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만드나
언제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만드나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12.06 0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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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대전 가로수는 메타세쿼이아 속성에 맞게 하늘로 치솟듯 높이 자라는 두 줄이다.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이동고 기자
대전 가로수는 메타세쿼이아 속성에 맞게 하늘로 치솟듯 높이 자라는 두 줄이다.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이동고 기자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고 일상은 우리 몸을 자꾸만 틀 안에 가둔다. 일상이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에 머물 때 우리는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더욱 자신 일상에 매인다.

산업혁명 초기에 양을 대규모로 키우면서, 농지를 목장으로 바꾸는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났다. 경작지와 목초지를 잃은 농노들은 도시로 쫓겨나 공장 노동자가 됐다. 이들은 급속히 기계화 되는 생산시설에 맞춰 생활하면서 ‘소외’를 겪게 된다. 자신들이 효율과 편리를 위해 만든 기계와 생산물에 종속돼 인간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는 슬픔이다.
산업혁명 초기 사람들도 이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자유롭게 다니던 인간을 기계가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기계에 쉽게 맞춰질 존재는 아니었다.

노동이 미덕으로 치장되고 노동의 일상에 더욱더 얽매일수록 일상 밖의 시간은 그곳으로부터 더 벗어나고자 했다. 그 벗어남이 주말여행일 수도 있고, 등산이며 아직 문명이 다 들어차지 않은 비도시지역으로 여유를 즐기러 가는 것이다. 일상의 견딤이 새로운 충전으로, 또 다른 방전을 준비한다.

떠난 여행지에서 우리를 채우는 즐거움도 결국에는 걷기에 있음을 느낀다. 인간의 일생도 자기 길을 힘닿는 데까지 가다가 그곳에서 멈추는 순간 ‘돌아가는’ 것이고 인간의 죽음을 두고 ‘돌아가셨다’라는 것이 단순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람마저도 그 상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두 발로 겪는 새로운 부딪침이 주는 자극이다.

어떤 사진작가는 줌렌즈가 갖는 허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성능 좋은 망원렌즈는 대상을 확대하지만 실제 다가가 그 대상 앞에 선 솔직한 느낌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단지 대상을 당겨온 것일 뿐 본인이 그 대상에 다가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것이, 내 두 발로 가는 그 생생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 여긴다.

관광이든 지역활성화든 일이 잘되는 바탕이 결국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걷기 적당한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사람에게 걷기란 인간이 인간이게 한 존재증명과도 같다. 걷는 이들에겐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가 생긴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은 기본 인권이다. ‘본다’는 것도 그렇다. 단순히 창문 밖으로 풍경으로 본다면 금세 무료해진다. '본다는 것'이 자기 ‘두 발로 걷는 일’에 딸린 행위임을 알게 된다.

아침 산책을 즐기는 여성 페친 한 분은 아침 산책을 같이 못 하는 남편과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산책이 주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이라면 단순히 푸념만은 아니라고 본다. 식물원을 관람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걷기다. 맑은 공기 마시고, 수 많은 식물들이 순이 나고, 꽃 피고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거나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같이 걷는 사람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적당한 거리감을 채우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걷고 싶은 거리나 둘레길이나 동네 뒷산과 같은 산책길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차장에 내려 바로 건물로 들어가는 관성에 사로잡혀 일상에서 걷는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요란하던 영남알프스 둘레길도 점차 우리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가까운 공간에 어디든 걷기에 적당한 아름다운 풍경과 길을 만드는 일이다.
무너진 성곽, 중간을 흐르는 개울물과 푸르고 널따란 미나리꽝, 언양읍성 터가 주는 시야의 트임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길을 이끈다.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은 이러한 끌림을 통한 유혹이다. 이런 차원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한층 더 신선한 스토리텔링 길로 우리 기억 속에서 다시 불러내야 한다.

언양읍성 터 가로수 가지를 치고 있었다. 아직 심은 지 오래되지 않아 해작질하듯, 나뭇가지를 저리 많이 잘라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 되었다. 많은 공을 들인다는 언양읍성 주변 전신주 전깃줄 하나 지하로 넣지 못하고 무지막지하게 자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 노란 단풍잎 풍성한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걸어보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취재차 온 대전 거리 인도는 전깃줄 없이 시원하고 그 자유롭게 하늘로 치솟는 메타세쿼이아가 두 줄 가로수다. 길게 뻗은 가로수 사이로 짙은 주황빛 이파리 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주말이면 더 유명한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갈 수도 있지만 일상에 이런 가로수 길이 있다면 그냥 행복감에 젖을 듯하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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