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늘 오늘

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19-01-09 16: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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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산촌 통신

시골동네는 8시가 넘어가는데도 조용하다. 그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맨살을 드러낸 들녘과 골짜기 얼음이 간간이 보이는 이어진 산들뿐이다. 마당에 나갔다가 현관 손잡이를 잡으니 손이 쩍쩍 달라붙는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며 바쁘게 움직이던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이다.


새해가 어떻고 신년계획이니 작심삼일이니 하지만 시골촌놈에게 1월은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더 맞는 표현이다. 처음 이사 와서 동네사람들이 우리 가족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면서 입방아에 올릴 때부터 동네 한 귀퉁이에 뚝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지금까지 11월이 지나면서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두가 늦잠자고 모두가 쉬는 이때가 귀농살이의 가장 좋은 때이다. 볼일 보고 세수하고 뜨끈한 온수매트 위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서울에서 첫눈을 맞으며 트럭 한 대에 짐을 싣고 온 가족이 강원도 산골로 이사 온 지가 어언 15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초심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나는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지 정리해 본다.


집안에 닥친 사고와 우환의 결정판으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서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잠시 생각하던 어머니가 던진 얘기는 너무 뜻밖이었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다. 우리 아들 넷이 모두 어려서 국민학교 다니던 때였단다. 왜 그때냐고 물었더니, 한 녀석이 학교 갔다 오면 또 다른 녀석이 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하던 그때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상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내 기억 속의 그 시절은 그 깡촌에서도 집이 없어 남의 집 세를 살면서 큰소리 한 번 못 치고 살던 때였고, 면서기였던 아버지가 누른 보리쌀을 섞은 혼합미를 월급 대신 타 올 때였다. 얼마나 지겹게 그걸 먹었던지 그 이후로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잡곡밥을 안 드셨다. 쌀밥에 한이 맺혀서 늘 하얀 쌀밥만 드셨다. 일 년 가야 명절 때 빼고는 고기 한 점 못 먹어 보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때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늘 내일만 보고 살던 분들이었다. 오늘이란 단지 내일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때일 뿐이었다. 고기도 우리 자식들이 장성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참아야 했고, 새 옷도 그때를 위해 미루어 두었고, 행복도 내일 언젠가 누릴 꿈이었지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평생을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살아왔는데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을 해왔으면서, 그 내일도 못 누려보고 돌아가시는 시점에서 한다는 얘기가 참고 견뎌왔던 어제가 행복했다니 너무 어이없을 뿐이었다. 도대체 우리 어머니의 인생은 무엇인가? 그 황당함이 내 인생을 결정짓는 큰 이유가 되었다. 나도 어머니처럼 저렇게 내일만 바라보며 오늘을 희생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다 죽을 때가 되면 내일의 행복을 위해 정신없이 허비하고 살아온 그 날이 행복했노라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라는 문제의식이 나를 시골로 이끌게 하였다.


나는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억누르고 살지는 않아야지. 그렇다면 오늘을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어디일까? 그런 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 내가 생각해낸 가장 근사치의 답은 계절의 흐름과 함께 생태적으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귀농이었다. 그렇게 선택을 하고, 오늘 이 자리만 생각하며 살아온 지 20여 년이 되었다. 처음엔 너무 어색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더니 이젠 그냥 자연스럽다. 한해 농사 계획과 학교 사업계획 말고는 인생 계획이라는 걸 세워본 적이 없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늘 오늘이다. 뭘 하겠다는 욕심도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도 없이 살다 보니 귀농해서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걸 경험해 보지도, 아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가끔 내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 시골에서 살며 농사짓고 귀농학교 운영할지를. 내 대답은 늘 똑같다. ‘나도 모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박기윤 화청귀농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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