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포가 산업단지로 바뀌기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염포산
소금포가 산업단지로 바뀌기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염포산
  •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승인 2018.11.21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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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수능이 끝난 뒤 SPA브랜드 매장에 그득한 사람들
수능이 끝난 뒤 SPA브랜드 매장에 그득한 사람들

 

해마다 수능을 치는 날은 한파가 오는 날로 여겨졌다. 얼음골에서 사과농사를 하는 지인이 수확시기에 놀러올 겸 사과수확 품앗이를 하러 오라고 했다. 수확시기가 언제쯤이냐고 물어보니 수능쯤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사과는 서리를 몇 번 견뎌낸 뒤 수확해야 당도가 높고 맛있어 진다고 했다. 절기와 기후에 민감한 농부가 한 해 농사의 결실인 수확의 시기를 수능으로 잣대 삼을 만큼 언제나 수능은 한파를 몰고 왔었다.


허나 올해 수능은 달랐다.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항상 한파라는 키워드가 따라다녔었지만, 올해는 그 자리를 미세먼지가 차지했다. 핫팩이나 담요를 지참하던 수험생들은 마스크를 챙겨야했다. 추위 대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이상한 수능이 끝난 주말이었다. 농부가 한 해의 결실을 수확으로 확인하듯 수험생들은 지난 학업의 성과를 수능으로 확인했다.


봄바람처럼 보드라운 바람이 불던 수능이 끝난 주말이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3주간 연수를 다녀온 오랜 벗과 삼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삼산 백화점엔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할인을 하는 SPA브랜드 계산대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수능을 끝내고 부모님, 친구들과 쇼핑을 나온 수험생들이 북적북적했다. 그 북적임 속에서 우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삼산에서 가까운 곳에 산책을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 순간 문득 염포산이 떠올랐다.

 

약수터 삼거리 벤치
약수터 삼거리 벤치

 

운동화와 청바지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염포산으로 향했다. 동해안을 잇는 해파랑길 7코스가 끝나는 지점이자 8코스 시작점인 염포삼거리에 도착했다. 호젓한 오솔길이 보인다. 바닥에는 갈색 잎사귀가 바스락거리고 머리 위로는 알록달록한 잎들이 가지에 겨우 남아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날은 흐리고 인적이 드문 길에서 벗은 두려움이 든다고 했다. 얼마나 가야 목적지가 나오는지 물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필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바람에 떨어지는 잎사귀, 남은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서로 같은 길에서 느끼는 다른 마음을 나눴다.

 

염포산 정상에서 벗, 김미영(31)
염포산 정상에서 벗, 김미영(31)


우리는 목적만 바라보고 과정은 간과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봤다. 엄청난 빅데이터로 예측을 해도 미래는 그대로 오지 않는다. 목적지를 알고 간다고 해도 그 과정이 매번 같을 리 만무하다. 때문에 미래에 마음이 가있으면 불안하다. 목적지는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길 위에서 찰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염포산 정상을 가는 길에 내려다본 울산항
염포산 정상을 가는 길에 내려다본 울산항


삼거리약수터가 나왔다. 벤치에 앉아 겉옷도 벗고 맺힌 땀도 바람에 날렸다. 이정표가 보였다. 왼쪽은 염포산 정상, 오른쪽은 해파랑길을 가리켰다. 우리는 염포산 정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염포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뒤를 돌아볼 때마다 자동차를 싣는 화물선과 바다가 보였다. 염포라는 지명처럼 소금포로 유명했던 곳에 지금 소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했다.

 

염포삼거리(해파랑길 8코스 시작점)
염포삼거리(해파랑길 8코스 시작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세월이 참 무상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보았던 울산의 유산 UCC 공모전 대상작인 ‘하얀소금 착한소금 울산소금’이 떠올랐다. 아까 우리가 있었던 삼산도 과거에는 유명한 소금 생산지였다. 1차 산업이던 어업과 소금 생산의 중심지였던 삼산, 염포 일대는 2차 산업인 제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염포산 정상에 도착하니 오승정(五勝亭)이 보인다. 정자에 오르니 명촌저수지와 현대중공업, 대왕암 그리고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공업을 바라보며 벗과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대학 졸업할 시절만 해도 중공업에 입사했다고 하면 좋은 직장에 갔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또한 무상하다. ‘진짜 좋은 직장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하고 생각했다.

 

오승정(염포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현대중공업, 명촌저수지
오승정(염포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현대중공업, 명촌저수지


벗은 공무원 연수에 가보니 명문대를 나온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다들 재능이 많아 조별과제를 하면서 놀랐다고 했다. 그런 훌륭한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다 공무원이라는 좋은 직장을 원하지만 그것이 진짜 미래에도 좋은 직장일까 하고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정상에서 물길 따라 명촌저수지로 내려오는 길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주린 배를 안고 남목시장으로 갔다. 거리가 휑하다. 아까 삼산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문을 닫은 가게들도 즐비하다. 요즘 언론에서 동구의 경제위기와 일자리를 운운했던 것이 떠올랐다.

 

울산대교와  울산항의 야경
울산대교와 울산항의 야경


우리 또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소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고 생활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소비하고 또 소비해서 결국 지구를 병들게 했고 맑은 물과 맑은 공기 같은 당연한 것들을 쉽게 얻지 못하고 불편해하면서도 또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다들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 지금 세상이 일자리 문제로 떠들썩하다.

 

흐리지만 낙엽이 그득하던 오솔길
흐리지만 낙엽이 그득하던 오솔길


하지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남목시장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으며 잘 살기 위해서 좋은 직장과 많은 월급과 좋은 차, 넓은 집이 필요한지,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 맑은 물과 아름다운 숲, 건강한 먹을거리가 더 필요한지 떠올려보았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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