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전리 각석은 한반도 동·남·서해안을 그린 바위 지도다”
“천전리 각석은 한반도 동·남·서해안을 그린 바위 지도다”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9.01.02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가지 패턴만 이해하면 바위면 전체 문양 이해할 수 있어
천천리 각석 기하문양 모습. 백무산 시인은 동,남,서해안을 그린 바위그림 지도임을 구역별로 경계표시했다.  ⓒ이동고 기자
천천리 각석 기하문양 모습. 백무산 시인은 동,남,서해안을 그린 바위그림 지도임을 구역별로 경계표시했다.
전국지도(남한 부분)위에 천전리 각석 기하문양을 얹은 모습, 선사시대 이후 강 흐름이나 산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동고 기자
전국지도(남한 부분)위에 천전리 각석 기하문양을 얹은 모습, 선사시대 이후 강 흐름이나 산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동고 기자

 

백무산 시인이 지난해 본보 지면(2018년 1월 19일자, 2월 28일자)에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천전리 각석의 기하문양은 ‘한반도 동·남·서해안을 그린 파노라마 지도’라는 주장을 내놓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박물관 측에서 기자의 질문에 “지도라고 보기에는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짧은 논평을 내놓았을 뿐 관계 기관이나 전문가들로부터 어떠한 확인 작업도 없었다고 한다. 본보는 추가 취재를 통해 백 시인의 주장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보다 세부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백 시인은 천전리 각석이 지도임을 확인해 줄 수 있는 고고학 전문가가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시민들과 다양하게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백무산 시인 주장에 따른 각석 지도 특징과 표시 범위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은 선사유적으로 지금까지 주술과 제의의 공간으로 인식해 왔다. 바위면에서 가장 오래되  고 주요하게 표현된 기하학적 문양들은 선사인의 신앙세계와 관련지어 전혀 해석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언양 지역을 축으로 해서 한반도 동·남·서해안을 그린 지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까지 식별한 지도 범위는 대략 800km 넘는다. 선사인 지도라고 보기에는 그 영역이 너무 방대하고 필요와 목적을 알 수는 없으나, 문양 하나하나는 해당지역이 갖는 지형적 특징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지도를 현대인들이 식별하기 어려운 것은 문자 없는 시대에 지형을 기호화해서 그 특징들을 차별적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도는 지형을 양식화해서 표현하고 있으므로 몇 가지 패턴만 이해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하문양 위에 울산지역과 경주, 형산강까지 강과 산의 이름을 표시해 보았다. ⓒ.이동고 기자
기하문양 위에 울산지역과 경주, 형산강까지 강과 산의 이름을 표시해 보았다. ⓒ.이동고 기자

 

울산지역을 그린 대동여지도, 근대 측량 이전 우리나라 지도는 그다지 정교하지 않았다. ⓒ이동고 기자
울산지역을 그린 대동여지도, 근대 측량 이전 우리나라 지도는 그다지 정교하지 않았다. ⓒ이동고 기자

- 천전리 각석 문양을 주장대로 지도로 본다면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데요?
= 천전리 각석 지도는 동·남·서해안에서 내륙으로 30~40km 범위를, 방위를 구분하지 않고 바위면에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 표현한 것이다. 제가 직접 확인한 정도는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의 무안지역, 영산강 중·하류 내륙 일부 지역을 그렸다고 본다. 서해안과 전라남도 내륙 일부는 반대편인 남쪽에서 보는 시각으로 그렸는데, 이는 바위면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전체 길이로 치면 800km가 넘는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 천전리 각석을 지도라고 확증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 지형의 일정 범위를 하천을 경계로 구분하고, 이를 기호화하면서 구체적 형태를 반영해서 그렸다. 지형 형태를 양식화하면서도 패턴을 도식화하지 않고 사실적 특징을 반영해서 차별적으로 그린 것은 지금 우리가 지도를 그리는 방식과 다르다. 우리와 보는 눈이 다르다. 여기서 선사인의 사고를 읽을 수 있다. 구체와 추상의 중간단계 사고다. 문자가 없을 때이므로 문자 표기로 구분할 수 없어서 모두 차별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무작정 다르게 그린 것이 아니라 패턴을 적용했다. 지도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이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지도는 반복적인 패턴화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런 측면을 어떻게 보시나요?
= 전체를 분석해 보면 산을 표기하는 3가지 패턴, 하천을 표기하는 5가지 패턴과 특정 장소를 표기하는 1가지 패턴 등 9가지 패턴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양들이 매우 복잡하게 보여도 9가지 패턴을 적용하면 모든 문양의 해석이 가능하다.

- 제일 궁금한 것이 울산지역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점인데요?
= 결국 이 지역에서 새긴 지도이기에 울산지역을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상세하게 표현했다. 태화강 물길과 주변의 산들이 비교적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대동여지도가 150여 년 전에 제작되었으나 매우 부정확하고 지역 특징을 구체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점과 비교하면 지리 감각이 매우 우수한 수렵채집인들이 그렸다고 본다.

- 풍화작용으로 식별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 해안에서 40km가 넘는 내륙 깊숙한 지역의 일부도 표기했으나 식별이 어렵고, 금강산 영역으로 추정되는 표기도 보이지만 풍화 때문에 확인에 어려움이 있다. 여수와 남해군 일대는 바위 표면이 탈각되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대마도와 일본열도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표기도 볼 수 있다. 

- 선사인들이 지도를 그렸을 필요성은 무엇이라 보는지요?  
= 지형적으로 의미있는 지역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필요와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바위면이 모자라 서해안은 더 담아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바위그림들을 확인하면 범위가 더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착민들이 수렵채집인들 보다 오히려 생활범위가 좁았다고 할 수 있다. 수렵채집인들이라 하더라도 이만한 지도가 왜 필요했을까 우리가 당장 이해하기는 어렵다. 바위면에는 아직 세부적으로 확인할 것이 많다.

이동고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