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철장의 마지막 수송책, 호계역
달천철장의 마지막 수송책, 호계역
  • 황주경 시민기자. 시인
  • 승인 2018.12.0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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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100년 가까운 기차역

호계역 전경
호계역 전경
호계역 구내 전경
호계역 구내 전경

독립 영화 <돌아온다>에 나오는 작은 식당 ‘돌아온다’에는 손글씨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와 아픔으로 날마다 이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마치 액자에다 그리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주문을 걸 듯.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주인공 '주영'이 서울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그녀가 하차한 오래된 기차역이 어딘지 정이 간다.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으면 우연이라도 그리운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 같은 풍경. 영하 속에서 주영 뒤로 기차가 떠나고 얼핏 보이는 파란간판에는 다음과 같은 고딕체 글씨가 쓰여 있다. 모화←호계→효문

호계역은 울산광역시 최북단역으로 효문역과 모화역 사이에 있다. 호계虎溪는 마을 동쪽에 호랑이 모양의 산봉우리와 시내가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계역 일대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 많다. 동해를 내려다보는 함월산에는 천년고찰 신흥사가 자리하고 있고, 천곡동에는 선사에서 현대까지 철을 채굴한 달천철장이 있으며, 송정동에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생가 등이 있다.

호계역은 1922년 10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2005년 화물취급을 중단했지만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하루 승객은 2천여 명이다. 울산중심권과 많이 떨어진 이유로 비교적 기차 이용이 활발한 편이다. 동해남부선 복선화가 완료되는 2020년 이 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게 된다. 동대산 아래로 선로와 역사가 옮겨지며 호계역 대신 송정역으로 역명이 바뀐다.

약 60여 년을 바라보는 호계역사는 박공지붕을 얹어 전형적인 동해남부선 옛 양식을 취하고 있다. 역 구내는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가 출입문 오른쪽에 높이 솟아 있으며 길게 선 건물을 따라 봉발탑처럼 위쪽만 둥글게 다듬은 향나무가 줄을 서있다.

 

호계역 구내 전경
호계역 구내 전경

영화 <돌아온다>의 주영이 앉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100년 가까이 기차가 부렸을 수많은 사연을 생각해 본다. 역을 벗어나면 번화한 도심이 바로 나타나지만, 호계역 구내는 마치 시간을 가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호계역은 영화, 시, 소설 등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호계역은 달천철장 대한철강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전국의 제련소로 운반하는 역할로 분주했다. 역사 왼편 지금의 공용주차장이 당시 화물처리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사실 울산 북구는 고대 동아시의 최대 철생산지였다. 달천철장은 기원전 2세기부터 철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2002년에야 공식 폐광돼 2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호계역은 선사로부터 이어진 달천철장의 마지막 수송책이었던 셈이다.

호계역을 나오며 영화 <돌아온다>에도 등장하는 호계샘물탕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저 높은 굴뚝은 시간을 가둔 듯한 호계역에서 달천야철장에서 채굴된 철광석을 싣고 떠난 마지막 기차를 분명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복선화 이후 떠나게 될 마지막 기차도...

호계샘물탕 굴뚝, 영화 “돌아온다”에 등장한 목욕탕
호계샘물탕 굴뚝, 영화 “돌아온다”에 등장한 목욕탕

쇠부리축제와 달천야철공원

한편 울산북구는 달천지역이 철기 문명의 시초라는 점에 착안해 올해로 14회째 쇠부리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쇠부리란 토철이나 철광석에 열을 가해 덩이쇠를 얻어내는 재래식 철생산과정을 일컫는 경상도 방언이다. 쇠부리는 철로 이어진 산업수도 울산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 울산 북구 달천동 산 20에는 달천야철공원이 단장돼 있다. 찾아보면 토탄을 캔 자리에 덩그러니 조립식 지붕만 하나 얹혀 있어 멋쩍지만 달천의 야철역사를 기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달천철장공원
달천철장공원

필자는 쇠부리축제와 달천야철공원에 덧붙여 욕심을 조금 더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최근까지 성업한 달천철광갱도를 복원해 선사에서 현대까지 철로 이어진 울산의 이야기를 입힌다면 어떨까? 달천야철갱도를 체험하고, 쇠부리축제 기간뿐만 아니라 매일 불매질하는 전통 로爐에서 벌건 쇠를 얻어 내고, 한편에서는 쇳물을 부어 솥과 그릇을 만들고, 또 그것을 두드려 낫과 호미, 수저 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줄 수 있다면, 또 하나 멋진 관광 콘텐츠가 탄생하지 않을까?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호계장

호계상설시장이 열리는 날은 도로에 체증이 생길 정도로 역사 일대는 분주해진다. 호계역에서 상설시장 쪽으로 걸어가면 휴대폰가게, 치과,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지금은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 침체로 울산의 경기가 예전 같지 못하지만, 한 때 울산 북구는 소득이 높은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었다. 거리는 항상 북적였으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재미가 났다.

1일, 6일에 서는 호계장은 거짓말 않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왁자한 시장으로 들어서면 활기가 넘친다. 활어 좌판, 농산물 좌판, 어묵집 등에 흥정이 불붙었다. KBS 인간극장에 나와 유명세를 탄 도너츠집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주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호호 불며 먹는 호떡도 참 먹음직스럽다.

벨트, 손전등, 공구 등을 진열한 잡화점 아저씨에게 요즘 경기가 어떤지를 물었다. 재래시장을 찾아 잡화나 옷 등을 사는 사람들은 형편이 좀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장사가 전 같지 않은 것을 보면 돈이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어서 경기가 좋아져 장을 찾는 사람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치, 해물 등을 내놓은 가게 아주머니에게도 장사가 잘되는지를 여쭈었다. 주말이라 손님이 좀 있긴 하지만, 평일에 서는 장은 예전의 삼분지 일도 안 된다고 했다. 이어서 하는 말이 신기하게도 잡화점 아저씨와 같다. 얼른 경기가 좋아져 떠났던 손님들이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밥집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며 영화 <돌아온다>의 그 액자를 떠 올렸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어서 경기가 풀려 호계장을 떠났던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 드기를.

호계상설시장. 1,6일에 장이 선다.
호계상설시장. 1,6일에 장이 선다.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호계시장 도넛집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호계시장 도넛집

박상진 의사 생가

호계역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인 송정동에 박상진 의사 생가가 있다. 선생은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 지원으로 발령 났지만,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판사직을 추호의 망설임 없이 던져버린다. 일제의 판사가 되어 독립운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 전경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 전경
고헌 박상진 의사 압송 장면
고헌 박상진 의사 압송 장면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가들과 합류한 뒤 대구에 내려와 독립군의 정보 연락과 재정 지원을 위한 상회를 설립했다. 그 후 대한광복회를 조직해 총사령을 맡았다. 대한광복회는 비밀, 폭동, 암살, 명령 등 4대 실천강령을 지닌 국내 최대 의열단체였다. 선생이 칠곡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뒤 안동에 피신해있을 때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된다. 생가에 일경에 체포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는데 선생은 대한광복회의 총사령답게 일경의 포박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아끼던 백마를 타고 가다가 동네를 벗어나서야 포박된다. 이후 선생은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4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8월 13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다.

사실 박상진 의사의 생가는 지금 복원된 곳의 옆집이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선생의 생가 주변에 역사공원 조성이 한창이었다. 근대 우리의 역사는 친일군부독재가 득세하는 바람에 항일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친일을 엄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하여 시류에 영합한 자들과 자손들은 아직도 호의호식하지만, 박상진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재산과 목숨을 조국에 바치는 바람에 생가 터 하나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집안은 몰락했다.

울산의 정신, 울산의 혼, 박상진 의사가 일경에 에워싸인 체 마지막으로 말을 타고 나갔을 길을 따라 가보았다. 저무는 하늘에서 내려온 석양이 생가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함월산 신흥사
함월산 신흥사

황주경 시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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