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글씨를 치료하는 글씨교정 클리닉 전홍숙 원장
아픈 글씨를 치료하는 글씨교정 클리닉 전홍숙 원장
  • 어마루 시민기자
  • 승인 2018.10.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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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루에 손으로 제대로 된 글을 쓸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자잘한 메모나 일과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이다. 설령 글 쓰는 일을 하더라도, 펜을 쥔 검지, 중지, 약지에서 제대로 된 문장을 뽑아 낼 일은 드물다. 그러니 자기 글씨가 좋은 글씨인지 나쁜 글씨인지에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제대로 몇 문장이라도 쓰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낯선 글씨들이 종이 위에 남는다.

이제 인터넷에 ‘손글씨 폰트’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글씨를 내 글씨마냥 남길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가 보정해준 ‘예쁜 글씨’들이 우리들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가 직접 쓴 글씨가 중요해지는 순간들은 존재한다. 한 기업인은 계약서에 서명하는 글씨를 보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글씨에 그 사람의 인격이 담긴다는 이야기에 뿌리를 둔 판단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은 글씨도 아프다고 한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악필’이라는 말로 끝을 낼 것이다. 아픈 글씨라는 말은 곧 치료를 해야 하는 글씨라는 의미가 된다. 사람의 몸과 정신의 아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 병원이라면, 사람의 글씨에 담긴 아픔을 치료하는 곳이 ‘글씨교정 클리닉’이다. 우리도 그동안 도외시했던 글씨는 과연 어떻게 치료될까. 글씨를 치료하는 ‘훈민정필 글씨교정 클리닉’ 전홍숙 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10사진1 훈민정음 글씨교정 클리닉 정홍숙 원장
훈민정필 글씨교정 클리닉 전홍숙 원장

 

교육원 입구에 글씨교정 전과 후를 사진으로 찍어서 걸어두셨어요. 자세히 보면 연령대도 초등학생부터 나이 많은 어른까지 다양한 편이네요.

지금 수강생 가운데 절반은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성인들이에요. 글씨 교정은 나이를 불문하고 저마다 다른 이유로 찾아오기 때문이죠. 그나마 글씨교정 전도 괜찮은 편이었던 사람들 위주로 걸어두었어요. 조금 더 글씨가 안 좋았던 분들은 상담파일 안에 넣어두었죠.(웃음)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의 편차는 얼마나 차이 나는 편인가요?

자기가 메모로 남긴 기록을 시간이 지나서 봤을 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계셨어요.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몇 글자만 써도 팔이 아프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대개 펜을 잡는 것부터 잘못 잡는 경우가 많아요. 펜을 쥐는 자세만 제대로 교정해도 글씨를 훨씬 잘 쓸 수 있어요. 분명 사람들은 여기에 매월 수강료를 내고 강의를 들어요. 그렇지만 사소한 것부터 고쳐나가면서 사람들이 글씨를 편하게 쓰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걸 보면서 나도 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클리닉(Clinic)"은 ‘특정한 병이나 장애 따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요. 그 앞에 글씨교정이라는 단어가 붙었는데, 그렇다면 ‘아픈 글씨’라는 게 있다는 말인가요?

네 있어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 심경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한 번은 글씨를 보는 순간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제가 클리닉을 열기 전부터 글씨교정 할 곳을 찾았다고 말했어요. 화가 나서 쓰는 글씨는 금방 티가 납니다.

 

그렇다면 좋은 글씨와 나쁜 글씨라는 게 있을 수 있나요?

사실 자기 마음에 들면 그만이죠. 글씨가 좋고 나쁨은 상대적인 의미에요. 하지만 분명 객관적으로 좋은 글씨라는 건 있어요. (제가 한 번 글씨를 써보면 어떨까요? 제 글씨를 기준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겠어요?)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해요. 힘을 어떻게 주고 빼는지, 얼마나 일정하게 힘을 주는지 등을 알 수 있어요. (제 글씨는 어떤가요?) 힘을 많이 주지 않고 일정한 힘으로 쓴 편이네요. 하지만 육상으로 따지면 단거리에 특화된 글씨에요. 올바르게 글씨 쓰는 법을 배우면 하루 종일 써도 팔이 아프지 않아야 해요.

 

기자의 글씨로 좋은 글씨의 기준을 파악해보았다
기자의 글씨로 좋은 글씨의 기준을 파악해보았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좋은 글씨’라는 건 어떤 건가요?

균형이 좋아야 해요. 띄어쓰기 간격, 음절 간격, 초성‧중성‧종성 간의 균형, 문장 전체의 높낮이의 균일함 등이에요. 이것들이 충족됐을 때 좋은 글씨가 됩니다. (한 번 ‘울산저널’이라는 단어로 예시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써도 균형을 맞춰야 해요. ‘고’, ‘가’, ‘구’는 ‘ㄱ’의 모양이 저마다 다릅니다. 함께하는 모음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지요. 저도 추석부터 최근까지 집안에 일이 많아서 손을 제대로 못 풀었는데, 글씨도 지속적으로 손을 풀어줘야 좋은 글씨가 나와요.

 

정홍숙 원장이 쓴 "울산저널"
전홍숙 원장이 쓴 "울산저널"

 

보통 원래 가지고 있던 글씨를 버리고, 소위 말하는 좋은 글씨로 바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모든 교정이 그렇겠지만, 얼마나 자기가 가진 습관을 빨리 버리느냐에 달려 있어요. 글씨 쓸 때 손의 위치, 펜을 쥐는 방법. 거기에 자음, 모음을 일일이 다 연습해야 합니다. 보통 7개월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글씨교정 클리닉을 개원하기 전에도 관련된 일을 하고 계셨나요?

결혼 전에는 아모레퍼시픽 기획실에서 경영분석 일을 했어요. 그 뒤에는 잠시 사교육에 몸을 담았고,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전업주부였어요. 제가 글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글씨교정을 받게 되었어요. 그 뒤로 우리 가족들도 다 그렇게 글씨교정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지금 수강생들이 느끼는 감정을 저도 느꼈죠. 거기에 좋은 글들을 쓰면서 더욱 좋은 기운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도 시간이 되면 울산대학교 대학원이나 울산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노자>, <장자> 강의를 들었어요. 지금까지 10년 정도 사천에 계신 스님께 꾸준히 말씀도 듣고 있고요.

 

인문학과 글씨교정. 엮일래야 엮일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강의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문학이 중점에 두는 건 알고 있어요. 인문학은 늘 사람과 사람이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죠. 앞서 말한 것처럼 글씨도 좋은 글씨, 나쁜 글씨의 뚜렷한 구분점이 없어요. 저는 기계적으로 수강생들에게 예쁜 글씨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가진,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내가 아는 지식들을 수강생들이 뺏어가서 상처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어=어마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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