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좋은 농산물의 조건
품질 좋은 농산물의 조건
  •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 승인 2018.11.0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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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유기농 액비
유기농 액비

 

어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농산물의 품질은 품종, 재배기술(방식), 환경, 비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구성요소인데도 그 농학자가 무척 힘주어 말하던 모습이 제게는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농산물의 품질 결정 요인에 유통구조를 더하고 싶습니다. 공산품의 생산, 유통과 마찬가지로 농산물 역시 시장의 성격과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농산물과 공산품이 무척 다른 용도와 가치를 지니는데도 그렇습니다. 농산물의 유통구조가 생산과 품질에 관여하는 방식이 농산물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우선 전문가가 얘기하는 농산물의 품질 결정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토종, 또는 고정종자 나눔이 매우 활발합니다. 토종은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서 자라면서 특유의 환경에 적응하여 독특한 풍토성을 띤 종자를 말합니다. 고정종자는 그런 풍토성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씨앗으로 번식이 가능한 종자를 이릅니다. 고정종자는 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세대를 거듭하며 자연교잡의 과정을 거쳐 토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토종과 고정종자에 대한 농민과 소비자의 관심은 F1종자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F1 종자는 단세대 종자입니다. 토종이나 고정종자와는 다르게 씨앗으로 번식하는 능력이 퇴화된 종자입니다. 우성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교잡을 계속한 결과로 생식능력이 저하된 것이죠. 이는 종자회사의 종자 상품화와 엇물려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제적인 교잡은 특정 종자의 고유한 특성보다는 생장이나 병충해에 대한 내성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농산물 고유의 맛과 영양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구나 종자회사의 품종 개량이 특정 작물의 성장에 필요로 하는 영양성분까지도 제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농산물 고유의 속성마저 편협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교잡은 GMO로 대표되는 유전자 조작과는 무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기물로 덮어 양파심기
유기물로 덮어 양파심기


생산과정에서 농산물 품종에 기대하는 품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재배 과정에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맛과 향, 영양 또한 생산성 못지않을 때 특정 품종이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종자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내놓는 상품들은 대체로 생산성 향상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된 것들입니다. 특정 성분을 함유토록 하여 기능성이 강화된 품종들이 개발되기도 하지만, 품종 개량의 관건은 종자의 안정성이라는 점에서 생산성은 상품화의 근간을 이루는 항목입니다. 재배에 상품화된 종자를 선택할 경우 작물의 고유한 속성을 100%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농작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토종이나 고정종자를 고집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닙니다. 이력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종자의 안정성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년 간 재배하여 그 속성을 파악하고 나서야 양산체제를 갖추는 일은 농민에게 너무 큰 부담이기도 합니다.

 

가을을 태우는 채소들
가을을 태우는 채소들

 

이처럼 농작물의 품종 선택에 일정한 제약조건이 있습니다만, 재배기술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같은 F1종자라 할지라도 어떻게 기르는가에 따라 생장과 결실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재배기술은 이른바 농법의 실천적 기법입니다. 농법은 크게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일반농법과 그렇지 않은 유기농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농법은 무척 상반된 방식으로 보이지만, 농경지에 일정하게 영양을 공급하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농약의 사용에 있어서도 유기농 역시 배척하지 않는 사항이므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화학농약과 비료가 일반적으로 강력한 즉효성을 가지는 데 반해 유기농에서 채택하는 영양 공급과 방제는 대체로 불충분한 해결방안에 의존합니다. 유기농이 다소 불안한 재배기술을 견지하는 것은 토양 때문입니다. 화학 처리가 장기간 계속되는 농경지의 토양은 급격하게 고갈됩니다. 만성적인 병해충의 만연을 회피하기 어려운 역설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글자 그대로 유기물을 주로 공급하는 유기농법은 건전한 토양을 유지함으로써 병해충의 만연을 회피하고, 값싸게 생산성을 보장받자는 전략입니다. 우리는 화학농약의 폐해와 화학비료의 역기능을 우려해 유기농산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기농산물은 무공해, 친환경의 관점에서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수없는 개량을 거친 농산물 품종이라 하더라도 작물은 엄연한 생명체입니다. 그러므로 식물인 농작물 또한 자생력을 유전자에 가지고 있습니다. 경작지가 매우 인위적인 공간이지만,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생장과 결실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되는 이유가 자생력 또는 자발성에 있는 것입니다. 작물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발성의 기회를 보장하려는 것이 유기농업의 목표이고, 작물 고유의 속성을 최대한 발현하는 수확을 성취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농법을 우리는 흔히 자연농법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환경은 가변성이 강한 날씨와 변화가 적은 지형적 특성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풍토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농민의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 풍토야말로 농산물의 소중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항목입니다. 풍토는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기본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에 상추 한 잎을 먹는다는 것은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내적으로 무장했던 성분을 섭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사람의 식생활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농사의 주안점 또한 환경을 충분히 견디고 이겨내도록 작물을 유도하는 것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재배방식이 어떻든 이 점에 충실할 때 좋은 농산물이 생산될 것입니다.

 

갈무리한 토종 씨앗들
갈무리한 토종 씨앗들

 

농경지는 근본적으로 투입보다 산출이 많은 시스템입니다. 들과 산의 순환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따라서 늘 토양조건을 개선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유기농법이 겪는 어려움이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유기농자재는 대부분 완효성이어서 일단 영양부족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토양은 기본적으로 칼슘과 마그네슘, 황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러한 척박함을 해결하자면 오로지 이 성분들을 보충해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자연 생태계와 유사한 환경을 갖추려는 자연농법이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모든 식물은 최소한 질소, 인산, 칼륨, 칼슘, 마그네슘, 황, 붕소 등이 있어야만 정상으로 자랍니다.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의 방식이 성공적이려면 식물 성장에 필요한 필수원소들을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공급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무기물은 그냥 발생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농산물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품종, 재배기술(방식), 환경, 비료 등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건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농산물 유통 시스템입니다. 이른바 농산물 규격화가 제도, 비제도적으로 지속되는 관행이 농산물의 품질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농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로 품질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는 농산물 품질의 하향평준화를 가속화시켰습니다. 농산물의 소비 주체가 가정에서 대형 소비 업체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도매시장에서 규격과 선별이 잘 되었다는 이유로 수입양파가 선호되는 경향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농민의 심정이 참으로 씁쓸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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