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레이가 지나간 간월재를 오르며
꽁레이가 지나간 간월재를 오르며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10.10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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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꽁레이 큰비에 간월재 휴게소 아래에 심각한 산사태가 났다. 경사도 가파르고 추가 산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꽁레이 큰비에 간월재 휴게소 아래에 심각한 산사태가 났다. 경사도 가파르고 추가 산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예정된 산행이었지만 꽁레이 태풍 소식에 산행 약속이 지켜질지 어떨지 불안했다. 전날 오전까지도 비바람과 창문을 때리는 세찬 비에 알 수 없었다. 150밀리미터까지 쏟아질 수도 있다는 침 튀기는 뉴스와는 달리 강가 물은 강변 광장 잔디까지는 차오르지 않았다. 강둑 너머 보호수 팽나무 전체가 다 보였다. 삼호교 위는 강과 사람이 다니는 길 구분이 없이, 물의 강을 이뤘다. 늪지를 채운 물길이 물가 식물들과 경계도 없이 이리저리 들어차고 있었다.  
  
다음 날은 태풍으로 모든 것이 다 쓸려간 듯 청명한 하늘을 이고 흰 구름이 둥둥 떠 다녔다. 복합웰컴센터에 도착하니 이름도 생소한 ‘산악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몸 앞뒤로 번호판을 달고 산악마라톤 참가자들이 기념사진도 찍고 몸을 풀고 있었다. 높아진 하늘을 배경으로 신불산과 간월산이 저 멀리 보이는데 소란한 행사 음악이 온 산을 다 덮었다. 이 사람들하고 섞였다간 복잡하겠구나 싶어 서둘러 올라갔다.  

복합웰컴센터에서 올라가는 길은 태풍에 찢겨진 낙엽송, 소나무, 참나무 가지들로 뒤덮였고  찢긴 상흔들이 내는 냄새
는 오히려 싱그러웠다. 도토리며 밤이며 익어 달린 것들이 바닥에 다 뒹굴고 있었다. 파괴와 재생. 전복과 새로운 활력. 자연 순환은 아무리 상흔이 깊어도 금세 다시 재생에너지로 넘쳐날 것이다. 잠시 쉬면서 산밤을 몇 개 주워 까먹었다. 작지만 단단한 육질이 내 이빨에 탄력 있게 깨어졌다. 산길은 큰물로 편편한 곳 없이 울퉁불퉁하고 아예 산길 일부는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온 비를 다 추스르지 못한 골짜기는 길 따라 물이 지직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시차를 적응하지 못한 몸은 잠 부족으로 고단했지만 약속한 산행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큰비에 쏟아져 내려오는 맑은 물에 손과 얼굴을 씻으면 다시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고요한 산길이 임도를 만나는 장소에는 대목을 알아본 아이스께끼 장사가 자리를 잡았다. 콘크리트 임도로 들어서자말자 앞뒤로 번호판을 단 선수들이 하나, 둘 아니면 삼삼오오 올라오고 있었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저 사람들은 오르막길을 뛰어간다. 완전 체력 강화훈련의 끝판왕이다. 벌써 참가자들은 땀범벅이 되어 짧은 팬츠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 있고,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그것이 자기 몸과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저리 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뛰는 체력을 자랑하며 속도를 내며 달려 올라가는 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저속으로 올라가는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다른 이보다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쾌감은 우월한 경쟁유전자다. 산악마라톤 대회라고 번호판은 달았지만 참가선수 중에는 걷는 속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자녀를 낀 엄마, 아빠 혹은 할아버지와 손자, 할머니도 같이 올라가는 가족과의 산행이다. 어린 손자가 앞장서며 자연스레 오르는 대가족 산행은 보기에도 참 아름답다. 평온한 가정환경에서 저 아이에게 산행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하는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같이 오르면서 말과 감정을 교환하는 산행에, 속도는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갓난아기를 메고 올라가는 아빠, 애견을 앞장세우고 온 사람들. 산행풍경도 아주 다채롭다.  

들어오면서 본 지역발전위원회 명의로 걸린 ‘케이블카로 지역경제 살리자’는 펼침막은 아직 빈틈만 있으면 케이블카를 그냥 밀어붙일 속셈으로 엿보인다. 철제박스에 안에서 풍경을 내다보며 10분 안에 오른다면, 힘든 과정을 함께 하는 끈끈함과 유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7부 능선 오르는 길에 벌써 반환점을 돌아 그 가파른 길을 뛰어 내려가는 참가 선수가 있다. 1등에 대한 짜릿한 흥분감인지, 내리막길에 몸 하중까지 실려 쏜살같이 내려갔다. 천천히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길을 피해줘야 했다. 바닥 곳곳에 거친 돌들이 있어 아주 위험해 보였다. 얼마 안 있어 뒤에 따라 붙은 사람들도 쏜살 같이 내려갔다.

우리 산행팀에는 아직 회복기에 있는 환자가 한 명 있었다. 암수술을 받은 지 약 2개월 되는 사람이다. 산행을 거의 해보지 않은지라 걱정도 했지만 같이 해준 관심과 보살핌으로 끈기 있게 간월재까지 무사히 올랐다. 그 감격과 성취감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 당사자가 가장 벅찰 것이다. 아직 다 피지 않았지만 태풍이 지나간 화창한 가을 햇살을 받은 억새를 배경으로 자부심 넘치는 표정들을 사진에 담았다.

간월재 급경사에 지은 휴게소 데크 아래에는 심각해 보일 정도로 많은 토사가 흘러 내려와 있었다. 지자체가 영남알프스 이용자들을 끌어 모으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보존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줄어든다는 생각, 언제 이 정복욕에 넘치는 산행문화가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바뀔까도 생각했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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