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임무
농업의 임무
  •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 승인 2018.12.06 0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부 철학
초겨울의 채소들
초겨울의 채소들

 

소통하지 않으면서 서로 의존하는 생태계

농사를 지으면서 비로소 생태와 생태계, 그리고 환경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훨씬 더 오래 살아왔던 도시에서는 자연을 고작 인공이 아닌 것에 국한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배제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사는 것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기에 자연은 늘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도시의 허구 많은 폐해에서 비롯되는 숨막힘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는 자연의 역할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 역시도 도시생활의 연장에 종속되는 작은 순기능일 뿐입니다. 도시는,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농사를 짓는 일은 훨씬 더 많은 자연에 부대끼는 작업입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그 경계를 허물면서도 자연의 원리를 충실하게 재현해야 하는 임무가 농업에 주어져 있습니다. 현대농업이 대체로 자연과의 경계에 방벽을 높게 세우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만, 차용한 자연의 원리를 완전히 재구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도리어 자연의 순환구조에 일정하게 순응하는 것이 먹을거리의 유익함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반성에 이르렀습니다. 농업으로 인한 생태계의 이상현상이나 효율적인 농업 생산성에 주목하면서 이루어진 성찰이 그렇습니다.

 

아담한 콩 타작
아담한 콩 타작

 

지구를 한 단위로 볼 때, 그 환경에 의해 형성된 무생물과 생물이 자연을 구성한다고 거칠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구 바깥의 영향력에 의해 변화하는 기후가 포함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외적 요인이 지구환경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지구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지구상의 생태계는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으로 그 구조를 지탱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조는 일방적으로 또는 상호간에 먹고 먹히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순환합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는 대단히 야만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지구에 허다한 무기물마저 다른 생명체를 통해 섭취한다는 점에서 약탈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태계는 지구 자원의 총체적 보존의 틀 안에서 순환합니다.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 번성에 이르기까지 이 원칙이 배반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먹고 먹힘으로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운영하는 지구 생명체들로부터 어떤 섭리를 산출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는 의존성을 전제로 합니다. 생태계의 상호의존적 양상은 대단히 복잡합니다만, 기본원칙은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족과의 합의나 협력으로 의존도를 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옥수수가 진딧물을 줄인다

생태계 구성원들의 독자성과 의존성이 어떻게 양립하는가는 농경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밭과 논에서 벌어지는 생태적 현상은 농민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조정, 통제되고 있습니다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적인 굴절과 왜곡이 일어나는 예외적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병해충이라고 불리는 생명체들이 경작지에 침투하는 방식은 먹고 먹히는 관계의 극적인 양상을 연출합니다.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정 식물의 대량 밀식 지역인 농경지는 그들의 독자성과 탐식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의존성입니다. 자연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잘 정돈된 먹을거리의 향연이나 다름없는 농경지는 농민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동기를 생명체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방파제나 다름없는 경작지에서 벌어지는 농민과 생태계의 한바탕 투쟁은 사람에게 눈물겨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형을 향한 생태계의 굳건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차가운 햇살에 마르는 호박고지
차가운 햇살에 마르는 호박고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른 봄, 밭을 잘 갈아 비닐을 씌우고 고추를 심어놓으면 머지않아 건조한 봄기운을 타고 고추 이파리에 진딧물이 슬기 시작합니다. 내버려두면 그들은 무한증식하면서 고추가 말라죽을 때까지 고추의 진을 탕진합니다. 엄청나게 불어난 진딧물 또한 대부분 고추의 운명처럼 사멸해버립니다. 고추가 좀 더 억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진딧물의 처지 또한 삶의 지속성을 고추로 인해 저해 받는 불행에 놓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들이나 산에 듬성듬성 자라는 고추였다면 벌어지지 않는 극단의 현상입니다. 그런데 진딧물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농민이 살충제를 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진딧물들이 죽어버릴 것입니다. 고추는 무사히 잘 자랄 테고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어떤 농민이 고추밭에 고추를 심기 전에 밭가를 빙 둘러서 옥수수를 심었다고 가정합니다. 뒤이어 고추를 심고, 건조한 늦봄이 되었을 때 진딧물의 발생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왜 그럴까요? 옥수수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옥수수가 진딧물을 막아주었습니다. 옥수수는 어떻게 진딧물을 막았을까요? 사실은 옥수수는 스스로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옥수수에 슨 어떤 나방의 알로 인해 진딧물 발생이 억제되었습니다. 그 알이 진딧물을 직접 막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 알은 아주 조그만 날벌레의 먹잇감이 됨으로써 진딧물을 막게 됩니다. 그 날벌레가 나방의 알에 자신의 알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개체수를 급격히 증가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아주 조그맣지만 무척 많은 날벌레들이 고추밭으로 날아 들어가 진딧물의 등에 침을 박습니다. 그러면 진딧물은 서서히 미라(머미)가 되고 조금 있으면 그 안에서 새로운 날벌레가 태어납니다. 새로 태어난 날벌레는 먹잇감, 진딧물을 찾아온 고추밭을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 선조 농민들은 그저 간단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옥수수가 진딧물을 줄인다는 사실 말입니다. 농약이 전무하던 시절에도 생태계의 복잡한 원리를 전혀 모르면서도 생태계의 독자성과 의존성을 활용한 것이죠. 농경지로 넘쳐오는 생태계의 범람을 옥수수라는 생태환경으로 막아낸 셈입니다. 한 번 더 앞으로 돌아가 진딧물을 잡기 위해 고추밭에 살충제를 칠 경우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진딧물과 더불어 수많은 곤충들이 죽어나가게 됩니다. 고추 또한 독한 약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빈약하나마 고추밭에 유지되던 생태계의 순환은 여지없이 깨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생태계 구성원들의 상호견제가 사라짐으로써 어떤 예외상황이 고추밭에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속수무책입니다. 진딧물을 농약으로 잡았을 뿐인데 엉뚱하게도 탄저병이 돌기 시작한다 해도 그 인과관계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양파
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양파

 

인류는 농업을 무기로 생태계의 사슬을 끊었습니다. 생태계의 일원이면서도 그 순환구조나 원리에서 벗어난 첫걸음이 농업이었습니다. 눈부신 기술혁명으로 오늘날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습니다만, 일상적인 농업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추밭 가의 옥수수를 보며 늘 생각합니다. 생태계의 선순환에 반기를 든 상징으로 옥수수를 떠올립니다. 이렇게 이해해야만 자연을 대상으로 그 경계를 허물면서도 자연의 원리를 충실하게 재현해야 하는 임무, 농사의 정당성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옥수수 이전의 농업을 복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과 자연, 생태계와 지구의 건강이 담보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