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어머니
시인의 어머니
  • 조숙 시인
  • 승인 2018.11.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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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얼마 전에 아는 시인 집에 고추를 걷으러 갔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키만한 고춧대가 울창하게 서 있었다. 서리 맞기 전에 걷어야 하기 때문에 주렁주렁 달린 파란 고추를 따면 되는 일이었다. 몇 자루는 충분히 나올 고추를 따기 위해서 네 명이 모였다. 시인의 어머니가 지은 농사다. 어린 나이서부터 지었다는 농사는 이제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농사만 잘 짓는 것이 아니라 농작물을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계셨다. 예를 들자면 비닐하우스에서 바람 없이 큰 고추 중에서 제일 나중에 열리는 아기고추는 쪄서 먹으면 부드럽고 달콤하다. 여름에 먹는 고추랑 비교할 수 없이 향긋하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큰 고추는 된장에 찍어먹고, 손바닥 길이만큼 큰 고추는 장아찌를 만들어 먹어야 한다. 장아찌는 소금물에 담기도 하지만 멸치액젓에 삭혀서 먹기도 하는데, 그것이 천하일미다. 물론 말을 듣고 따라한다고 해서 그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고추모종을 심고 여름 내내 붉은 고추를 따고, 그것을 씻어서 말리고 고춧가루로 만들고, 이제는 찬바람이 불어서 더 이상 붉어지지 않는 파란 고추를 따는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 고춧대는 지지대를 받치고 끈으로 묶어두었지만 건들기만 해도 넘어질 만큼 무거운 열매를 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우람하고 풍요롭게 열매를 달리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감탄이 나왔다.


고추를 지지해주었던 지지대를 뽑고, 고추를 묶어두었던 끈을 풀어내고 한 그루씩 뽑아서 하우스 바깥으로 옮겼다.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서 고추를 따기 시작했는데 한 그루의 고추를 채 따기도 전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등으로 가을 햇살이 온몸을 덥혀주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물들기 시작한 나무와 풀단풍은 화려한 빛깔을 드러냈다. 주황빛 감이 가지가 휘도록 열리고 주홍빛 석류와 불그스름한 무화과가 보기만 해도 달콤하게 열려있었다. 여름의 더위는 진저리나도록 오래 그리고 혹독하게 지나갔다. 그 더위를 견디고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동네 복지관에 다니면서 노래도 배우고 기체조도 하면서 쉬엄쉬엄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고추를 따면서 복지관에서 배우신 노래를 들려달라고 졸랐는데 노래는 안 불러주시고 해외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해 주셨다. 호주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같은 곳을 다니셨는데 나라마다의 특징을 이야기하셨다. 특히 중국 장가계의 산과 바위의 풍광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러 번 가셨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다니셔서 그런지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는 지혜로움을 갖고 계셨다. 농사지은 채소를 장에다 팔기도 하지만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듬뿍듬뿍 주고 계셨다. 보건소와 소방대, 주변 식당과 복지관 같은 곳에 나눠주셨는데 그날 딴 고추도 복지시설에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시인의 어머니는 자신이 공부를 하지 못한 한을 갖고 있었다. 오빠들이 배운 책을 가져다가 혼자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고 공부를 하신 것이다. 지금은 불경도 많이 읽고 은행일이나 관공서일도 다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계셨다. 그래서 지난해인가 원자력 발전소 핵폐기물 문제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셨다가 판사 앞에 서게 되었는데 판사에게 ‘나는 글도 모르요’ 했다는 것이다. 판사가 ‘글 모르는 게 자랑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시오’ 호통을 친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어째 글 모르는 것이 자랑이것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고, 전쟁이 나서 공부할 기회를 놓쳐서 어린 나이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먹고 살까 궁리를 했는데 글자를 언제 익힐 수가 있었겠소’ 했다는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동네사람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한동네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셨다는데 이런 대답은 100년 전 삼일 운동 때도 있었다.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헌병한테 잡혀갔는데 조사를 받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나는 무식해서 그게 뭔지 모르고 따라했다거나, 옆에 사람이 해서 했다거나, 친구들 따라다닌 거라는 대답을 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죄를 크게 만들어 영웅시하지 않은 지혜로움에 무릎을 쳤다.


시인의 어머니 삶이 눈부신 가을 풍경처럼 풍요로웠다. 기체조와 노래교실을 다니면서 계속 고추농사를 지으셨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따가운 햇살 아래서 자랑할 것 없는 지혜를 듣고 싶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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