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보는 세상] 말과 침묵 사이
[작가가 보는 세상] 말과 침묵 사이
  • 박기눙 소설가
  • 승인 2017.10.18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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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말이 세상에 넘치고 넘쳐 어지러운 시절, 신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좀 더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 방법을 연구했다. 어떤 신이 문자를 주자고 이야기했다. 문자로 소통하는 동안 침묵하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말과 함께. 또한, 말은 흩어져 없어지지만, 문자는 그 반대이니 말이 없어지고 침묵이 가득 찰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간에게 문자를 주느냐 아니냐를 두고 격론이 이어졌다. 말이 넘쳐흐르는 인간에게 문자까지 준다면 세상이 더 시끄러워질 거라는 의견과 문자를 줘서 그들을 침묵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고심 끝에 신들은 인간에게 문자와 침묵을 함께 주기로 했다.
허나 시간이 흘러 인간은 침묵을 거세해버리고 말을 뱉으면서는 현재를, 문자로는 기록을 남기는 수단으로 삼으면서 과거와 미래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또다시 수많은 말과 문자로 들끓었다. 신들은 다시 회의를 위해 모였다. 한숨이 오고가는 신들 사이로 침묵이 오랫동안 흘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처음에는 차례대로 소개도 하고, 전체를 향해 이야기하다가 점차 삼삼오오 옆의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다. 옆 사람, 혹은 건너편 사람과 청중과 화자를 넘나들며 열심히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자리가 무르익으면 연설(?)을 하는 이가 생긴다. 그 사람은 목소리를 높여 제 주장을 말하고, 다른 이의 동의를 구하기도 전에 섣부른 저만의 결론을 내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문득 말을 멈춘 순간, 이름 모를 정적이 모두를 감싼다. 어색한 분위기를 알아챈 그는 멋쩍은 듯 웃다가 또 다른 연설을 준비하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주의?주장이나 의견을 진술함’이라는 연설의 사전적 뜻풀이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연설은 평상 시 우리가 말을 하는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내 앞에서 하는 다른 사람의 넋두리가 연설처럼 들린다. 청중도, 논조도, 부르짖음도 전혀 없는 그들의 말에서 왜 나는 연설의 낌새를 느끼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쉼 없이 말을 해서는 아닐는지, 말과 말 사이에 침묵이 필요한 때를 놓칠세라 끝없이 낱말을 잇고 문장을 늘이는 탓은 아닐는지 생각한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과 책을 아는 이는 많을 것이다.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히말라야 서부의 오지,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오래 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이른바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작은 마을 라다크를 지켜보고 쓴 책이다. 그녀가 이곳을 소개한 이후, 라다크는 몸살을 앓고 급기야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가끔 그녀가 침묵했더라면 어땠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녀도 나중에는 후회했다지만 라다크의 고요는 그녀의 발설과 기록으로 깨지고 부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 덕분에 우리는 ‘오래된’이라는 낱말과 ‘미래’를 합쳐 긍정적으로 쓰는 기쁨을 누리고 잊고 살았던 이상적인 미래를 다시 발견했지만, 그녀 탓에 다가온 라다크의 생활과 미래는 오롯이 당겨지고 망가졌으니 말과 침묵의 중심을 잡는 일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한 바위도 원래 흙먼지였던 것처럼 침묵과 말은 바위와 먼지만큼 먼 듯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편이 아니었다. 직설적이고 곧이곧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 일쑤였다. 또한, 말을 하지 않는 상대편이 답답했다. 침묵을 지키는 그들은 분명 뒤에서 더한 욕을 할 거라고 섣부른 짐작을 하기도 했다. 침묵하는 그들이 비겁한 것 같아 속상했다. 뭔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했다. 침묵에 눈을 뜬 것은 아마 모임에서 수많은 이들의 연설(?)을 듣고 난 이후일지도 모르고, 아이를 키우면서 속앓이를 한 이후일지도 모르고, 타인이 침묵했던 까닭을 나중에 듣고 나서일지도 모른다. 타인들이 내 연설을 듣는 동안 그들이 결코 내뱉지 못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흙먼지가 쌓이고 쌓여 바위처럼 단단해질 때까지 그들은 말을 삼키고 참았을 뿐이라는 것도 말이다.


신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문자를 없애면 인간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기록할까? 말을 없애면 세상은 침묵으로 가득할까? 문자로만 소통하는 세상은 과연 조용할까?


인간에겐 정녕 말과 글자에 담지 못한 마음을, 진심을 전달하는 도구는 없는 걸까? 당신은 정녕 무엇으로 소통하는가?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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