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형 일자리가 필요할 때
울산형 일자리가 필요할 때
  •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승인 2018.11.2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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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했던가? 공무원이라서 그런지 여기서 얘기하는 면장을 흔히 면장(面長)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하지만 여기서 면장은 면장(免牆) 즉 담장을 벗어난다는 의미의 면장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담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논쟁을 보면서 이 말이 떠올랐다. 일자리 만능주의 시대에 공장을 짓는 것은 곧 일자리를 의미했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앞다퉈 산업단지를 만들고 싼 값에 분양을 해댄다고 광고를 했다. 오죽하면 공무원이 땅 장사까지 해야 하냐고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올까?

울산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그 산업단지에 기업을 유치하면 지역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기업을 유치하려 하지만,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갖춰지지 않는 이상, 이는 다른 동네에 있는 일자리를 뺏어오는 수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공장은 여기에 있지만 사는 동네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대우버스가 울주군으로 이전한다고 했을 때 당장 환영을 했던 지역사회였지만, 아침, 저녁으로 수많은 통근버스가 부산을 왕복하고 있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그럼 광주형 일자리는 어떤가? 민주노총이 반발한다는 이야기만 있지, 어째서 반발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광역시 주도하에 빛그린 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가 위탁 생산하는 완성차 공장을 설립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에서는 고용된 노동자들을 위해 주거.의료.교육비를 지원해 적은 임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토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미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세계 자동차산업은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국내 생산시설도 공급 과잉 위기에 처해 있다. 쉽게 얘기하면 조선업이 위기에 놓여 있는데 광주에다 조선소를 또 짓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현대차가 광주에 투자하겠다는 금액은 530억원 수준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을 주고 서울의 삼성동 한전 부지를 매입했던 현대차로서는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금액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자동차회사들의 미래 투자 방향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에 투자하고, 아우디는 무인자동차를 위해 투자하고, BMW는 탄소섬유를 이용해 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인 자동차를 위해 투자하고, 볼보는 가장 안전한 차를 위해 투자하고, 현대차는 땅에 투자한다고.

미래 자동차산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투자를 부동산에 써버리도록 만든 정부와 경영진이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쓴 웃음만 나온다. 잘 나갈 때는 경영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귓등으로 듣지도 않았으면서 경영이 어려워지니 책임을 요구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노동자들에게 주거.의료.교육비를 지원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상승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그게 일부 노동자들에게 한정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꽤 괜찮은 정책이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해야 할 사회보장 정책을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적용하겠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심화된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마땅히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해 적정수준의 사회적 임금에 대해 합의를 보도록 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계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그나마 노동자들이 나은 대접을 받는 울산형 일자리가 전국으로 퍼져나가야 할 때다.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지역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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