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주반사

김동일 / 기사승인 : 2019-01-02 17: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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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본이 아빠의 일상주반사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매일 밥을 먹는다. 매 끼니를 시간 맞춰 꼬박 꼬박 챙겨 먹는 건 아니지만 활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먹는다. 눈치 챘겠지만 나는 밥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살기 위해서 먹는 거다. 밥을 통해 먹는 즐거움을 그닥 느껴본 적 없다. 그래서 맛집이니 뭐니 하며 찾아다니거나 줄을 서가며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얼마나 인생이 시시하면 고작 밥 먹는 데 그렇게 집착하나 싶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다. 밥을 통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단순히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만 얻는 게 아니다. 탄수화물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포도당이나 과당 같은 단당류다. 이 단당류는 근육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생명 에너지다. 게다가 뇌는 포도당만을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밥을 먹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엇 저녁에 먹어 둔 밥 덕이다.


밥을 제 때 먹지 못하면 사나워지기도 한다. ‘행그리’라는 말이 있다. 헝그리와 엥그리를 합성한 조어다. 배가 고프면 쉽게 날카로워진다는 의미다. 포도당에만 의존하는 뇌는 배가 고픈데도 밥을 먹지 않으면 혈당이 떨어져 집중력이 낮아지면 짜증이 유발되는 것이다. 혈당 감소 외에도 포도당의 역조절 반응에 따라 분비되는 호르몬이 스트레스다. 어쨌든 배고플 때 화가 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생존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그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밥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


부끄러운(?) 얘긴데 나는 술도 거의 매일 마신다. 밥이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술은 왜 챙겨 먹을까? 몸에도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는데 말이다. 나는 술을 즐긴다. 술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분위기도 좋아하지만 술 자체가 주는 취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혼술도 불편하지 않다. 술을 마시면 찌질한 내 인생도 제법 근사하게 포장된다. 헤밍웨이도, 앨런 포도, 김현식도 모두 술에 미쳤던 사람들 아니었던가.


어쨌든 나는 괜히 술을 먹지는 않는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 술의 에탄올 성분은 행복감을 자극하는 도파민 분비량을 늘린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면 보상심리가 충족돼 기분이 고조되고 들뜨는 건 매우 과학적인 현상이다. 다만 곧 내성이 생겨 매번 똑같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마시는 술의 양이 늘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또 중독이 되면 마실 때 행복한 것보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 오는 불행감이 더 부각되기 쉽다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사실 내가 술을 먹는 진짜 이유는 용감해지기 때문이다. 술은 전두엽의 피질 통제력을 느슨하게 만든다. 알코올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구피질이 이성과 의식을 담당하는 신피질을 제어하고 자유롭게 명령을 내린다. 술을 마신 사람이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용감하게 행동 하는 이유다. 평소에는 이성에 억눌려 할 수 없던 일들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평소 비겁하기 짝이 없는 나는 술을 마실 때 비로소 용감해진다. 술 먹고 부린 만용의 결과가 그리 좋을 리 없다는 건 말 안 해도 잘 알 테지만.


결론을 요약하자면 나는 간헐적으로 밥을 먹고,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별로 내키지 않으나 사실 밥은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 늘 땡기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술은 조금 멀리해야 한다. 일상주반사를 일상다반사로 바꿔야 한다. 그게 정 힘들다면 일상반주사라도. 술병으로 이틀을 앓으며 내린 결론이다. 말짱해지면 다시 바뀔지 모르겠지만.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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