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을 공공도서관에 비치하자
친일인명사전을 공공도서관에 비치하자
  • 최병문
  • 승인 2018.10.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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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문 정치칼럼 ‘사람세상’

세상을 바꾸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시민들의 몫이던가. 올해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달고 해상사열에 참여하려다 우리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참가 취소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위대하다. 이번 전범기 퇴치 운동은 친일인명사전 성금 모금 캠페인을 생각나게 한다. “제2의 독립운동 차원에서 10만 독립군을 모집하자”는 격문과 함께 2004년 새해 벽두에 월드컵 축구 붉은 악마들 응원에 비견되리만치 뜨거운 자발적 성금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마이뉴스의 도움을 받아 ‘현대판 독립군’이라 불린 국내외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정성을 한푼 두푼 모아 국회가 좌절시킨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한 군자금을 결국 확보하게 된다.

여기서 ‘친일’은 단순히 일본 문화나 일본인을 좋아하고 이에 친근감을 느끼는 친일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특히 ‘친일파’라는 단어는 ‘일본과 친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넘어서 사회지도층 세력으로서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해서 일본의 침략 의도를 적극적으로 도운 반민족 행위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서 일제의 조선통치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부를 쌓고 권세를 누린 자들이다.

8.15 해방 후 제헌국회는 반민특위를 설치했으나 강제 해체되고 친일파는 전혀 청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친일파 자신은 물론이고 그 후손들까지 장관이 되고 재벌 회장이 되고 대학총장이 되고 언론사 사주가 되어 이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했다.

역사적폐를 청산해야 대한민국의 뒤틀린 정치지형과 사회문화를 바로 잡을 수 있음에도 역대 정권들은 그 과제를 철저히 외면했다. 친일인명사전은 결국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성금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친일행위 진상 규명을 호소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요구에 대해 참여정부 당시에도 한나라당 같은 야당은 물론이고 행정자치부와 국무조정실 등 정부 부처들까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복지부동했다. 급기야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결위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요구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관련 예산 5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이 사실이 인터넷 공간에 알려지게 되면서 뜻있는 국민들은 분노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차라리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우리가 모으자”며 오마이뉴스를 통해 성금 모금 캠페인을 주도했다. 당시 행자부는 법적 절차를 문제 삼아 모금 중단 요구 공문까지 보내며 방해했지만 민심의 광야에 들불이 붙었고 채 열흘도 되지 않아 5억원이 넘는 성금이 모였다.

1966년 출간된 임종국 선생의 저서 <친일문학론>은 한국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친일의 흠결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스승인 유진오와 부친의 친일 행적까지 모두 실명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한국 지식인 사회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 침묵하였다. 90년대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 친일 문제는 철저한 금기사항이었다. 지배세력 대부분이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면에도 1989년 타계할 때까지 임종국 선생은 폐기종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뒤져 나중 친일인명사전의 기초자료가 된 친일인명 카드 1만2000장을 육필로 써서 남겼다.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고 연구소는 오랜 세월 각종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조사하여 각계 전문가들 검증과 증언 등을 거쳐 친일인명사전을 집필하였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거액의 자금은 물론이고 연인원 1천명 이상의 전문 고급인력이 동원되어야하는 엄청난 작업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이 완간되었는데 총 3권 3000여쪽의 분량으로 친일인사 4389명의 친일행적 기록을 담고 있다.

친일파라면 을사오적 정도밖에 모르던 일반 국민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중용하고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사실상 친일파였고 박정희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된 골수 친일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민족지사이며 대문호라 존경했던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미당 서정주 등까지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역사정의 실현에 공감한다는 공식 입장에도 지금까지 정부와 교육계 공히 친일인명사전 공공기관 배포 비치에는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내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되는 해이다.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통한 단죄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에도 부합하느니 만큼 독립운동가와 함께 친일파 인사들도 가감 없이 교육해야한다. 이미 2011년 광주를 필두로 서울과 경기도가 관내 모든 중고교 도서관에 보급했고 여타 시도 교육청도 올해 대부분 보급할 예정이라 한다. 진보시장 진보지방의회 진보교육감이 탄생한 울산이 예외일 수 없다. 친일파 오적 중 한명으로 꼽히는 노덕술을 위대한 울산시민으로 추대할 뻔했던 우리 울산 아닌가. 울산 관내 모든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보급 비치하자. 제2의 반민특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실을 알리는 노력은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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