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생명의 젖줄, 태화강 백리길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18-12-20 09: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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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태화강백리길 2구간이자 범서옛길의 이정표
태화강백리길 2구간이자 범서옛길의 이정표


유진(30)이라는 벗과 함께 선바위부터 대곡박물관까지 이어지는 2구간을 물길 방향 거슬러 걸어가기로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이 강이 깨끗해지길, 그래서 이 강물을 마신 모든 존재들이 평화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길을 걷기로 했다.


그녀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명 전문 순례꾼이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도 도무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 분명해 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그런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거니와 분명 그 뻔한 일상을 못 견딜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워킹홀리데이’였다. 많이들 가는 호주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어가 듣기에 좋았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어학원에 등록해 일본어를 배우고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마련하며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낸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소식을 들었다. 일본에 있는 이들도 돌아오는 마당에 그녀는 계획대로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일이 꼬여 원래 정해놓은 집이 아닌, 어학원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숙소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순례를 떠나려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우연하지만 필연적인 기회로 그녀 인생의 첫 순례, 워크나인이라는 순례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워크나인(walk9)은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자발적 모임의 이름이며 2009년 한.일 청년들과 함께 걷기(순례)를 통해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태화강생태관과 그 앞 태화강의 콘크리트 보
태화강생태관과 그 앞 태화강의 콘크리트 보


곧 비가 올 듯 흐른 날 나무 위에 앉은 까마귀떼
곧 비가 올 듯 흐른 날 나무 위에 앉은 까마귀떼


원전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고 그 욕심 때문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자연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순례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동료들도 만들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그 이후로 한국으로 돌아와 도법스님과 화쟁100일순례를 하게 됐다. 우리사회가 정전 60주년을 맞이했지만 지난 60년간 전쟁에서 평화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한 도법스님을 필두로 ‘사회통합, 국민통합’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의 지혜와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걸어간 순례였다. 그 뒤로 EORA 강화도 생명평화축제, 제주평화축제에 통역으로 참여하는 등 전혀 맥락 없고 별개의 것들 같지만, 어쩌면 한 방향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도법스님의 연으로 만나게 된 분들과 통일이 되면 북한으로 평화순례를 가자고 다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허나 아직 통일은 가깝지만 아득했다. 통일을 바라며, 그리고 강에 기대 사는 모든 생명의 평화를 바라며 우리는 울산의 생명의 젖줄인 태화강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태화강생태관을 시작으로 물길 따라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듯 흐린 날이었다. 궂은 하늘은 안중에도 없이 물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명색이 생태관인데 그 앞 태화강에는 콘크리트 보가 웅장하다. 옛말에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속담이 있다. 당연한 순리인데 그것을 역행하는 보를 보는 것이 여간 불편하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막혀 있는 강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비가 그친 후 무학산에서 바라본 사연댐
비가 그친 후 무학산에서 바라본 사연댐


선바위를 지나 걸어가면서 유진이 말을 꺼냈다. “순례를 다녀와 도시환경공학과 행정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는 환경에 마음이 갔기 때문이었거든. 학문으로 뛰어난 분들을 존경해 마땅하고 멋진 분들이지만 지식에 비해 실천은 안 하시는 것 같아.”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떠올려 보았다. 머리로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보단 잘 몰라도 행하고 사는 이들이 훨씬 멋지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유진. 나는 네가 학식이 뛰어난 교수님, 연구원들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해.”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성해 보았다.


아스콘으로 포장된 길 위를 물길 따라 걷는다. 태화강 상류인 상북농공단지에 아스콘공장이 들어서는 일로 떠들썩하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편리함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는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선바위를 배경으로 손유진(30)
선바위를 배경으로 손유진(30)


아스콘 포장길을 따라 대방골로 걸어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가랑비로 내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빗줄기가 녹록찮아졌다. 우린 정자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른 점심을 보온병에 든 따뜻한 차와 함께 들었다. 일회용수저도 포장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빵 봉지, 간식 비닐, 휴지 등 쓰레기가 만만찮았다. 빗줄기가 그치고 다시 길 위로 나서기 위해 배낭을 싸며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보았다. 편리함을 위해 지구를 괴롭히고 있는 우리 자신을...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이 맑아진다. 비 온 뒤 공기가 상큼하다. 대방골에서 무학산으로 가는 옛길을 따라 한실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들이 떨어트려준 낙엽 덕에 길이 폭신폭신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좁다란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일이 물론 편리하진 않다. 낙엽에 빗물까지 보태져 미끄럽다. 하지만 아스콘 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몸도 마음도 행복하다.



아스콘 길 위에서 흐르는 태화강을 바라보며
아스콘 길 위에서 흐르는 태화강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고 정겨운 옛길
자연스럽고 정겨운 옛길


그 길은 아스콘공장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발암물질을 만들지 않았다. 땅을 막아 숨 쉬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오르막을 올라 양지바른 누군가의 묘지를 지나 대곡박물관 이정표 방향으로 더 걸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망 데크가 보인다. 데크에 서서 사연댐을 바라본다. ‘편리하고 쉽게 사용하는 일상의 수돗물이 이렇게 마을을 없앴고 순리대로 흐르던 물을 고인 물로 만들었구나.’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유진을 필두로 전문순례꾼들과 함께 태화강이 건강하게 흐르고 그 강에 기대 사는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태화강백리길 전체 구간을 걷는 순례를 기약한다. 우리의 바람이 모두에게 닿기를...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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