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는 이유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
  •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승인 2018.11.21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억과 기록
중구 태화초등학교 교정의 동상
중구 태화초등학교 교정의 동상

 

기억 하나, 1968년 10월 31일, 무장한 북한군이 울진과 삼척지역으로 침투하였습니다. 그해 1월 21일, 청와대를 향한 침투에 이은 두 번째 침투였지요. 남북간의 관계가 대립의 끝을 향해 달리던 시절이었지요. 휴전선의 충돌을 넘어 후방교란을 위해 북한군이 침투하였지요. 군인과 경찰에 쫓긴 북한군에 의해 이승복과 그 가족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내용이 알려졌지요. 그 뒤 이승복은 ‘반공소년’의 표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한 신문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가공되었으며, 그 기사를 쓴 기자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해당 신문사와 기자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지요. 대법원은 법률에 따라 적법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기억 둘, 지난 ‘기억과 기록’ 모임에서 울산 교육감이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이승복 동상이 시대적 변화에 맞지 않으니 철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언론사가 이를 기사화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울산에 10개 초등학교에 동상이 있다는 군요. 저는 강남국민학교를 다녔답니다. 제가 졸업한 뒤에 동상이 세워졌다는 군요. 제가 다닐 때 다른 동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제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있습니다. 1학년 때였나, 2학년 때였나. 교실 칸막이를 걷어 교실 몇 개를 합쳐 강당처럼 만들더니 영화를 보여줬습니다. 영화의 제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흑백영화였는데, 제겐 핏빛으로 보였지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무서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복 사건을 극화한 영화였지요. 영화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왜 그 영화를 봐야 했던 것일까요?

기록 하나, 제가 사는 동네에 태화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 있지요. 제 딸도 이 학교를 졸업했답니다. 딸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동상을 봤던 기억이 나,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방공소년’ 이승복의 동상이 교실 앞 화단에 그대로 서 있더군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도시락인지 책보자기인지를 손에 들고 서 있는 동상입니다. 1978년에 기증된 것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50년 전 강원도 평창군 두메산골에 살던 열 살 소년이 맞닥뜨린 공포를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을 위로할 말을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동상 앞에 선 저는 아무 고통도 아픔도 느낄 수 없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러한 불행이, 그러한 슬픔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억이 지속되기 바라며 기록을 남기지요. 초등학교 교정에 동상으로 남겨진 기록은 현재 우리의 기억일까요? 동상이 만들어진 과거의 기억일까요?

미래를 위한 기억 하나, 공포에 질린 아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보도한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뒤에 기사를 썼는지, 그렇지 않은 지도 제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그 기자를 본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정황상 그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그 곳에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제겐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입니다. 이 사건이 열 살이 채 되지도 않았던 과거의 저와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신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억이자 기록이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동상은 초등학교 교정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단언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에 있지 않습니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에 있습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