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를 통해 살펴본 예술세계의 선순환
“죽음과 소녀”를 통해 살펴본 예술세계의 선순환
  • 류준하 음악애호가
  • 승인 2019.01.0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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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반하다

발레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는 2012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하인츠 스푀얼리 Heinz Spoerli가 안무를 맡고 스위스가 자랑하는 취리히 발레단과 세계적인 명성의 하겐 현악사중주단이 함께 공연한 작품이다. 이 발레에 사용된 음악은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다.

사실 ‘죽음과 소녀’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예술 작품은 회화, 시, 음악, 발레 등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 중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현악사중주곡 <죽음과 소녀>와 가곡 <죽음과 소녀>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슈베르트의 것으로, 그가 스무 살 때 작곡한 가곡은 독일의 서정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가 쓴 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며, 그로부터 7년 뒤에 작곡한 현악4중주곡 14번은 2악장에 가곡의 피아노 선율을 이용한 ‘주제와 변주’를 담았는데 슬프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들의 원작이 되는 클라우디우스의 시 <죽음과 소녀>는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그런 그녀를 데려가려고 유혹하는 죽음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소녀) 가세요! 아, 가세요! 난폭한 죽음의 신이여, 가세요! 나는 아직 젊으니 어서 가세요! 내게 손대지 말아요.

(죽음)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우아한 소녀여! 나는 네 벗, 너를 벌하려 함이 아니다. 기운을 내라, 나는 난폭하지 않다! 내 품속에서 편히 자게 할 뿐이다.

지금은 의약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지만 당시만 해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굶주림 그리고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원초적인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런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소재가 예술가들 사이에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본다.

 

발레 “죽음과 소녀”의 한 장면
발레 “죽음과 소녀”의 한 장면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를 쓸 무렵의 슈베르트는 가곡을 쓸 때와는 달리 치명적인 매독이 독버섯처럼 그의 몸에 자리를 잡고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슈베르트가 아버지의 집을 나와 갈 곳 없이 방황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친구가 ‘An die musik’라는 유명한 가곡의 가사를 쓴 시인 쇼버(Franz von Schober, 1796~1882)였는데, 그는 슈베르트에게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몹쓸 병에 걸리게 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이 병으로 고생하던 슈베르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세상과 이별하기 4년 전인 1824년에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을 다시 그의 작품에 등장시켰다.

 

슈베르트
슈베르트

 

그러니까 <죽음과 소녀>는 시기적으로 클라우디우스의 시가 맨 먼저이고 다음이 슈베르트의 가곡, 그리고 현악4중주 14번 순으로 작품이 쓰였다. 이 작품 속에 담긴 극적인 스토리는 21세기에 안무가 하인츠 스푀얼리에 의해 발레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시가 음악이 되고 다시 발레가 되는 예술적 선순환의 표본이 되었다.

클라우디우스나 슈베르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을 가진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는 16세기 초 한스 발둥 그린 Hans baldung Grien, 19세기 후반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그리고 20세기 초 에곤 쉴레 Egon Schiele에 의해 그려진 회화 작품들이 있다.

 

독일 서정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독일 서정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각박하다고 해야 할 이 시대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간에 영감을 주고 받는 선순환의 사례가 많이 일어나 좀 더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새해 희망을 가져본다.

류준하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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