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말리기
곶감 말리기
  • 조숙향 시인
  • 승인 2018.11.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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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산다는 일이 굉장히 거창할 줄 알았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내 앞에서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늘 보다나은 내일 보다나은 내일을 읊조리며 살아왔다. 어떤 날은 내가 낯설고 어떤 날은 세상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나와 인간의 삶, 나와 세상과의 거리가 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해 단풍이 무척 아름답게 그려지던 날이 있었다. 신불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단풍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융단이 펼쳐져 있었다. 저 융단 위를 걷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때 알았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내 삶이라는 것을. 그동안 많은 날들을 구름 위를 걷고 살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소한 일상이 산다는 일이란 것을 깨닫고 난 후로, 일상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집안 일하기, 내 직업에 충실하기 등등. 그 중 하나가 곶감 말리기이다. 남편 직장 동료의 소개로 우리 부부는 7년 전부터 청도에 가서 감을 사다가 곶감을 말리고 있다. 청도에서 나는 감으로 곶감을 말리면 당도가 설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고 맛이 있다.

청도로 가는 길은 여행 같은 설렘을 주기도 했다. 내 손으로 무엇을 만들기 위한 전초단계는 마치 어린 시절 소풍 전날과 같은 들뜸을 주었다. 특히 단풍이 절정을 지나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운문산 고갯길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룰 때가 많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다양한 빛을 발하는 것을 보라보며 나는 내가 살아온 색깔과 내가 남기고 갈 색깔을 그려보았다. 저 숲을 지키는 나무들처럼 내 나무도 좀 많이 다채롭고 화려했구나 싶다. 아주 더러는 단순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의 삶이란 다채롭고 화려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일 테고.

감밭에서 느꼈던 환희도 만만치 않았다.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주황빛을 발하고 가을볕이 포근히 감밭을 감싸고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감에 바짝 들이대며 클로즈업을 해 찍기도 하고 감밭 전체를 화면에 넣고 찍고 또 찍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과 빛과 대기의 향연, 그들의 속삭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아우리가 만들어졌다. 호들갑스런 손놀림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불산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융단을 다시 보았다고 말해야겠다.

감을 깎는 일은 조금 버거웠다. 책상다리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감을 깎아내렸다. 감껍데기가 손등에서 미끄러질 때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내 어릴 적 고향에도 감이 많이 열렸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이었기에 감껍데기는 겨울 간식거리로 일미였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향집에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가 아랫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친정어머니와 할머니는 감을 깎아 그 나무 아래 매달아 말리곤 하였다. 지금부터 50년 전에는 그렇게 말리는 감을 엮을 줄을 통째로 벗겨 가져가는 밤도둑이 극성을 부릴 때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곶감을 지키기 위해 누렁이 한 마리를 감나무 아래 묶어두었다.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탄탄한 몸매가 균형있게 잡힌 영리한 개였다.

내 나이 일곱 살 때쯤이었나 보다. 늦가을 어느 날 새벽녘이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누렁이가 사라지고 감도 사라졌던 것이다. 누렁이를 퍽이나 좋아했던 둘째 언니는 소리 내어 울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누렁아 누렁아 부르면서 온 동네를 왔다갔다 헤매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개를 찾아다녔다. 그러데 아랫마을로 이어지는 들판에 고깃덩어리를 문 누렁이가 죽어있었다. 누군가 고깃덩어리에 쥐약을 묻혀 던져주고 목줄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그 후로 우리 집에선 그 감나무를 베어 냈고 곶감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 해 후 우리 집은 고향을 떠났다.

 

 

감을 깎으며 이런저런 추억을 반추해내는 것도 즐겁다. 베란다에서 감이 곶감으로 변신하고 있다. 곶감은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는 게 좋다. 의외로 우리 집 베란다는 바람이 잘 통해서 날씨가 조금 쌀쌀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감이 무척 잘 마른다. 성격 차이가 많은 우리 부부에게 소일거리를 던져주며 거리를 좁혀주기도 한다. SNS에 올려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완성된 곶감을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조숙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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