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보는 세상]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작가가 보는 세상]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강현숙 시인
  • 승인 2017.10.25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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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전래동요가 있다. 예전에 두 아이 갓난아기 시절 업고 재울 때 엉덩이를 토닥토닥거리며 불러주던 노래였다. 이 동요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의 리듬에 맞춰 부르는 것이라 부르는 박자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했다. 많이 칭얼거리면 경쾌하게 빨리, 등에 업힌 아이를 흔들어가며 약간은 신나게 맞춰주고 잠이 슬슬 들기 시작하면 박자를 늦추다가 어느 정도 잠이 들면 최대한 느리게 들어간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여러 종류의 곡을 번갈아가며 불렀는데 주로 이 노래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유독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음정, 박자, 가사, 모두 음치이다. 아이들이 너 댓살 될 때까지 밤마다 자장가를 불러주었으니 사실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엄마의 음치에 영향을 받아 음악적으로 재능이 부족해지면 어쩌나 하고 좀은 우스운 걱정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래들의 색조가 조금은 쓸쓸하고 가라앉은 듯하다. 리듬과 놀이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건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걱정이 늘어날 때마다 고민하고 대책이 없는 듯 드러눕기도 하지만 사실은 해결이 없는 문제라는 것은 없었다. 하다못해 포기와 체념이라는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살아간다는 것의 놀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논다는 것은 무작정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놀이에도 저마다의 방법과 규칙이 있으며 리듬과 박자가 필요하다. 때로는 긴 휴식이 놀이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직업인 일조차도 놀이에 포함시켜보면 우리는 모두 놀이로써 한 평생 살다가는 것이다. 참 멋진 일이지 않은가. 산다는 것이 한 곡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교향악이든, 전래동요가 되든, 우리는 각자 자신의 리듬에 올라타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가끔 노래가 어긋나게 되더라도, 노래가 들리지 않는 침묵이 오래 계속되더라도, 숨이 넘어가는 소리 들려오더라도, 음정 박자 가사 모두 음치인 곡을 부르더라도, 눈이 가려진 채 앞만 보고 성급히 달려가더라도, 질질 늘어지도록 지겨워 잠에 들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 한 곡이 매력적인 노래, 놀이였으면 한다.


때로는 외줄타기를 생각한다. 그 아슬아슬한 곡예를 생각한다.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균형을 잡으려 하며, 아름다운 곡예비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또한 바란다. 한량무도 태평무도 살풀이춤도 한 판 벌이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한량처럼 절제 있게 우아하게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경쾌하게 손과 발과 어깨로 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정말 나에게 기회가 한 번 주어진다면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승무를 한 번 추고 떠나고 싶다. 마지막으로 추는 춤이 살풀이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살풀이춤을 다 추고 호흡을 고르고 더 이상 달래줄 혼이 없을 때까지 비워지고 싶었다. 눈물도 비우고, 억울함도 비우고, 너와 나에 대한 경계도 비우고 이 축제를 끝내고 싶었다. 엄마의 봄날의 가무처럼 한 판 신명나게 이 생 놀다가는 것이다. 봄마다, 또 봄이 온다면 내게, 놀다가 놀다가 떠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도 놀고, 걸어가면서도 놀고, 울며 웃으며 나는 늘 놀고 있는 것이다.


강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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