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톺아보기] 문학 수업과 감동 - 저물 무렵의 깨달음 -
[교육 톺아보기] 문학 수업과 감동 - 저물 무렵의 깨달음 -
  • 서상호 효정고 교사
  • 승인 2017.10.2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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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부 강사 초청 강연이 있었다. 시험 기간 중 바쁘게 몇 개 강연을 한꺼번에 겹쳐 치르는 행사였고, 특히나 독서교육 강좌라는 게 국어교사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라 일을 주선하는 입장에서는 동료 교사들의 눈치를 살필,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강좌에서 내게는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사실 그건 새삼스레 새롭달 것도 없이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하는 일이지만 내 수업 속에서는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강사는 우선 시와 그림을 배합한 종이 수십 매를 펼쳐 놓고 각자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고르게 했다.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강사는 친분을 빌미 삼아 나를 지목하고서 골라잡은 시구를 낭송하게 했다. 내가 고른 시구는 김선우의 시 ‘낙화, 첫사랑’ 중의 앞부분이었다.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낭송을 마치자 강사는 내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구절을 골랐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거기까지 물어 오리란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말을 꾸며낼 겨를도 없어, 나는 더듬거리며 그 잠깐의 생각을 털어놓고 말았다. 내 옆 자리에 계시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분. 그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연유도 모르면서, 그저 가까운 사이라 믿고 자꾸 문자로 소식을 캐물었던 내 조급증이 죄스러워 잠깐 목이 메었던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를 읽고 수업을 해 왔지만, 수업 속에서 읽은 시의 구절이 내 삶의 사연과 맞부딪쳐 공명을 일으키는 경험은 자주 하기 어렵다. 수업 속에서는 언제나 시를 한 편 통째로 다룬다. 작품을 하나의 구조로 다루려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독자의 삶에 공명을 일으키는 시구 하나를 콕 집어 다루는 일은 드물게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작업은 수업이 아닌 여가 시간의 한담 속에서나 가끔 해 보는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문학 체험은 작품의 내용과 우리의 삶이 공명을 일으키는 경험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학습자가 주체가 되는 활동으로서 ‘감동’이랄 수 있겠는데, 사실 이 감동이야말로 문학적 체험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공감을 문학 수업의 중심에 놓기보다 그저 작품의 구조적 해석에만 매달린 나머지 정작 문학적 감동이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일었던 것이다.


사실 김선우의 시 ‘낙화, 첫사랑’을 작품 전체의 의미로 놓고 본다면, 그 자리에서 내가 느꼈던 감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다만 그 시의 앞부분 몇 구절이 깊은 의미로 다가왔고 그걸 읊으며 목이 메었던 것이다. 특히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라는 구절의 그 넉넉한 너그러움을 가슴이 저리도록 절절이 끌어안고 싶었던 것이다. 이 생생한 감동 앞에서 작품의 구조나 맥락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작품은 읽히는 순간 독자의 몫이 된다는 진리를 이로써 체득하고도 남을 일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날 있었던 두 젊은 여선생님들의 발표 또한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분이 각각 어떤 시 구절을 짚었던 것인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연배가 비슷한 두 분은 모두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이야기하셨던 듯하다. 아마도 그 순간 그 분들에게는 그 주제가 가장 절실했으리라. 읽는 이에게 가장 절실한 의미로 읽히고 그 절실함으로 해석되어 지는 것, 이것이 바로 문학의 진실성 아니겠는가?


문학은 우리가 해석해 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공명을 일으키는 울림이요 물결이다. 때로 그것은 내 살결을 가볍게 간질이고 지나가는 쾌감이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무거운 체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역동성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은 하면서도, 나태한 습관처럼 나는 문학 작품을 늘 해석의 과제로만 다루어 온 것이 아닐까 반성이 일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이렇게 저물녘에야 찾아온다.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그렇듯이. 


서상호 효정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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