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째 불타는 파리

원영수 국제포럼 / 기사승인 : 2018-12-13 11: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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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너무나도 늦은, 너무나도 빈약한 마크롱의 양보?

12월 10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에 굴복했다. 11월 17일 시위 이후 4주째 이어진 분노의 거센 물결 앞에 최저임금 인상과 연금생활자 세금삭감을 골자로 하는 수습안을 제시했다.


마크롱은 13분 TV 연설에서 2019년 최저임금은 월 100유로 인상할 것이고, 월 2000유로 이하를 받는 연금생활자에 대한 세금인상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례적으로 자신의 정책이 불충분했고, 자신의 태도와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부유층에 대한 세금 삭감이나 개혁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으며, 2019년에 실업급여, 연금, 공공지출 등의 개혁을 추진할 것이고 밝혔다.


이에 대해 좌파정당 불굴의 프랑스(LFI)의 지도자 장뤽 멜랑숑은 “마크롱이 현찰 몇 푼으로 시민봉기를 진정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토요일에 제5막이 열릴 것”라고 비판했다. 지난주 총리를 면담하면서 노란조끼의 상징이 된 벵자맹 코시도 “실질적으로 미봉적 조치이며, 마크롱이 더 많은 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에두아르 필립 총리는 지난 12월 4일 최소한 6개월 동안 유류세 인상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필립 총리는 “어떤 세금도 국민통합을 저해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저소득층의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립 총리의 양보안은 마크롱 정부 출범 이후 18개월 만에 첫 양보 조치였다.


그러나 12월 8일 파리는 다시 노란조끼 시위대에 점령당했다. 경찰측 추산에 따르면 이번 토요 시위에는 13만8000명이 참여했다. 프랑스 전국에 8만9000명의 경찰력이 배치된 가운데, 경찰은 샹젤리제 주변에서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최루탄과 섬광탄을 난사했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1723명이 체포됐다.


정부와 언론은 극우와 극좌세력이 시위에 개입해 계획적인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을 가하고 있지만, 시위대는 이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극우세력인 국민회의(Rassemblement national: 올해 6월 국민전선에서 이름을 바꿨다)의 배후조종 또는 개입을 우려하지만, 마린 르펜의 노란조끼 지지에도 이번 시위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현재 마크롱 정부의 양보는 너무 늦었고 너무 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노란조끼는 이번 토요일의 제5막을 예고하고 있다. 유류세 인상 중단, 최저임금 인상, 연금소득 과세 중지 등의 조치는 노란조끼의 불만을 해소하기에 너무나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2015년 8월 도입된 사회보장 혜택으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0~30유로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대중의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도자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투쟁으로 폭발한 노란조끼운동은 민중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깊은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현상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노란조끼 운동을 1792~93년 상퀼로트, 1848년 2월의 시민군, 1870~71년 파리의 코뮌나르드, 세기말의 아나코 생디칼리스트 등의 투쟁 전통과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그 이전인 봉건시대에도 영주의 성을 불태운 농민봉기와 도시를 장악한 도시봉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앙샹레짐 아래서 지배계급은 우매한 농민을 ‘멍청한 놈’(Jacques Bonhomme)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봉기는 문자 그대로 몽매한 자들의 반란(Jacqueries)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계급적 편견과 무시는 대중의 불만을 축적했고, 노란조끼는 똑같은 무시와 편견에 마크롱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봉기에서 초기의 불만은 많은 경우에 세금이었다.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민중에 부과한 십일조, 생필품인 세금에 붙인 염세, 영주와 귀족이 강요한 무상 강제노역(Corvée) 등에 대한 불만이 봉기를 불러왔다. 이런 자연발생적 봉기들은 결국 민주주의와 공화정, 인권선언, 무상교육 등의 정착에 기여했다.


또 소통의 측면에서 18세기 후반 도로와 우편이 발달하면서 통신위원회는 대중의 불만과 혁명의 의지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매체였다. 오늘날 이 역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실시간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지도자 없이 자발적으로 조직화되는 운동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부자의 대통령 마크롱은 가난한 민중과 지방을 무시했고, 정치권과 언론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노란조끼운동을 만들어냈다. 극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르롱 정부는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통해 자신의 무덤을 팠다. 마크롱의 어설픈 사과와 빈약한 양보가 노란조끼운동 제5막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원영수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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