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워도 사랑해
얄미워도 사랑해
  •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승인 2018.12.0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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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큰아이가 색종이에 적어놓은 '양미원'. 낯선 이름이다. 어린이집에 친구가 새로 왔나?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이름이 아니고 '얄미워'를 적은 거란다. 동생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큰아이는 네 살 때 언니가 되었다. 그때쯤 영화 <곡성>이 개봉했었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우리 집이 ‘곡성’이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큰 울음소리가 매일 창문 넘어 울려댔다. 주로 남편의 퇴근 전, 저녁에 두 아이가 울어서 절정이었다. 영화 '곡성'을 보는 것만큼이나 우리 세 모녀의 일상이 무서웠다.

애살이 많던 큰아이는 질투가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동생을 안아서 젖병을 물리도록 허락해주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언니가 되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엄마의 품을 나누는 게 싫었으리라.

작은아이는 그걸 아는지 나와 밀회를 가졌다. 모두가 자고 있는 한밤중에 날 깨우고는 한참을 놀다 잤다. 100일을 갓 지난 아기가 마치 “엄마, 언니가 자고 있을 때 나랑 놀아줘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뿐히 깨더니 분유 한 통을 비우고 엄마의 눈을 바라보고 안기고 사랑 고백으로 귀를 채웠다. 그러곤 기분 좋게 다시 잠들더라. 큰아이 몰래 동생을 사랑했다.

큰아이는 줄곧 동생에게 “얄미워!”라고 말하고, 어쩌다가 “아구, 귀여운 내 동생”이라고 볼 한 번 쓰다듬어 준다. 동생은 말 못하던 시절부터 들어왔지만 기분은 나빴을 거다. 드디어 네 살이 되면서 입이 트이기 시작했다. 애가 말을 하면 무슨 말부터 하려나 궁금했다. 언니를 보더니 대뜸 “얄미워!”라고 말한다. 아뿔싸~ 배운 대로 써먹는구나.

동생이 말이 되니까 전보다 더 잘 논다. 역할놀이도 할 수 있고 서로 말해놓고 배꼽잡고 웃기도 한다. 때로는 둘이 쑥덕쑥덕 작당모의를 하기도 한다. 부작용은 서로 말로 약을 올린다. 동생은 들었던 대로 언니를 약 올리기 일쑤다. 언니의 분통 터지는 순간이 잦아지고 서로 고발하고 대신 혼내달라고 청원한다.

저녁 준비하던 중에 큰아이가 “엄마, 동생이 메롱해요.”라고 일렀다. “언니한테 메롱하면 안돼.” 했더니 동생이 “나 메롱 안했어. 메~ 했어.” (네 살이 지능적으로 놀린다.) 그러자 큰아이가 “그럼 니가 양이니?”하고 놀렸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 동생은 “엄마, 나 양 아니지?” 물어보고 (언제나 사람임을 확인 받고 싶어 한다.) 소리 없이 언니 보라고 혀만 내놓고 있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큰아이와 그걸 되받아쳐서 “언니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작은아이를 보면 괴롭다. 내가 이러려고 둘을 키우나. 큰아이에게 동생이 있어서 좋은 점을 말해줘도 그건 아주 작고, 싫은 점은 크다. 동생은 언니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언니가 똥을 싸면 똥을 쥐어짜서라도 싼다.) 같이 놀고 싶어 하면서도 언니의 냉대를 갚아준다.

우리 집에 가득 찬 “얄미워”를 뚫고 어느 날, 한줄기 빛처럼 큰아이가 동생에게 말했다. “얄미워도 사랑해.” 엄마 마음속에서 폭죽이 터지고 행복이 흐른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 맛에 둘을 키우는 거지. 큰아이가 득도했다. 얄미워도 사랑한다니...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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