘도로 위의 여포’라는 수식어가 달린 택시기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말하지 못할 사정으로 부디 얼굴과 이름만은 공개하지 말라는 일흔의 택시기사를 ‘J’라 칭하도록 하겠다.

 

태화강역에서 손님을 기다린다는 일흔의 택시기사 _J_
태화강역에서 손님을 기다린다는 일흔의 택시기사 _J_

 

보통 손님 태우러는 태화강역에 많이 오시는 편인가요?

태화강역에 있을 때도 있고, 울산공항에 갈 때도 있어요. 기사들마다 정해진 경로가 있어서 가는 곳만 가요. 저는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는 일절 가지 않거든요.

 

택시를 타는 손님이 많이 없나 봐요. 지금 거의 12대는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태화강역은 울산 내에서도 오고 가는 손님이 꽤 많은 곳 중 하나인데도 이정도네요.

지금은 손님들이 기차역에 올 시간이 아니에요. 아마 오후 5시나 6시쯤 되면 손님이 물밀듯 나올 거예요.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몇 해 전부터 그렇긴 했지만, 중공업 여파도 크고. 예전 같지가 않아요.

 

예전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제일 처음 택시를 모셨을 무렵에는 어떠셨어요?

그때야 당연히 차도 별로 없었으니 좋았죠. 제가 전라남도 고흥 출신이에요. 80년도 초에 울산으로 시집 온 여동생을 따라 울산에 처음 왔어요. 그 무렵에 아직 뚜렷하게 무얼 할지는 정해둔 게 없었는데. 우연찮게 택시 모는 일을 하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유망직업이었으니 망설임이 없었어요. 길 다니면 다들 태워달라고 난리였고요. (언제 처음 택시를 모셨어요?) 1982년 초에 택시 면허를 취득했으니 햇수로는 36년 됐네요. 거의 40년이네요. 서른 즈음에 처음 몰았을 때, 세월이 흘러서 제 나이가 벌써 일흔입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셨겠어요. 36년 동안 운전을 하셨으니 위험한 순간도 없잖아 있었을 것 같아요.

없진 않았죠. 그래도 지금까지 무사고로 운전을 하고 있어요. 뿌듯한 기록이죠. 관할 경찰서에 얘기해서 ‘무사고 메달’이라도 하나 받으면 좋을 텐데. (주변 기사 분들도 비슷한가요?) 아주 없지는 않지만, 드물죠. 자랑스러운 기록이에요.

 

36년이면 울산 내에서도 이만큼 오랫동안 택시를 탄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어요.

저보다 오래한 사람이 있어요. 이름은 안 밝히겠는데, 동갑인데 햇수로는 3년 더 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넘버 투 정도는 된다는 말이겠죠.

 

36년의 세월에도 양 손은 운전대 가지런히 올려둔다. 방심 운전은 없다
36년의 세월에도 양 손은 운전대 가지런히 올려둔다. 방심 운전은 없다

 

대개 ‘택시’에 대한 이미지는 ‘도로 위의 무법자’라는 인식이 강해요. 현업에 계신 분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술집에 갔더니 옆자리에 택시 운전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빙빙 돌아서 돈 더 받은걸 자랑처럼 이야기하더라고요. 정말 창피한 노릇이에요. 이것 말고도 특정 지역만 골라서 가고, 버스정류장 기웃거리며 손님 태우려는 기사들 보면 개탄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일부 택시 기사들 때문에 억울한 면이 많죠. 사실 버스든, 택시든, 자가용이든 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차에 탄 사람의 인격이 문제에요. 사람 됨됨이 문제가 커요. 우리 애들한테도 똑같은 얘길 해요.

 

자녀분들 얘기가 나왔는데, 아버지가 택시 기사가 등장하는 노래 중에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 덕에 택시기사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식 분들은 아버지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비슷해요. 고마운 마음도 있고 안쓰러워하기도 하죠.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제일 중요해요. 애들한테도 그걸 늘 강조했고요. 그래서 우리 큰 싸움 없이 잘 자랐어요. 남 얘기 잘 들어주고, 입에 올릴 말은 생각 많이 하고 말하고, 늘 배려하고 양보하라고 얘기하죠.

 

사실 택시기사 분과 관련된 에피소드에는 ‘말’이 빠지질 않는 것 같아요. 예컨대 정치색이 너무 강한 기사님과 관련된 일화처럼 말이에요.

꼭 한 명씩은 있어요. 그게 우리 애들한테 늘 강조했던 “입에 올릴 말은 생각을 많이 하라.”는 것과 맥을 같이 하죠. 무슨 대통령이 치매가 걸렸니, 라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과 만나면 이야기를 듣는 척 마는 척하고 넘겨야죠. 상대해봐야 피곤하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만약 지금 젊은 사람들이 택시 운전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면 어떻게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말리고 싶죠.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래도 무시 받는 건 사실이죠. 그래도 요즘 택시 기사들 중에는 꽤 번듯한 회사 퇴직한 사람도 있어요. 아는 분 중에는 예비역 중령도 있고요. 계속 말하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개인의 인격만 갖춰지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택시 기사로 일하면 길에서 세월을 보낼 각오는 해야겠죠.

 

대략 계산을 해보면, 36년 동안 주 6일, 하루 12시간 동안 택시 운전을 했다면, 거의 15년을 길 위에서 보낸 셈이 되세요.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딱히 없어요. 택시 운전사가 된 특별한 계기도 없었지만, 제 분수에 맞춰 살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저보다 더 오래 운전을 한 사람도 있고, 나이 많은 형님들도 여전히 운전을 하세요. 이렇다 할 정년도 없다보니. 언제가 마지막이 될 진 모르겠네요. 예전에 울산에 오면 웃으면서 와서 울면서 간다는 말이 있다고 했어요. 교통이 너무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저라도 운전을 잘 해서 정감 있는 도시가 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인터뷰어=어마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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