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낳은 1세대 노동운동가 김소연
전교조가 낳은 1세대 노동운동가 김소연
  • 이정은 기자
  • 승인 2012.11.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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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일 단식과 1,895일 파업 끝에 기륭전자 승리

정화여상 민주화 투쟁, 전교조 <우리교육> 근무

 

노동자대통령선거투쟁본부가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 김소연 씨(42)를 대선 후보로 결정했다. 진보신당도 자체 후보를 내지 않고 김 씨를 지지한다.


김소연은 1970년 가난한 서울 서민의 가정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답십리의 할머니 집에서 부모와 5남매, 삼촌 식구와 고모까지 10명 넘게 바글거리며 살았다. 상계동 달동네로 분가했을 땐 초등학교 4학년. 방 한 칸에 일곱 식구가 뭉쳐서 잤다. 공장 일을 나가야 했던 엄마는 12살 맏딸의 머리를 깎고 밥짓기를 가르쳤다. 아침마다 딸의 긴 머리를 빗겨 줄 수 없었다. 상계동 달동네는 88올림픽을 앞두고 강제철거 당했다.

인문계 가고 싶다는 말은 단칼에 엄마에게 잘렸다. 1986년 정화여상에 들어갔다. 87년 6월항쟁의 물결이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에게도 밀려왔다.


<해직교사들의 못다한 수업>을 돌려 읽으며 전교조를 배웠다. 1987년 11월 4일 학교가 수학여행비, 동창회비, 장학금까지 떼먹은 사실이 전교조 교사들의 손으로 대자보로 나붙었다. 1,000명 넘는 전교생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정화여상 학내 민주화투쟁’은 해를 넘겨 교사와 학부모 1명씩 구속자를 내고 끝났다. 김소연은 그해 겨울을 학교에서 보내면서 삶의 궤적이 바꿨다.


졸업 뒤 한 정신병원 원무과에 들어가 석달 일했다. 원장부인 모임도 챙기고 담배 심부름까지 하는 모멸감의 연속이었다.
해직교사들이 만든 월간 <우리교육>에 창립멤버로 들어가 독자사업부에서 3년 넘게 일했다. 여기서 김소연은 서울지역 출판노조에 가입하고 노조활동을 배웠다.


1992년 10월 구로공단의 갑을전자에 들어가 품질관리부에서 어용노조 민주화를 이끌었다. 1996년 겨울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노개투 총파업 땐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다. 입사 5년만인 1997년 노민추 활동의 결실로 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민주노총으로 전환하고 1999년 임단협 때 처음으로 3박4일 파업을 벌이며 거리로 나왔다.


회장 동생에게 경영이 넘어가면서 갑을전자는 휘청거렸다. 김소연은 파산한 회사와 퇴직금 등을 정리할 때까지 일했다.
6개월 일하면 정규직 전환시켜 준다고 기륭전자에 들어갔지만 회사는 1년이 되도록 전환을 빌미로 노동강도만 강화시켰다.

 

2005년 4월 물갈이 해고가 일상이 됐다. 임금은 늘 최저임금에 맞춰 결정됐다. 결국 그해 7월 노조를 만들어 8월 24일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김소연은 파업 1,000일 동안 해결기미가 없자 목숨 건 단식을 시작했다. 94일째 되던 날 밤새 잠을 못 잤다. 심장압박증상이 심해져 결국 탈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단식만 푼다면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며 울먹이던 기륭공대위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일어나 다시 단식하겠다고 버텼다.


기륭전자 투쟁은 단식 이후에도 한참을 지나 2010년 11월 1일 1,895일만에 회사와 국회에서 조인식을 하면서 막을 내렸다. 기륭은 불법파견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됐다.


지금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평조합원으로 복직을 앞둔 조금 긴 휴가 상태다. 함께 단식했던 유흥희 조합원이 분회장을 맡았다. 유흥희 분회장은 “건강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데 걱정이지만, 함께 후보를 도와 대선을 종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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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후보가 2010년 기륭전자 투쟁 막바지 때 조합원 앞에서 연설하면서 울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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