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야할 때
잊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야할 때
  • 진한솔
  • 승인 2018.11.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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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만들기

언양장으로 통하던 옛 숲길 되살리기

조금 가까운 옛날 아직 땅이 콘크리트 바닥도 아니고 꾸준히 장을 봐야만 먹고 살았던 그 옛날 언양장날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소호 참새미길을 체험하는 체험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새벽 일찍이 자신의 집(소호집)을 출발해 다듬어지지도 않은 산길(옛길)을 타며 언양에 갑니다. 가는 도중에 산나물을 틈틈이 캐고 언양장에 도착하면 그 산나물을 팔고 빨리 소호로 귀가해 저녁밥을 짓습니다.” 가끔은 산짐승을 만나는 산길(옛길), 그리고 누군가에겐 다른 마을로 이동해야하는 산길(옛길). 이처럼 조금 가까운 옛날 언양장으로 통하던 옛길은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지난 11월 16일,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소의 그루경영체 지원 사업으로 울주 그루경영체에 소속돼 있는 영남알프스숲길 협동조합이 주관한, 영남알프스 숲길 조성 및 생태관광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옛날 언양 사람들이 직접 다녔던 옛길을 복원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오전 10시 김수환 울주 그루매니저의 진행으로 워크숍이 시작됐습니다. 영남알프스숲길 협동조합은 산림경영이 쉽지 않아 주민들의 시야를 산으로 돌려 수입을 얻고 있고, 관광사업까지 구상하고 있습니다. 권경익 하늘그린 대표는 “산림분야에서는 금방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또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변질돼 그 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서를 파괴시킬 수 있다”며 “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들 각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원을 여러 단체들이 모여 한곳에 엮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배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숲길에는 여러 방문객들이 옵니다. 오는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꽉 막힌 사회에서 찌들어 살아가야하는 고달픔 때문에 이 숲길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첫 숲길을 시작할 때 방문객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 대부분 마음이 힘들다며 마음에 포커스를 두고 얘기합니다. 이야기는 힘들어하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쉬지 않고 늘어집니다. 10일 동안 200km를 걸은 뒤에 그들과 다시 인터뷰를 해 보면 이구동성으로 몸이 너무 힘들다고 말을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은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모든 생각들은 잊혀집니다. 걷는 것 때문에 고생해서 힘든 거지 그밖에 걱정거리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숲길을 찾아 걷지만 숲길을 걸으면서 어느새 힘들었던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경험,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저 멀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고 숲길을 걷는 게 아닐까요?

 

숲길 만들기, 가장 필요한 건 철저한 기획

본격 워크숍이 시작됐습니다. 권경익 대표는 숲길의 정의부터 바로 잡아주었습니다. 숲길이란 등산, 트레킹, 레저스포츠, 탐방 또는 휴양과 치유 등의 활동을 위해 산림에 조성하거나 사용하는 길로서 이와 연결된 산림 밖의 길까지 포함시킨다고 합니다. 숲길을 만들기 전에 가장 필요한 건 철저한 기획입니다. 걷는 숲길을 왜 만드는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간과하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사람이 찾지 않는 물건과 장소는 결국 사라집니다. 우리가 만들려는 숲길도 어쨌든 사람과 연관을 지어야 합니다. 권경익 대표는 “이 길에 누가 찾아올까? 어떤 계층들이 올 수 있을까? 이 지역주민에게 이득은 무엇으로 줄 수 있을까?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역주민이 가이드가 돼 방문객들에게 숲길을 소개해주고 알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소통 방식이라고 합니다.

숲길을 조성하는 데는 몇 가지 기본 원칙들이 있습니다. 기존에 있는 길을 최대한 활용해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 대중교통이 되도록 가깝고 향후 관리도 잘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탐방객이 길을 걸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편하고, 위험한 곳에는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 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게 지역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죠.

숲길 기획은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이 숲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길을 만드는 목적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숲길 조성의 기본 원칙들을 지키고, 여건을 분석하고, 이용계층을 분석합니다. 노선을 선정해 노선 조사와 자원(주변경관, 생태, 역사) 조사를 해야 하고, 그런 다음 기본 구상과 기본 계획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상이 끝나면 설계 지침을 세부적으로 만들어보고, 숲길을 조성한 다음에는 운영과 관리 방침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선 조사, 자원 조사, 노선 선택

권경익 대표는 기획 순서대로 하나씩 설명했습니다. 노선 조사에도 기준이 있습니다. 가치 있는 지역 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노선(연계성), 지역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노선(대표성),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노선(보행의 안전성).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길들과 연결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노선(연결성), 누구나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노선(접근보편성)이 그것입니다.

그 다음 자원 조사입니다. 길은 선이자 면입니다. 자원은 무한하지만 보는 눈은 유한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숲길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힘이 들어서입니다. 그렇게 택한 여행길, 숲길을 걸어 다니며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주민들이 그냥 지나가며 하는 말들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옛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서 숙박시설을 만든다면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 방문객들에겐 이 공간이 무슨 공간이었는지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겠죠. 이것들은 보이지 않는 숲길의 자원입니다. 권경익 대표는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경관자원과 생태자원이 있고 역사와 문화를 담는 역사문화자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선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반드시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추진할 때 다른 의견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꾸준히 회의하고 소통해서 서로에게 불만이 없는 노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런 다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또 다른 연결성을 가진 숲길은 무엇인지 찾고, 갖고 있는 자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적정한 노선은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숲길 만들기의 원칙과 공법

이제 본격 숲길 만들기 차례입니다. ‘숲길을 조성한다’고 말을 하는데, 조성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숲길 안내 시스템을 설치할 때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고려해야 하고, 쉼터 시설과 주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방문객과 주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 설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산을 파괴해서 숲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마을의 의미 있는 장소들을 ‘지키면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에 정부 지원으로 만든 숲길은 관리하는 사람도, 숲길의 의미를 아는 사람도 적어 방치되기 일쑤고 사람들에게 쉬 잊혀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숲은 의미와 뜻이 있고 방문객들이 자주 찾아와서 오래 기억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권경익 대표는 공법과 자재 사용법도 설명했습니다. 숲길 조성 공법에는 노면 정비, 기존 토사구간 도로의 마사토 포장, 돌붙임, 돌수로, 흙막이, 목재다리 놓기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자재들은 웬만하면 그 마을에서 즉시 수집할 수 있는 자연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의 바위를 활용해서 돌계단을 만든다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추억과 방문객에게 이 돌계단을 소개할 때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됩니다.

권 대표는 쉼터도 주민과 방문객의 소통을 위해서 넓은 공간을 이용해 밴치를 만들면 좋다고 말했습니다. 쉬어가는 길에 사람들과 만나 치유가 되기도 하고, 색다른 추억이 쌓이기 때문이죠. 그곳에 화장실과 음수대까지 있으면 방문객들이 머물렀다 가기에 좋은 장소가 될 테니까요.

 

 

숲길 안내와 관리

숲길을 안내하는 안내판 만들기도 중요합니다. 이 안내판 덕분에 방문객들은 산을 이용할 때 위험이 줄어듭니다. 119나 112에 신고할 때도 안내판의 위치를 말하면 사고자의 위치를 쉽게 찾아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안내판 색깔 배치도 중요합니다. 모든 안내판이 같은 색이면 다른 위치를 설명할 때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안내판이 잘 돼 있으면 방문객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고 외부의 큰 도움 없이도 숲길을 잘 지나갈 수 있습니다.

숲길을 꾸준히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 숲길 근처에 항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관리자가 24시간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즐거운 프로그램과 그곳에서 나는 특출한 상품이 있다면 이 숲길을 이용하는 방문객 숫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숲길을 이렇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과 관리자들이 꾸준히 만나 회의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관리자도 숲길을 만든 다음 꾸준히 인터넷에 홍보하고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숲길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오래 기억될 수 있으니까요.

 

 

운영자-주민-정부 삼박자 잘 맞아야

강의가 끝났습니다. 숲길 만들기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먼저 열정이 있고 숲길에 대한 애정이 있는 운영자(단체나 협동조합)가 있어야 합니다. 산길 정보와 산길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주민과 소통해야 하고, 지역 주민들의 도움과 힘이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세 조직이 소통이 되고 잘 묶여야만 숲길이 존재하는 진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라도 균형에 맞지 않게 되면 그 숲길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많은 장소가 되겠지요. 또한 이 세 박자가 모두 잘 맞아야 방문객들도 더 즐기고 힐링하다가 갈 수 있는 좋은 숲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소도 옛 주소에는 그 마을에 담긴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새 주소로 바뀌면서 유용하게 쓰이고 편해진 것은 맞지만 옛날 그 마을에 담긴 뜻과 의미와 정서를 새 주소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곧 사람들은 새 주소에 더 편해지고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왔던 마을의 의미와 정서가 잊혀질지도 모르고 아예 없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돈만 갖고 만든 숲길은 언젠가는 잊혀지고 없어지는 숲길이 되고 맙니다. 권경익 대표는 숲길이 잊혀지지 않도록 마을의 정서와 마을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찾지 않고 이용하지 않게 되면 그 숲길이 사라지는 건 어딜 가도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진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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