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날이 오기를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19-01-02 18:19:05
  • -
  • +
  • 인쇄
농부 철학
추억의 맛, 고염
추억의 맛, 고염


지금은 겨울입니다. 저 산의 나무들은 진작부터 이파리를 훌훌 벗어나 맨몸으로 섰습니다. 며칠간 계속된 혹한으로 개울물이 단단하게 얼었고, 겨울 나는 양파와 마늘은 야위고 파리한 이파리를 잔뜩 웅크렸습니다. 유난히 새파란 하늘 어딘가에서 칼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바싹 마른 이파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런 겨울이 적막합니다. 마구 구르던 바위가 턱에 걸려 잠시 멈춰 선 것처럼 위태로운 정적이 허공에 얼어붙었습니다.


하루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단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새해가 밝습니다. 사람의 달력은 매정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어서 365일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과거로 내동이칩니다. 연말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이 뭉텅뭉텅 흐른다는 착각에 빠져 허둥지둥합니다. 조바심이 나고, 무슨 소중한 것이라도 두고 떠나는 사람처럼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뒤만 본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기억을 뒤적여 남겨둔 것과 가져가는 것을 견주고 챙겨도 봅니다. 그래봐야 지난 것은 속절없습니다. 끈으로 친친 묶어놓은 헌책들이 제아무리 무겁다 해도 지나간 시간 속에서는 펼쳐볼 재주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간이 버려지듯이 뭉텅뭉텅 덩어리로 사라지는 밤입니다. 안타까운들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단히 계량된 사람의 시간을 잠시 떠나 어제, 오늘, 내일 이런 식으로 하루 단위로 쪼개 생각해보면 무언가 좀 다릅니다. 해가 떠서 지고 이윽고 잠에 드는 그런 하루만을 우리 삶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절박함이 아니라 그냥 늘 비슷한 하루 말입니다. 같은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투의 유장함도 잊어버립시다. 우리가 흔히 겪어오는 것처럼 그저 그렇고, 내내 비슷하기만 한 하루, 하루에 집중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돌이켜질 수 있을까요? 희망이나 회한에 침잠할 겨를도 없이 이어지는 삶의 순간들 말입니다.



겨울배추
겨울배추


제가 이렇게 하루타령이나 하는 것은 제 직업이 농사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농사꾼에게 하루하루는 늘 비슷합니다. 작물을 심고 거두는 때를 맞추느라 침이 마르는 날이 많기는 해도 그렇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날들의 연속이어서 자칫 게을러지기 십상입니다. 바깥 환경에 민감하면서도 늦출지언정 제 할 일을 거르지 않는 작물들에 견주어 참으로 창피할 때가 많습니다. 저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타성은 농작물을 잘 몰라서 생기는 일입니다. 식물들에 점철된 고비들에 무관심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무관심에 기대 짓는 농사의 구태의연함이 더욱 삶을 지루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연속으로 인식하지 못 하고 단절된 틀로 이해해 와서 그렇습니다. 반복은 있으나 차이가 없다고 믿는, 분명히 다른 데도 같은 단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시간을 쌈짓돈처럼 써버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력 한 장을 찢어 휴지통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모해버리는 것은 시간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변화와 동행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결과입니다.


제가 농사짓는 덤바우는 서남향으로만 터져있고, 나머지 방향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한겨울에도 대부분의 다락 밭에는 볕이 잘 듭니다. 뒷산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무슨 새둥지 같아서 참 보기 좋습니다. 제가 덤바우에서 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무던히도 자주, 그리고 오래 곁을 한 산들을 바라봐왔습니다. 온통 산을 뒤덮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을 바라봤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나무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같은 모습으로 의연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 훌쩍 자란 모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느낌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느낌은 저를 흥분시킵니다. 의젓한 나무가 보기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쉬지 않는 활력을 제가 알아봤다는 기쁨 때문에 그렇습니다.



겨울을 견디는...
겨울을 견디는...


나무의 생장을 비로소 목격하는 하루는 눈치 채지 못했던 제 변화를 깨닫는 하루이기도 합니다. 봄마다 이상기후로 고생하던 밭작물들이 변덕 많은 날씨의 맥락을 끝내 읽어내고 우뚝 자라난 것을 볼 때 그렇고, 일제히 피어나는 자두 꽃을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뽀얗게 온 밭을 뒤덮는 냉이 꽃이 그렇고, 저수지 물이 얼붙으면서 깡깡 외칠 때에도 그렇습니다. 아내와 저는 그들이 때맞추어 일러주는 사소한 깨우침으로 인해 삶이 비루해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중 어떤 분이 몇 달째 보이지 않았음을 비로소 알아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착잡함이 밤하늘의 별 사이로 스치는 바람으로 홀연히 사라질 때까지 오래 그렇습니다. 지병을 떨치고 성큼 밭으로 나아가시는 어르신에게서도, 초등학교부터 우사를 돌보던 아이가 훌쩍 커서 청년 농군이 된 모습을 곁눈으로 바라보라볼 때에는 더욱 가슴이 뛰곤 합니다. 예의 없는 젊은 농민과 대거리를 하고 한바탕 욕설을 내뱉을 때조차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시간은 제게로 오는 사물과 사람들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다가오고 지나갑니다. 그 안에서 시간은 어떤 물질처럼 끈끈하기도 하고, 폭신하기도 하며, 깃털처럼 가볍거나 바람처럼 속절없이 저와 사람과 사물 사이를 지나치는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삶에서 맺는 모든 관계 안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까마득히 높은 굴뚝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 연대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의 하루에는 밤 대신 어둠이 있고, 낮 대신 빛이 있을 뿐이어서 반복조차 없는 긴 날이 지속될 뿐입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들과 무연하지 않아서 시간의 왜곡과 굴절마저 함께 견뎌야 하는 하루입니다.



겨울을 이기는...
겨울을 이기는...


저 산의 나무들은 긴 겨울이 끝나기도 전인 2월이 오면 깊은 뿌리로부터 물을 길어 올립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위태로운 시기입니다. 느닷없는 혹한이라도 오면 그대로 동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만두는 법은 없습니다. 5월 어느 날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필 때까지는 물을 긷는 외에는 어떤 생장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난 해 제 몸에 모아둔 것만으로 꽃을 피우고 결실마저 맺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산모가 겪는 고통 같은 것이어서 대부분의 나무는 제 가지를 뒤틀면서 아픔을 견딥니다. 그러고 나서야 지난해 늦여름부터 달아두었던 꽃눈과 잎눈을 차례로 틔워 새 날을 여는 것입니다.


그런 나무들처럼 오늘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고 인고하여 내년 봄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꽃을 활짝 피우기를 기원합니다.


이근우 농부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근우 시민, 농부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