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법’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누더기 법’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 김재인 한국노총 울산본부 정책실장
  • 승인 2019.01.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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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누더기 법’이라는 말이 있다. 법의 제·개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면서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달라진 법을 풍자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정부는 지난 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상한과 하한선을 정하고 노사정이 최종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민주당을 비롯한 거대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한 뒤 7월 이전에 입법을 통해 최저임금 논란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5월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일방적으로 처리한 데 이어 이번 개편안은 우선 당사자인 노동자와 노동계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기본원칙인 노사 자율 원칙을 크게 침해하고 훼손될 우려가 높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생활보장이라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 특히 기업의 지불능력까지 새로이 추가하겠다는 것은 사용자측이 요구해 온 것들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말 사실상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한 정부가 또다시 재벌기업 등 재계의 압력에 최저임금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최저임금제도야 말로 임금격차 완화는 물론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대표적 정책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모든 노동의제와 사회문제를 집어 삼키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을들의 전쟁’으로 내 몰았다.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최저임금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기업이 당연히 그 부담을 져야하고 그것이 가져오는 공익적 효과 때문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어려운 원인은 높은 상가임대료, 불공정한 가맹계약, 과당 경쟁구조, 이익을 내면서도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관행이다. 최저임금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와 고용시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5월 국회는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상여금과 수당 등을 포함한 산입 범위를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했다. 연말에는 고용노동부가 약정휴일을 제외한 최저임금 시행령을 밀어 붙였다. 최저임금법이 경제 논리에 따라 점점 누더기 법이 되고 만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최저임금법 관련 법안만 79건에 달한다고 한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법안만 71건이다. 발의된 법안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유예와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서 주휴시간 제외, 업종별·지역별 차등지급 등 대부분이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법안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파장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 과정도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당초 목적과 취지는 분명하다. 그동안 최저임금 문제는 사용자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임금구조에서 기인한다. 최저임금은 한 사회의 품격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소득과 사회 안정망을 구축한다는 인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그동안 사용자 편의 위주로 적용되어 왔던 비정상적인 임금체계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꿈꾸던 누군가에게는 최저임금법이 일년여 만에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법 취지는 사라지고 오직 난해한 계산법과 경제적 논리만 난무하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의 기준이 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882조9000억원으로 집계된 보도를 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저임금이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정부와 기업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김재인 한국노총 울산본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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