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이라는 말은 위험하다
공복이라는 말은 위험하다
  •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승인 2018.10.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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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

공무원 역시 일하는 ‘노동자’로 불리길

한 시대를 풍미한 단어가 있다. 그 단어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사회에서 매장 당했으며, 국가권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의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 단어는 바로 ‘빨갱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말 많으면 ‘빨갱이’란 이유로 고문을 당했고, 죽임을 당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고 남북관계가 변화하면서, ‘빨갱이’ 대신 ‘종북’이 등장하더니 이젠 이마저도 시들해지고 있다.

하나의 사회 집단을 단순 명료하게 지칭하며, 상대편에 대한 일반화로 부정적 의미를 덧씌우며 탄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한국노총은 한국노총이라 그대로 부르면서도 민주노총에 대해서 보수 언론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민주란 의미를 없애고자 ‘민노총’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같은 수법이다.

이렇듯 단어는 하나의 집단을 규정하고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더불어 제임스 W. 페니메이커의 <단어의 사생활>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며 이를 두고 ‘언어지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한 사람의 개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 단어 하나로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린 집단이 있다. 바로 ‘공복’이라 불리는 공무원들이다. 하, 이 단어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쓰이는지는 말하기에 입이 아플 지경이다. 보수와 진보를 통틀어 대놓고 ‘공복’이라는 단어가 거리낌 없이 쓰이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이유를 가지고 이를 ‘공복’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것은 공적 이익의 우선,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공정성의 유지를 뜻한다.

그런데 ‘공복(公僕)’이라는 단어에서 복(僕)은 종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노비를 일컫는 말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란 의미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결국 공복이라는 단어는 공무원을 노예로 격하시키는 위험천만한 단어다. 종에게 무슨 노동기본권이 필요하고 정치기본권이 필요하겠는가? 공무원을 함부로 규정하는 이 ‘공복’이라는 단어가 퇴출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공무원의 기본권은 이 단어의 규정성에 의해 노예의 처지를 못 벗어날 것이 뻔하다.

더불어 공복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정치인들 역시 공무원은 ‘공공의 노예’라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공복이라고 낮춰 부르는 것 역시 마뜩찮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숨기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갑오경장을 통해 신분제 사회가 철폐되었음에도 아직도 종을 의미하는 단어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넓게 퍼진 데는 마땅히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무원들의 그릇된 행태와 일부 권력기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복무한 데 대한 반대급부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공무원 전부를 종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은 이제 없어져야 할 때다. 적어도 하위직 공무원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공무원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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