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재, 금빛억새 물결 속에 담긴 바람과 노을빛
간월재, 금빛억새 물결 속에 담긴 바람과 노을빛
  •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승인 2018.10.18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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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노을빛에 물든 간월재 억새군락지
노을빛에 물든 간월재 억새군락지

 

바람도 지나고, 구름도 지나고, 사람도 지나다니는 간월재, 모두의 길인 그 곳은 가을이면 억새가 절정을 이룬다. 여름 날 초록 융단 같은 억새군락지가 차가운 기운이 돌면 보슬보슬 은빛으로 피어나 금빛으로 빛난다. 그 반짝임을 만나러 아득바득 줄줄이 산으로 오른다.


주말이면 산 초입마다 관광버스와 자가용이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북적임과 산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들어 성수기 주말에는 되도록 산으로 가지 않는다. 허나 그 은빛 물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 평일 낮에 오래된 벗과 함께 간월재로 향하기로 했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꺄르륵 한다는 여고생 시절부터 인연이 된 벗이다. 그녀는 산이란 멀리서 보는 것, 올라갈 일이 없는 것으로 여겼는데 그럼에도 산행을 함께하자는 제안에 뜨뜻미지근한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녀가 산행을 하겠다고 응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인고의 공시생 시절을 탈출한 합격생이었고 발령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놀고 싶고, 예쁘게 꾸미고 싶은 청년의 기본 욕구들을 모두 눌러놓고 공부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합격한 순간 모든 것들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딱히 어떻게 놀아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필자에게는 평일 낮에 시간이 나는 친구는 그녀뿐이었고 그녀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다. 학창시절 그렇게 산행을 같이 가자고 해도 꿈쩍 않더니 제안에 응해준 것이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산행중인 오래된 벗, 김미영(31)
산행중인 오래된 벗, 김미영(31)


산행을 가기로 한 날 언양시장에서 만났다. 소머리 곰탕을 한 그릇하고, 김밥을 포장했다. 영남알프스에 접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면 언양시장이 가장 편하다. 싸고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 약속장소로 딱이다.


며칠 내내 날이 그렇게 좋더니 산행을 하려니 하늘이 흐렸다. 여차하면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였다. 야속한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하늘이 정하는 일을 우리가 어찌 할 수 있으리. 버스를 타고 복합웰컴센터로 향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간월산장이 초입을 대표하는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복합웰컴센터로 바뀌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화장실 앞에 서 있으니 오랜만에 산을 찾은 산객들이 격세지감을 논하는 것이 들린다. 필자도 떠올려보니 그러하다. 산의 모습은 언제나 그러한데 사람들이 만든 무엇들이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평일에도 북적이는 등산로(임도)
평일에도 북적이는 등산로(임도)


신발끈을 다시 묶고 가방도 정리하고 모자도 쓴다. 몸가짐과 함께 마음가짐 점검하며 본격적으로 산에 들 준비를 한다. 초입에 접어드니 서어나무와 참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이 나온다. 그 숲의 맑은 공기와 초록을 만끽하며 20분 정도 걸으면 홍류폭포 분기점이 나온다. 간월산장에서 간월재를 가는 길에 홍류폭포를 들르려면 길에서 살짝 빠졌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큰 비가 내린 다음 날, 시간이 여유로운 날이 아니고서야 들르지 않는다. 허나 산행이 처음인 벗에게 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폭포를 지나 다시 길을 오르면 끝없는 나무 계단을 만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나무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정씨의 묘가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묘 주변으로 공터가 제법 크게 있고 오래되고 잘생긴 소나무 세 그루가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 그 곳을 옛 어르신들은 절터꾸미라고 부른다는데, 언제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옛날엔 그 자리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소나무들을 보니 절이 있었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벗은 오랫동안 공부를 하면서 머리를 쓰느라 몸을 쓰는 일을 잊은 지 오래였다. 때문에 오늘 산행을 오기 전에 매우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허나 자연을 느끼며 쉬엄쉬엄 올라오니 필자가 산을 다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했다.

 

절터꾸미(정씨묘)를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
절터꾸미(정씨묘)를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

 

그 때쯤 우리는 산길과 콘크리트 임도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높고 깊은 산중에 이렇게 길이 잘 닦여 있는 것에 대해서 벗은 놀라움을 표했다. 그 놀라움과 동시에 화장실 맞은편에 70대쯤으로 보이는 어르신께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너무 길에서 볼 일을 보셔서 깜짝 놀랐다. “어르신, 화장실이 지척인데 이렇게 길에서 볼 일을 보시면 어쩝니까”하고 필자가 말을 건냈다. “화장실에 너무 냄새가 나서...”라고 답하신다.


벗은 산에 오는 산행객들에게 교육이 너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필자는 거기에다 더 거들어 차를 운전할 때 면허가 필요한 것처럼,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서 의견을 냈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단조로운 콘크리트 임도를 단숨에 올라왔다.

 

길가에 핀 쑥부쟁이(2)
길가에 핀 쑥부쟁이(2)


간월재에 도착하니 엄청난 바람이 분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오목한 간월재로 구름과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높은 산봉우리보단 넘어가기 쉬운 그 길을 자연도 택하고 사람도 택했다. 자연과 사람은 그렇게 닮아있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맑았다 개다를 반복했는데 간월재에 도착해보니 구름이 많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렸다. 이렇게 좋은 날 해넘이를 아니 보고 갈 수 없었다. 간월재의 바람이 우리를 이리저리 쳐댔다. 정신이 없었지만 있는 옷들을 모두 꺼내 단단히 껴입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객들이 모두 내려가고 그 너른 공간에 우리 둘만 남았다.

 

노을을 받아 반짝이며 춤추는 억새들
노을을 받아 반짝이며 춤추는 억새들
간월재를 배경으로 김미영(31)
간월재를 배경으로 김미영(31)

 

가을 볕 받아 반짝이며 춤추는 억새를 바라보았다. 억새군락지를 하염없이 보고 있으니 파도치는 그 억새물결 속에 바람도 있고 빛도 있었다. 해가 재약산 뒤로 넘어가는 그 찰나 빛이 옆으로 춤추는 억새를 비춰주니 더욱 아름다웠다. 그 경이로움을 감히 표현하긴 어려웠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추고 노을빛과 바람만이 간월재를 그득 채웠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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