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역사
엄마의 역사
  •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승인 2018.12.0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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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이번 학기 기말과제: 구술사

필자는 역사문화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이번 학기에는 한국현대사를 구술사의 방법으로 공부하는 수업이 있다. 구술사는 문헌자료가 아닌 구술자료를 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연구와 다른 점이 있다. 문헌자료는 문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 기록을 남길 만한 문화적 힘이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태정태세...,왕들의 역사, 그들이 살고 있던 서울의 역사다. 공적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남성 엘리트 계층의 역사다. 구술사 방법론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기억에 관심을 갖게 한다.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구술사는 지역, 노동자, 여성에 대한 연구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술자를 선정하고 구술을 듣고, 그가 살았던 사회.문화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쓰는 것이 기말 과제였다. 필자는 엄마를 구술자로 정했다. 그리고 총 5회, 약 10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엄마의 생애사를 듣게 되었다. 평소 엄마에게 지난 시절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듣기는 했지만, 녹음기를 앞에 두고 듣는 생애 이야기는 색달랐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전쟁, 베트남 파병, 울산의 산업화와 도시화, 1970~80년대 출산정책 들이 역사책에서 무심히 밑줄을 긋던 글이 3D 영상이 되어, 생생한 소리와 함께 펼쳐졌다.

 

울산? 오래 살 거라고 생각 안 했지

부산이 고향인 엄마는 1970년 후반 울산에 간호사로 취업을 했다. “울산에 오래 살 거라고 생각 안했지. 우리가 졸업했을 때는 요새처럼 큰 병원이 많지 않아서 바로 취업이 안 됐었어. 여러 군데 병원에 이력서를 내고 기다리고 있었지. 10개월 기다리는 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어. 부모님께 미안했어. 어려운 형편에 공부시켰는데 직장이 잘 안 되니까. 근데 울산에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울산이 산업화가 되기 시작했잖아. 부산에서 졸업했지만 울산에 오게 됐고, 그래도 항상 울산에 있으면서도 큰 병원에 가서, 부산에 가서 근무해야지 마음이 있었지. 그런데 울산에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30 몇 년을 일했네.”

2000년대 초반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한 나는,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지 않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러면 나는 “울산은 큰 기업들이 많아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여러 지역사람들이 섞여 있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지 않다더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최근 울산시가 구축하려는 도시 이미지와 상관없이, ‘울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업도시’였다. 우리 아빠는 경상북도에서, 친구네 아빠는 전라남도에서 울산으로 이주했다. 아빠들은 회사 이름이 적힌 작업복을 입고 공장으로 출근했다. 울산은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남성노동자들의 도시였다. 1970~80년대 울산에는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젊은 남성들, 그리고 또 누가 있었을까? 중화학 공업단지 조성으로 빠르게 사라진 경공업 작업장의 여공, 공장노동자 외에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유입된 여러 여성 직업인, 농사를 짓거나 어업을 하며 살고 있던 토박이들. ‘산업도시 울산’이라는 국가사 중심의 기록과 기억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둘째? 안 낳으려고 했지

“우리 세대가 인구가 많았잖아. 한 명 낳아 잘 키우자! 알지? 셋째 아이 출산은 보험도 안 해줬어. 예비군 훈련 가서 정관수술하면 일찍 보내주고. 하루에도 수십 명이 수술하러 오고 그랬어. 두 번째 제왕절개하면서는 난관을 잘라버리는 수술을 같이 많이 했어. 산아제한을 강하게 했지. 둘째는 안 낳으려고 했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구호로 기억하는 7,80년대 산아제한 정책.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들은 다음 세대인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30~40년, 불과 한 세대가 바뀌는 동안에 ‘출산’에 대한 사회.문화적 담론은 크게 달라졌다. 2018년 한국에서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로 여겨지는 ‘출산’은 바로 앞 세대에서는 막아야 할 ‘사회문제’였다. ‘부모 됨’, ‘모성’,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살아있는 근현대사 교과서

엄마의 역사 이야기는 공식적인 한국현대사의 기억과 일치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했다. 그 지점들을 찾아가는 것은 흥미로운 공부거리였다. 역사를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 살아있는 근현대사 교과서인 ‘나이 든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라. 공식적 기록과 거리가 먼 사람, 예를 들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거나 글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내가 모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나이 든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운 일이다. 생생한 역사책인 자신의 기억을 기록해보라. 모두 다 똑같은 재료와 레시피로 만든 ‘한국 근현대사’ 요리에 색다른 맛의 신선한 ‘재료’가 될 것이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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