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 익명
  • 승인 2018.11.07 1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익명 기고

“너랑 내가 죽어야 가정이 평화롭다는걸 알아라. 이번에 너가 죽어서 이 고비를 잘 넘겼으면 좋겠다. 힘들 때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해라.” 이 무슨 소리인가. 요즘 연락이 뜸하던데 뭐 삐진 거 있느냐는 물음에 어물쩍 넘어갈지 솔직히 말할지 망설였다. 문맥에서 벗어난 일로 며느리가 삐졌으리라 짐작하고 계셨다.


추석 이후로 보름간 장을 보지도 요리를 하지도 않았다. 밥맛을 잃으니 부엌도구가 손에 잡히질 않더라. 냉동식품으로 근근이 끼니를 때웠다. 가슴팍에 탁구공만한 알이 들어간 듯 베기고 통증이 느껴졌다. 이것이 대한민국 화병이구나 싶었다. 스트레스를 운동과 공부로 승화시켰다. 복근운동에 팔굽혀펴기를 추가해서 구슬땀을 흘렸다. 운동으로 주린 배 탓인지 이상하게도 평소 찾지 않던 인스턴트 음식에 손이 갔다. 몸도 마음도 시름시름 앓았다.


남편과의 관계는 까마득한 내리막길로 꺼져갔다. 김동률의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노래가 우리 부부의 주제곡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마니 같은 남편에게 실망하고부터 예전의 잉꼬부부로 돌아가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을 알면서 기대한 내가 바보지. 자식보다 남편이 더 좋았는데, 가장이기 이전에 나에게 연인이었는데 회복할 수 있을까. 남편은 본인이 죽어야 더 이상 시댁 일로 힘들지 않을 거라며 자책했다.


달력에 나란히 줄 선 빨간 날들이 두렵다. 추석 지나고 돌아서면 설날이다. 남들은 연휴가 길어서 좋다는데 한참을 달력 앞에 서 있는다. 일 년에 두 번, 부부는 마음이 무겁다.


“편지를 보냈으니 오해 하지 말고 잘 알아들어라.” 다음날 앞뒤가 빽빽하게 적힌 두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어머니 글씨체가 곱구나’ 순간 생각했다.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며 사건이 시작됐던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간 며느리를 관찰해온 내용에 본인이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앞으로의 바람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엔 큼직하게 ‘제발 부탁한다’고 강조하셨다.


편지를 경비실에서 전해 받고도 바로 뜯지를 못했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편지를 읽고 나니 숙연해진다. 여지껏 나는 이랬다. “며느리 입장에서 생각해주세요.” 그런데 그건 억지였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데 어찌 내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나. 다 각자의 입장만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만한 일로 삐진 게 아니구요, 이래이래서 힘들었어요.” 망설임 끝에 실토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죽으라는 것. 시어머니도 죽고 남편도 죽고 며느리도 죽어야 평화가 유지되나보다. 부쩍 얼굴이 야윈 딸을 보며 눈치 챈 친정엄마가 “남편만 좋으면 시댁은 상관없으니 마음 쓰지 마라. 시댁일로 스트레스 받는 거 개코라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개코라이는 경상도 사투리인가. 어쨌든 의미는 전달 받았다. 며느리 고수들이 하는 말이 있다. “할 도리만 하고 뒤로 빠지라.” 이제 툴툴 털고 일상을 회복해야겠다.    


애들이 한 달째 감기약을 달고 산다. 부실하게 밥을 챙겨줘서 그런가. 오만 원어치 장을 보고 오랜만에 뜨끈한 국물요리를 만들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