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분배의 상상력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12.06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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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자 정치철학자 김만권 강연
노동바깥으로 나간 분배, 기본소득.

11월 29일, 울산시민연대 교육관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해설한 책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자인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의 강연이 있었다.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 등 비약적인 기술발전이 일어나고 있고, ‘노동의 분배’로만 다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21세기 분배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강연 내용을 일부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 주>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강연의 많은 시간을 기본소득이 불가피한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기본소득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동고 기자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강연의 많은 시간을 기본소득이 불가피한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기본소득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동고 기자

지금 청년들은 분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사농공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하는 것은 상민이었고 양반은 여유롭게 사군자를 치고 좋은 경치를 보며 글을 지었다. 고대 로마에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노예들이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시민들은 정치를 했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노예의 생활방식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이 가장 불안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을 기계 앞에 오래 앉혀두는 일이었다. 이런 필요 때문에 ‘노동윤리’가 만들어졌다. 바로 ‘일은 선한 것이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분배에 있어서 노동은 중요한 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강제노동과 장시간 노동에도 점점 더 노동 분배는 이뤄지지 않은 빈부의 차가 큰 사회로 가고 있다.
과연 지속적인 일자리가 가능한가. 우리나라는 과거 생산자 사회인 산업사회에서 이제 소비자가 주인인 소비사회로 넘어왔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자본, 국가, 노동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탈산업사회인 소비사회다.

기술사회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 그 풍요로움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것이다고 믿어왔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기술의 진보로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았다.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AI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이다.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야마하 로봇을 만드는 공장은 2년 치 주문이 몰려 일감을 더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생산시설에 로봇 대체율은 빠르다. 로봇 대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분석도 있다.

양극화 사회

우리나라는 6대4에서 7대3, 다시 8대2, 다시 9대1 이제 99대 1의 사회 더 나아가 99.9대 0,01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쓰는 물건이 바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과거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낼 수 있는 계산을 수행해내는 컴퓨터 용량과 맞먹는 용량을 갖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전체를 소비사회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소비사회에서 모든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어야 하고 기존 것은 계속 버려야 하는 걸로 인식된다. 하지만 노동윤리는 변하지 않는다. 노동윤리는 특정계층에게만 적용하는 윤리다. 소비력이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하고 소비력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놀아도 소비력이 있으면 된다. 소비할 능력을 가진 자들은 노동하는 자인가 아닌가 묻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한다.
현대는 노동이 만드는 이익보다 자본이 만드는 이익이 더 큰 사회다. 국민의 87.7%가 중소기업에 다닌다. 중소기업 354만 개 중에서 중기업은 2.9%이고 나머지는 모두 소기업이다. 우리나라는 OECD 35개 국가 평균 년 노동시간 1764시간보다 무려 305시간을 더 일한다. 8시간 노동으로 치면 우리나라 사람은 38일을 더 일하는 셈이고 독일 노동자보다는 90일을 더 일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 과연 노동분배 기준 적합한가

우리나라 실업자들은 135만 명인데 이 숫자에는 직업을 구하다가 포기한 사람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일주일에 몇 시간 알바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는다. 실업률은 9.9% 두 자리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2.7%에 이른다. 
2017년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은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개선되었지만 고용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실업수당을 제공해도 10명 중 3명만 재취업을 하는 실정이다. 대학생이 졸업을 하고 난 후 취업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기에, 대학실업률은 무려 70%에 이른다. 대학도 정규교수가 퇴임을 하면 비정규직 강사에게 수업을 맡긴다.  
과연 노동분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맞나? 노동 밖으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얼 준다는 것에 대해 어색하게 생각한다. 전에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투표한 결과 77%가 반대했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이 한참을 떠들었는데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23% 찬성이라는 결과에 대해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이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단체가 겨우 6개월을 활동한 후 나온 결과였기에 더 놀라웠다. 기본소득에서 우리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자율적인 노동을 원하는 것이지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핵심 문제들

핵심 문제는 자동화된 세상이 축복일까 저주일까의 문제다. 무인자동차, 4차 산업혁명, 케어로봇 등은 인간이 무의미한 노동을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의 진보를 이룩한 것이고 이 비약적인 성과를 조건 없는 기본소득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과 삶의 균형, 그런 것은 좋은 것일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는 일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나 선입견이 들어있다. 더 본질적으로 과연 게으름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분배를 노동 중심적으로만 생각해왔다. 인간은 원래 게으르다는 전제로 억지로라도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여가 속에서는 일 걱정’을 하고 ‘일 속에서는 여가를 걱정’한다. 과거에는 ‘정치참여와 예술창조’가 시민의 미덕이었고 모든 창조성은 여유라는 일종의 ‘게으름’에서 비롯됐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먹어야 일할 수 있다’로 바꾸는 것이 맞다.

물질이 풍부한 시대, 우리 상상력은 빈곤
우리는 지금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 생각이 넉넉하지 못하다. 풍요로운 시대에 증명하고 싶은 것은 이 일을 하면 ‘공공선’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영어의 self-love(자기애)가 우리나라에서는 이기주의로 해석됐다. 물건을 팔려면 이 물건을 사면 너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자기애에 호소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애는 나쁜 말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지을 때도 국부는 늘어나는데 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비생산적인 부분이 많이 가져간다는 것을 간파했다. 앞으로 우리에겐 “몸이 건강하고 빚만 없으면 충분하다”는 새로운 분배 관념과 양식이 필요하다.

전국민에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이란 우리가 원하는 자율적인 노동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매월 한 사람 당 현금을 줘서 지속적인 소비력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액보장을 하는 것이다. 이 기본소득의 전제는 자산조사나 근로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 단위로 국가로부터 지급 받는 소득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현물보다 현금으로 지급한다. 상품권이나 소비 용도가 한정돼 있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구매력을 위해 일시금보다는 정기적으로 지급한다. 주별, 월별, 분기별, 연별이든 정기적으로. 예를 들면 알라스카 연구기금은 연 단위로 지급하는데 해마다 800~1300불 정도를 지급 받는다. 알라스카 헌법에는 광물자원의 1/4의 이익을 알래스카 주민에게 배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재원 마련은 탄소세나 환경세 같은 목적세로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는 방식이 더 문제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서는 이후 여러 가지 고민을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 시민이 아니어도 줘야 할까? 그럼 아동도 줘야 하나? 연금수급자는? 감옥 수감자는? 기본소득은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이득의 측면에서 공동생활을 장려할 수도 있고 가족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 자산조사 없이 지급한다는 것은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자산이 많은 이에게는 누진적 소득세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빈자들만 수급신청을 하게 하면 오히려 수급률이 낮다. 오히려 빈자 수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란도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재원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결정했다. 산유국인 데다가 국내 유가를 싸게 팔고 있었는데 국제유가-국내유가 차이 금액을 재원으로 했다. 부자들이 기름을 많이 소비하니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려고 했는데 방법을 찾다 보니 국민에게 다 주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본소득으로 다 받게 되었다. 기본소득을 안 받을 사람은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안 받겠다고 신고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해야 가난한 사람에게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고용주에 대한 협상력이 생길 것으로 본다. 근로조건에 관계없이 일하는가 일하지 않는가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고 권리로서 받는 것이다.

공통 사회적 지분인 기초자본

소득격차가 발생하자 부모로부터 받을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 젊은이들의 출발선상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투표권 있는, 일정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인생을 출발한 종잣돈을 주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모든 젊은이에게 천만 원 이상, 부모가 없는 젊은이에게는 2000만 원 이상 준다고 했다. 그러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올까. 우리나라 증여상속세 세수가 5조4000억으로 우리나라 청년 숫자로 나누면 1인당 천만 원 정도가 나온다. 목적세인 상속세를 가지고 사회적 상속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목적세는 사회적인 저항도 줄일 수 있다. 증여상속세를 자발적으로 내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게 된다. 인생 설계 자본을 주겠다는 것이다. 젊을 때 먼저 기초자본을 지원해주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교정해 줄 수 있는 빠른 길이다.

기초자본을 사회적 지분이라는 것으로 제일 먼저 고민한 사람은 미국 예일대 루세크만 법학자였다. 18세기 말 토마스 페인은 이런 고민을 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는데 지금 지구를 다 사유화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겐 사유화할 권리가 없다. 그런 기회를 주기 위해 기금을 만들자. 미국 상위 20%에게 2% 부유세를 정액으로 거둬서 20살이 된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생출발자금으로 주기로 했는데 1999년에 8만 불(우리 돈으로 9000만 원 수준)을 주고 2017년에는 2.1배 정도 경제력이 높아졌으니 15만불(즉 1억8000만 원)을 주는 걸로 되어 있다. 단, 조건을 달았다. 이 기금을 받으려면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라. 이 돈을 받을 때까지는 범죄를 저지르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한 제도는? 
작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300만 원이었는데 청년들에게 이 정도 자금을 사회적 지분으로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 두셋 정도를 만나면 자본 규모는 달라진다.
기초자본은 기본소득에 비하면 재원이 1/15도 들지 않는다. 만일 기본소득으로 1인당 40만 원 정도를 나눠주려면 237조 원 정도가 든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 규모가 429조 원이다. 부담이 된다. 50만 원 정도라면 300조 정도가 든다. 
우리나라 청년 1인당 3000만 원을 나눠준다면 단지 16조 정도면 가능하다. 증여상속세란 정확한 목적세가 있으니 안정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에서 만든 큰 재정부담이 없는 기초자본 제도도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계좌를 열어주고 18년 동안 복리로 굴러가게 만들어 18세가 되면 찾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기본적으로는 250파운드, 가난한 집은 250파운드를 더 얹어준다. 7세가 되면 250파운드를 추가로 넣고 1200파운드 정도는 친인척이 매칭으로 더 넣어주고는 잠근다. 국가가 투자처를 알려주면 부모가 투자하는데 약점은 나중 투자처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이 제도를 유지하는 데 영국 교육재정의 0.5% 정도밖에 안 들고, 7살 때 한 번 더 넣어주므로 교육재정의 1% 정도가 된다.

인생주기별 자본금제도
더 나아가면 인생주기별로 자금을 주는, 인생주기별 자본금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20대에 한 번, 40대에 한 번, 60대에 한 번 기초자본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20년씩 굴려서 찾아 쓸 수 있는 이런 제도는 재정부담이 적어 기본소득보다 저항이 적을 것이다.

정리=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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