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주먹인사, 옥동중 유성룡 배움터 지킴이

어마루 시민 / 기사승인 : 2018-12-13 1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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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8년은 ‘꼰대’라는 단어가 범람한 한 해였다. 나이 많은 사람, 기성세대, 선생님을 칭하는 은어였지만, 이제 사회적으로 만연한 단어가 되었다. 물론 자기 자신의 나이와 가치관만을 오롯이 강요하는 소통 방식은 긍정적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올바른 길로 계도하는 사람마저도 ‘꼰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옥동중학교에는 ‘꼰대’라는 단어와 가장 먼 삶을 살고 있는 배움터 지킴이가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서 나오는 권위주의적 태도는 온데간데없다. 올해 칠순을 훌쩍 넘긴 유성룡 옥동중 배움터 지킴이는 손자뻘인 학생들과 주먹인사를 나누며 정겹게 인사를 나눈다. 시대를 초월한 유성룡 지킴이의 생각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오전 수업이 한창이던 옥동중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성룡 옥동중학교 배움터 지킴이
유성룡 옥동중학교 배움터 지킴이


배움터 지킴이는 학교에서 주로 어떤 일을 담당하나요?


배움터 지킴이는 주로 퇴직 경찰관, 퇴진 교원, 퇴직 공무원들 가운데 교육적 소신이 뚜렷한 사람을 위촉해요. 주요 업무는 첫 번째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을 예방하고, 사전에 감지.발견해서 신속한 조치를 취하거나 빠르게 학교 당국과 담당 선생님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요. 두 번째로는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재난과 위험 상황을 발견해서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 세 번째로는 학교 규칙이나 생활 규범, 기초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퇴직 이후에 배움터 지킴이 일을 시작했을 텐데, 배움터 지킴이 이전에는 어떤 삶을 사셨나요?


교육행정직에 30년 정도 몸을 담았어요. 퇴직 후에 당시 울산 교육감님의 권유에 따라 울산광역시 교육청 콜센터에서 3년 동안 전문 상담사로 일했고요. 그리고 8년 전에 옥동중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경력을 감안하면 연세가 꽤 되실 것 같아요. 아이들과 지내는 데는 무리가 없으신가요?


올해 일흔넷이에요. 중학교 1학년 애들하고는 60년 정도 차이가 나겠죠. 그래도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에요. 3학년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2학년 아이들의 70%, 1학년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이름을 외워요. 아무리 말을 듣지 않는 학생도 이름을 불러주면 태도가 달라져요. 근처 주택가에서 몰래 나갔다가 제게 들켜서 도망가던 아이도 이름을 부르면 멈춰 서곤 해요. 청소년기 아이들은 감정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이걸 잘 활용해서 아이들이 따라오도록 해야 해요.



이름 하나로 학생들과 60년을 초월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름 하나로 학생들과 60년을 초월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말고도 아이들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제 이름이 유성룡이잖아요. 아이들이 제 이름을 보고는 ‘유성룡기모찌’(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가 필살기를 사용할 때 나오는 ‘류진노 켄오 쿠라에’라는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처럼 읽은 것)라고 부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뭔지 몰랐는데, 아이들과 이걸 외치면서 주먹인사도 하고 그래요. 지금도 교실로 올라가면 너도나도 한 번 주먹인사를 해보겠다고 오곤 해요. 이것 외에도 족구나 야구도 같이 해요. 아이들과 서바이벌식 족구를 하는데 처음에는 ‘노인공경’해야 한다고 하다가, 제가 죽지 않으니까 ‘노인공격’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재미에 사는 거죠.



그런 노력에도 8년 동안 얘기가 통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그런 아이들도 이름을 불러주고, 얼굴색이 좋지 않으면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말문을 열곤 해요. 학교 내에서 징계를 받아서 사나흘씩 교내 봉사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데리고 다니면서 청소도 같이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같이 읽고, 독후감도 서로 교환하고 그래요. 이렇게 유대감을 형성하면 아이들이 저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아요. 이런 소소한 보람에 살죠.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 보면, 졸업하고도 생각이 나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아요.


졸업하고도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 졸업식이면 찾아와서 선물도 주고, 일일이 인사를 하면 참 고맙고 기쁘죠. 옥동중학교를 처음 졸업한 아이들이 어느덧 24살이에요. 그 아래로 옥동중학교를 다녔던,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옥동 인근에 아주 많아요. 그래서 옥동에서는 자연스레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돼요.



지킴이 제도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유성룡 배움터 지킴이
지킴이 제도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유성룡 배움터 지킴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 같으세요.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당장 배움터 지킴이만 해도 정년이 따로 없는 일이에요. 다른 학교에는 여든이 넘은 지킴이도 있어요. 요즘은 70대도 청년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모든 걸 하는 거죠. 지킴이 일 외에도 칠순을 맞아서는 그동안 모아둔 시를 시집으로 내기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드리기도 했죠. 전문 시인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거기서 나오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걸 시로 표현한 거죠. 기회가 된다면 여든에도 한 권 더 내보고 싶어요. 또 지킴이 일을 시작한 뒤로 한국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요. 공부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한국어에요.



요즘은 날씨도 춥고, 아무래도 연세가 연세다 보니 자녀분들이 일하시는 걸 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배움터 지킴이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챙겨 먹고, 넥타이 매고, 옷 차려입고 집을 나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갈 일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보람차요. 자식들도 걱정은 하죠. 제가 아들 하나 딸 하나, 손주가 넷이 있어요. 자식들은 다 수도권에 있고, 울산에는 영감, 할멈 둘이 지내요. 명절이나 휴가철에 아이들이 내려와서 지내는데, 내려오면 왜 배움터 지킴이 같은 고생스러운 일을 하냐고 묻곤 해요. 하지만 이게 내 낙이다, 라고 얘기하면 더 이상 얘기 안 해요. 세상 어디에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기뻐요. 지킴이 제도가 있고, 제 건강이 따라주는 한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어마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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