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이유
시를 읽는 이유
  • 조숙 시인
  • 승인 2018.12.0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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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중에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첫째가 재미있어서이다. 둘째도 재미, 셋째쯤에 간접체험의 효능이다. 재미가 압도적으로 우선이다. 재미로 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소설에서의 재미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읽을 수 있고, 뜨거운 고구마에 김치를 걸쳐 먹으면서 읽을 수 있고, 조용하게 나의 몸을 느끼지 못하며 몰입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다음 장면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고통스러운 재미도 한 재미이다. 헤르만 헷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던 중학교 때 그 뜨거운 여름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설의 내용이 주는 지루함과 맞서던 고통. 그것도 알고 보면 고통의 재미인 것이다. 게다가 읽고 나면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남는 것이다. 늙어 본 적 없지만 늙음을 경험(에브리맨)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한 적 없지만 월선이의 죽음 앞에서 용이(토지 8권)의 뜨거운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다. 엄마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겪게 되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을 경험(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한다. 그러니 소설은 재미도 있으면서, 잘 늙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그러면 시는 왜 읽는 걸까. 시를 쓰고 읽는 것이 업인데도 이것이 궁금하다. 나의 경우는 시를 읽으면 세상에 없던 색깔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열리고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다.

‘못의, 날카로운 끝이 존재의 어디를 찌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찬 못에 흰, 옷걸이의 모가지가, 물음표처럼 살짝, 그러나 분명하게 걸려 있다...(옷걸이와 남방셔츠/이원)’ 하얀 색 옷걸이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날카로운 끝을 찌르면서 질문하는 못 위에 걸려 있는 장면이다. 이것은 상상에 상상을 이어가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정방형의 방, 존재의 장소에 무언가를 찌르며 들어오는 의문들. 나는 왜 이런 정방형 안에서 살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그건 의문 위에 걸쳐 놓은 옷, 나를 감추는, 혹은 치장하는, 혹은 습관의 옷은 그런 의문 기호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런 시를 읽고 나면 상상과 질문이 뒤섞인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시를 읽는 이유도 재미가 분명하다. 늘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산들도 제 고통을 치장한다 // 저 단풍 빛으로 내게 왔던 것 / 저 단풍 빛으로 날 살려내던 것 //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 들키고 싶었던가 / 사랑의 벗은 몸에 둘러주고 싶었던가 // 불난 집처럼 불난 집처럼 끓어 / 마침내 잿더미로 멸한다 해도 //’(단풍/이영광)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들키고 싶었던가’ 우리는 마음을 들키고 싶어한다. 사랑을 막 시작한 상대에게는 그대로 들키고 싶어서 안달을 하게 된다. 산들도 사랑에 빠져서 들키고 싶다는 것이다. 이 사랑은 풋풋한 봄의 사랑이 아닌 가을의 사랑이다. 그래서 삶이 잿더미로 변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빠른 속도로 우수수 떨어져 버릴 사랑인 것이다.

‘화염의 옷을 / 벗을 수도 / 벗길 수도 없어 / 태워지면서 / 형극의 길로 든다 // 살들이 타고 남은 재 / 영혼을 맑게 하고 / 그대만이 / 벗길 수 있는 이 옷은 / 타지도 않고 / 낡지도 않고 / 나를 태운다//’( 사랑굿 김초혜 /장사익 노래) 장사익의 ‘사랑굿’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랑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절절해서 아프다. 이런 미친 듯한 시를 지은 김초혜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단풍’ 시 못지않게 절절한 감정을 만난다.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겪지 못한다. 상상하지도 못한다. 시를 읽으면서 살을 태우는 듯한 벗을 수도 없고 낡지도 않는 사랑의 고통을 겪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낡지도 않는다니. 지금 바깥은 은행잎이 나무 밑둥에 부시도록 소복하게 불타고 있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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