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에서 얻은 깨달음, 아파트 경비원 N씨

어마루 시민 / 기사승인 : 2019-01-02 1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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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새벽으로 넘어가면 수 백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도 빛을 잃는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주민들과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차들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새벽 시간 아파트는 마냥 고요하고 어둑하다. 하지만 불 꺼진 12층 높이 아파트에 둘러싸인 경비실 건물은 창문마다 옅은 빛이 새어나온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 아파트를 지켰고, 해가 떠오르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는 경비원 N씨. 울산 남구 달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에서 3년째 근무 중인 그는 얼마 뒤면 경비실에서 보낸 네 번째 새해를 맞게 된다. 2018년 한 해 동안 아파트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온 그는 과연 올 한 해를 어떻게 기억할까.



경비실 풍경(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경비실 풍경(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Q. 올해 마지막 근무는 아직 좀 남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2018년을 돌이켜 보면 어떤 감회가 드시나요.


해가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요. 10년 전에 느꼈던 1년의 속도와 지금 느끼는 1년은 천차만별이에요. 이제는 좀 더디게 가면 좋을 텐데. (웃음) 올해라고 뭐 아주 특별하지는 않았는데, 기억에 남는 거라면 아무래도 자식 일이죠. 올해 막내아들까지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도 잘 해서 마음이 후련해요. 이제 둘째랑 막내 결혼식까지 올리면 자식 농사 다 끝낸 거죠. 후련한 한 해였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아무래도 자식 분들이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것 같아요. 경비원일 그만두셔도 되지 않겠냐는 그런 말들이요. 아마 꽤 예전부터 들으셨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떠세요.


뭐 월급이나 많이 받고 얘기들 해야죠. (웃음) 다들 먹고 살기 힘들게 버는데, 자식들 돈 좀 번다고 쉬고 그러면 안 돼요. 자식들이 날 생각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로 생각하는 게 부모 마음이에요. 그 돈 받아서 집에서 쉬면 마음이 편하겠어요. 뭐라도 해서 내 손으로 돈 벌어서 쓰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죠.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진 몰라도 할 수 있을 때 일을 하는 게 좋죠.



Q. 일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없으세요.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고요.


잊고 지냈던 일까지 생각하면 반반이겠죠. 처음 일 시작할 때나 먼저 경비원 일을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처우가 많이 좋아졌어요. 심심치 않게 경비원에게 갑질한 기사나 뉴스를 사람들이 접하다 보니 되레 더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뭐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기분 좋게 대할 수 있는 게 좋은 거죠. 얼마 전에 동네 꼬마들이 “경비 아저씨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 게 기억나네요. 새해에는 어디 다른 지역에 가서 해 뜨는 거 본다고 여기 없을 거라고 하네요. 아직 그렇게 큰 손주는 없는데 아까 시간이 빨리 안 지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취소해야겠네요. 빨리 손주들이 태어나서 쑥쑥 컸으면 좋겠네요.



Q. 그러면 일하시면서 소위 말하는 갑질 같은 건 경험해본 적이 없으신가요?


참 역설적인 게 제가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았어요. 직장 다닐 때 윗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떵떵거리고. 시간 지나고 나면 부끄러운 거죠. 반대로 살지 못했던 시절이 아른거리고. 아까도 잊고 있던 기억이라고 말을 했는데, 굳이 기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서툴고 그래서 좀 예민한 주민들은 언성을 높이기도 했죠. 그런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으니 기분 나쁘게 여기지도 못했죠. 시간이 점점 지나다보니 제가 살아온 시절 가운데 답습하면 안 될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이젠 어디선가 갑질을 당할 순 있어도, 최소한 내가 갑질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요. 그래야 좀 더 사람 살기 좋지 않겠어요.



Q. 어떻게 보면 경비원 일을 시작한 뒤로 좀 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고 감히 말해도 될까요.


틀린 말이 아니에요. 같이 경비원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관공서나 회사에서 요직에 있다가 내려온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경비원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거죠. 나라는 인간 자체는 참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소속된 집단이 나를 대단한 것처럼 보이게 했구나, 라고요. 사람들은 제가 예전에 어디서 뭘 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아요. 그냥 아파트 경비 아저씨로 여기죠. 저도 한 때는 사람들을 소속된 회사나 경력으로 사람 됨됨이를 파악했어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얼마나 허황됐는지 알게 된 거죠. 그 회사 하나 나오면 모든 게 사라지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런 거 보면 세상살이 참 우스워요.



Q.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했을 때 어떤 게 진정으로 사람을 대단하게 만드는 것 같으세요.


나한테 이런 대단한 걸 물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평범한 대답 아닐까요. 다 인품이죠 인품.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그 아우라라고 하는 게 보이면 사람들이 엄지를 척 드는 거죠.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말이에요. 제게는 아직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이건 뭐 대학교나 회사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서 뭐라고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애 셋 키우고 회사를 삼십년 넘게 다녔는데도 대답이 안 나오네요. 그냥 인품이 있는 사람들은 행동 하나도 달라요. 그 세밀한 차이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다르게 만들죠. 아마 나이가 들면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그런 본인에게 2019년은 어떤 한 해가 되길 바라세요.


가족들에게 좋은 일 있길 바라고, 우리 아파트 주민 분들도 마찬가지로요. 제가 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가득한 새해가 되길 바라요. 개인적으로는 아까 한 말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어긋남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어마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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