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반란
조용한 반란
  • 강현숙 시인
  • 승인 2018.11.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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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지금 이 시대는 작은 것을 추구한다. 한없이 작아지다가 소멸하기를 추구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말하기를 연옥에서 지켜져야 할 덕목은 겸손이라 한다.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한없이 커지려하는 개인의 자아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겸손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최소한으로 존재하기 위한 겸손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존재의 힘을 빼며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가끔씩 생각한다.

아침 뒷산 산책길에 붉은 열매가 몇 달린 나뭇가지를 주워 올린다. 새들이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를 물고 나르다 떨어뜨린 듯하다. 붉은 열매가 달린 것이 너무 생생해서 지나가는 다른 이에게 내밀며 참 예쁘지 않냐고 말을 건네니 나를 피하며 말없이 지나가버린다. 나는 괴물도 아닌데 사실 나의 차림새는 피해갈 만한지도 모르겠다. 이십년도 지난 추리닝에 쌀쌀한 초겨울 아침에 슬리퍼에 맨발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나지막한 뒷산에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꽁꽁 싸맨 듯한 차림보다는 최대한 자유롭다.

이 세계에서 우리들은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어간다. 소통에 대한 편안한 자유로움도 없이 자기를 스스로 가두며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는 병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물론 나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버스정류장에서 구시렁거리는 그 여인은 소문에 의하면 한때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잃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미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그녀가 학원가를 떠돌며 불쑥 불쑥 들어서기도 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그녀를 밖으로 내쫓곤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그곳에 더 이상 발을 들일 수가 없어 이 동네로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녀는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망각하고 싶은 것일까. 가끔 교실에 들러 앞뒤가 맞지 않는 시를 쓴 종이를 놔두곤 간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삶의 중력이 버겁다는 이유로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미쳐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엇나가는 듯한 자신을 느낀 적이 없었는가, 그때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두고 자신을 다스려가는 것일까. 중론에 따르면 사물도 없고 세계도 없고 자아라는 것도 없고 관계도 상하도 모두 없는 것이라 하니 우리도 모든 것이 없는 것처럼만 여길 줄 알게 되면 살아가는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신이 삶에서 패배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모든 미래가 사라진 듯한 암흑을 만난다. 사실은 그때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양한 시점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암흑 같은 시간일지라도 처연하게 찬란한 시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의 출발은 사라지고 소멸하고 망각되는 찰나에 자리를 잡는다. 영원히 질줄 모르는 플라스틱 꽃이 아름다운가, 내일이면 시들어 사라져갈 초겨울 처연한 장미 한 송이가 아름다운가.

이 세계는 지금 모든 것을 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살아가기를 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규정하지 말 것이며 자신이 가진 것을 헤아릴 필요도 없이 자연 그대로 두기를 세계는 원할 것이다.

거대한 세계가 개인을 삼키는 듯한 두려움마저 든다. 유연하지 못한 사고들이 판을 치며 구획을 만들어가며 사회를 조직화해버리고 조직에 대한 안일함으로 세계는 반성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불안하다. 조용한 반란이 필요하다. 순간순간 자신을 망각하며 순간순간 사라지기도 하는 반란이 필요하다. 한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이다. 이 하루를 절망하는 것이다.

강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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