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이 사람]‘덕구버스’를 만들어 도시재생 건축사업을 하고 싶은 석덕구 님을 찾아서
[울산 이 사람]‘덕구버스’를 만들어 도시재생 건축사업을 하고 싶은 석덕구 님을 찾아서
  • 인터뷰어 이동고 편집위원
  • 승인 2017.12.27 09: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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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버스 석덕구 대표

아름답고 실용적인 건축에 대한 열정, 버스기사가 되고 싶어했던 꿈은 결국 '덕구버스'로 모아질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제적 자유’와 ‘시간 여유’. 가족과 자신 행복을 위해 30대 중반에 직장을 정리하고 건축시공자가 된 사람. 건축 직영 시공자로 걸어왔던 경험으로 고객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도시 대규모 개발이 아닌, 소액투자자와 함께 하는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이 많다. ‘덕구버스’는 남자로서 가진 로망의 종합판이다.    


1. 일반회사를 다니다가 건축시공업을 하게되었다 들었는데 결정 당시 생각은 어땠나?


나는 살면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주를 보더라도 직장 승진운이 있다고 하고 직장생활도 순탄한 편이고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IMF 터지고서 ‘안정된 직장이 최고다’라는 분위기였다. 공교육도 정해진 틀 안에 매여 있고 원래 마인드가 ‘닥치는 곳에서는 최선을 다하자’였다. 직장생활은 소프트웨어를 전공했는데 전자 쪽 하드웨어 업무가 주였다. 창원에 있는 현대계열사였는데 군대식 문화가 많았다. 회사가 부지런히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더라. 어느 날 파트장님이 ‘밤새워 봤냐’고 물어 보더라. ‘나는 밤을 새워 이 자리까지 왔다’면서. 1년차 신입사원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담당자가 퇴사를 하고 시스템을 모르고 최초 국산화된 제품을 품질안정화를 하는 업무였는데 한 달 반을 밤샘작업을 해봤다. 중간에 에러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보는, 시험장비를 가동하는 업무, 최초 생산품 테스트를 잘 안정화시켜서 사원 때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나는 창원에 근무했고 결혼과 동시에 주말부부였다. 어느 날 딸이 새근새근 자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 애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 고민했는데 보니 답이 없더라.


회사 선후배에게 물어보면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 성공한다’, 친구들은 그냥 ‘술이나 마셔라’ 하더라. 친구는 그런 존재니까. 두 달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원래 책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때 40권을 봤다. 가계부, 통장 관련 책, 아껴 써라 등 <당신이 모르는 28가지 재테크의 비밀> 등등 동네 도서관에서 봤다. 아내가 권하던 책이다. ‘가계부, 체크카드 써라’, ‘현금 흐름을 완성해서 현금이 오가는 것을 봐라’ 그걸 가지고 실천했다. 되돌아보면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내하고 책을 보고, 같이 실천했던 책이었다.


2. 회사를 그만 둔 두 번째 고민은 무엇이었나?
 
그 다음에 관심을 가진 게 재테크에 대한 것이었다. 창원에서 투자, 공부모임에 다녔다. 창원에서 재테크 모임, 갭투자 모임에 들어갔는데 그 때 둘째가 태어났다.


직장을 다니면서 투자를 하던 시절이었고, 그 때 생각이 내가 간간히 투자해서 윤택하게 살면 둘을 데리고도 행복하게 살겠구나 생각했다. 주말에 첫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투자를 하러 다녔다. 하루에 3~4채 매물을 확인하고 살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네 살 큰 애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나온 매물을 확인하러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올라가기 싫어’하며 손을 당기는 딸애 손을 잡아 당겼다. 그때 나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나를 당기는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행복하려고 재테크를 하고 맞벌이로 살고 있는데 행복한 느낌이 안 들더라. 직장 다니면서 갭투자 방식은 행복도 못 얻고 우리가 원하는 경제적인 자유는 얻지를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딸애들 등하원을 다 시킨다. 그동안 못했던 것을 지금 다 한다. 시간적 여유가 아주 만족하는 부분이다.


3. 꿈이 버스기사라던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꿈이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버스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면접 볼 때도 ‘미래 희망이 뭡니까’ 하길래 ‘버스기사입니다’ 했다. 나는 20대부터 버스기사를 하고 싶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뛰는 존재로 보이더라. 버스가 지나가거나 버스 자체가 좋아 보였다.


버스기사는 남자라면 가슴 뛰는 일처럼 느껴졌다. 차가 지나가는 일도 좋았다. 옛날 ‘스피드’ 영화를 봤는데 차 안에 폭탄이 설치되었으니 몇 킬로미터 이상 달려라 했던 영화. 그 때 ‘버스가 좋네. 멋지네’하면서 버스 대형면허를 땄다. 어찌 보면 남자의 로망, 건축의 열정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나중에 버스를 몰면 나만의 버스를 몰고 싶다. 버스기사란 직업이 시간적으로 가족과 함께 오래 못 있을 거 같아서 조금 미루기로 했다.


두 번째 꿈이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짓고 싶었다.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짓는 집.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있고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도 있겠다.


아내에게 그 전부터 ‘내 사업을 하겠다. 언제인지를 정하지 못하지만 나온다’고 했었다. 아내도 맞벌이지만 회사 관리직에 있으면 토, 일요일에 불려 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열심히 근무해 온 차장, 부장 모습을 보면 간부들 표정이 다 어둡더라.


내가 힘이 없고 열정이 없으면 한 해 한 해 불안하다. 주변에서 사업은 40대는 시작하지 마라, 40대는 열정은 넘치는데 몸이 안 따라 온다고 한다. ‘서른아홉 살에 하겠다’고 말했었는데 아내가 나오려면 지금 나오라 하더라. 그래서 작년 초에 서른다섯 살에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더 해 달라는 분위기였는데 나도 마음이 약해져 한 달 월급 더 받아 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생기기도 하더라.
사업도 내하고 접하는 그 사람만 잘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도 사람을 끌고 오는 능력은 있었으니 건설업을 하는 것도 사람을 붙이고 관리를 하고, 전차를 만들고 조립하고 문제가 생기면 풀어나가는 방식은 똑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시공현장에 작업반장이나 현장사람들이 무섭게 생겨서 남 공사현장에 들어가는 것도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부딪쳐보면서 해보니까 내 생각이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덕구버스

건축강의내용에는 재무인생목표, 초보건축시공업자로서 부딪쳐 해결해왔던 경험이 녹아있어 쉽게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4. 지금까지 집을 몇 채 지었나?


2년 동안 네 채를 지었는데 다가구주택, 상가주택이고, 토지나 오래된 집을 사서 건축하는 방식이었다. 땅값이 울산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본가가 경주인지라 경주를 중심으로 지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근처 다가구주택 공사를 한다고 터파기를 하고 1층 기초바닥을 만드는 시점에 지진이 났다. 퇴사는 했고 나는 업을 시작했고 계속 지어야 할까 말까 고민이 생기더라. 공사비를 투입하기 전이라 계속 지을까 말까 고민했다. 기로에 섰다. 나는 위기라 생각했고, 어렵게 지었다. 다른 시공업체들이 짓지 않은 덕에 신축건물이 내가 지은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매도도 잘 됐고,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경제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우리 나름 목표로 하는 목표액이 있을 건데, 인생에 한 번에 큰돈을 벌거나 아니면 안정적으로 오래 벌거나 그런데 인생이 다 간다. 건축은 어렵고 내 나이 때 건축시공자가 없었다. 그 전 세대들이 은퇴를 하고 뒤를 이를 세대가 많이 없으니 자연스레 건축시공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연봉 이상 경제적인 자유는 아니더라도 시간적인 자유는 얻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건축에 대해서는 어떤 분야를 특색 있게 접근하고 싶나? 

 

지금까지 지은 다가구주택, 내.외관에 젊은 디자인 감각들을 넣었다. 임대세대 같은 경우는 들어오는 연령대가 20대, 30대다. 그들 감각을 익히고 큰 틀에서는 각광받고 있는 셰어하우스, 셰어오피스 같은 전용 셰어하우스를 만들 계획이다.


 아침에 준비하는 시간이 겹쳐지니 화장실, 부엌 등 공간이 좁다. 그것을 집 설계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건축사업가가 풀어내야할 숙제다. 내가 직접 운영은 안 하지만 보증금이 싸다. 집을 구하는 문제는 결국 비용대비 만족도를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집만 짓고 다른 분들은 운영을 하는 것이다. 의외로 인기가 많아 입주대상자를 두고 면접도 본다. 아직 완성을 하지 않은 설계단계지만 테라스 부분을 활용하는 설계를 하고 있다. 안에서 앉아 맥주를 한잔하며 대화도 가능하고, 동네가 허락한다면 바비큐도 가능한 자신들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이런 단점을 장점화하는 것이 셰어하우스에 적용 가능하다.


6. 풍수 인테리어 등 공간이 주는 사람에 대한 영향을 어떻게 보나?


나는 수익물이 일차적으로 문제인데 부부간에도 독립된 공간, 프라이버시 공간이 필요하다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존중한다든지 등등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는 이혼까지 한다. 남자들이 쉴 수 있는 방이 필요하다든지, 건담 조립 등 빠지는 취미를 보장 받는 일이든지. 집에도 현재 내 공간은 서재 밖에 없다. 나머지 공간은 아내 취향대로 맞춰진 공간이다. 일상을 다 나누는 공간구조이면 굳이 부딪힐 것도 없는데 신경 안 써도 될 것을 가지고 충돌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상가주택방식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설계하고 4층이나 옥상공간은 건물주가 활용한다. 지금 지어지는 건물은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두었더니 50~60대 부부들이 아주 관심을 가진다.


7. 강의도 한다고 들었다.


‘텐인텐창원’ 처음에는 스터디 모임인데 강의를 해보라고 해서 지나왔던 삶을 정리하고 이후 계획까지 짜보았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방식을 고민한 것이었는데 이후에는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고민을 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후 살 집에 대해서는 부부가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서른네 살에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계획이나 목표를 설정해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가족은 어떻게 살고, 나는 돈을 어떻게 벌었으면 좋겠고... 외적으로 목표 금액은 부동산에 투자해 가면서 채권을 다 회수하면 원금 까먹지 않고 이율로 살아가는 정도의 금액이다.


그 외의 시간은 사회활동을 위해 살아가는 시간을 꿈꾼다. 이런 계획을 세우니 직장생활 은퇴가 39세였고, 40대 강의활동을 하겠다는 목표도 더 당겨졌다. 내 목표 설정이 아주 중요하구나. 바깥에 공표하니 내가 스스로 지켜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사업으로 고민하며 직접 지어 본 경험으로 강의하시는 분이 없었다. 대부분 종합건설사 또는 건축사가 강의하는 정도였는데 실제 건축시공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은 안 됐고, 직영건축을 직접 하고 있는 지금, 남들에게 건축사업을 하며 부딪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강의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부지 매입부터 건축 사전준비, 건축시공 관련 총괄하는 강의다. 대출은 수지타산은 어떻게 맞추고, 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잠재수요자가 될 수 있다. 매도하는 것까지 보여준다. 내가 가진 지식을 줘야겠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고, 직접 해오면서 힘들었던 것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건축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어려워한다. 건축을 학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용어 장벽을 조금 낮추고 싶은 것이다.


철학, 인문학이라면 어렵다. 그건 단순하게 보면 내 생각, 내 신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일 내가 건축학과를 나온 사람이라면 강의 내용이 무척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수요자와 눈높이가 비슷한 것이 장점이다. 이 땅이 경제성이 되냐 안 되냐 같은 것을 봐주는 일을 한다. 집을 짓고 싶어 하는데 건축 방법을 물라 겁나서 도전을 미루는 사람들이, 강의 듣고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주로 짓는 건축물 트렌드는 아파트에 따라간다. 건축시공사업가가 보는 땅의 가치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석장리안채(덕구버스)

원룸을 지어도 특색있는 외부디자인, 실내공간 분할도 입주자들 성향을 고려해 수많은 고민을 한다. 


8. 앞으로 만들고 싶은 건축이 있다면?


요즘 아파트들은 일단 주차부터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지하주차장은 필수가 되었고, 지상 주차장이 없는 단지를 선호한다. 커뮤니티 시설도 기본으로 들어와야 하고, 단지 내 수영장 그리고 조식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아파트도 등장했다.


우리도 1~2인 가구에 대해서 변할 것이다. 지금도 작은 땅을 효율성 있게 쓰는 방법을 고민한다. 공간 활용만 잘 하면 셰어하우스 구조에도 헬스장, 공부방도 가능하다. 소형주택은 주인이 다 다르니 규모가 커진다면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면 좋다. 지금은 원룸을 지어볼까 하는데 거기도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더라. 혁신도시도 고임금자가 수요자니 들어와서 기존 원룸이 참패를 당했다. 아빠는 매주 올라가야하지 않나. KTX 셔틀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 승용차나 승합차로 운영하며 관리비로 보전 받는 구조, 수지타산보다는 입주하는 사람에게 달콤함을 주는 방식을 갖고 고민을 한다. 현재 아내는 안전이 뛰어난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고 나는 상가건물 4층에 살고 싶거나, 큰 저택에 살고 싶다. 우리 집은 아직 앞으로 살 집이 합의되지 않았지만 계속 맞춰갈 것이다. 집 지을 때 가장 행복하다. 집 지을 때 눈빛이 달라진다.


9. 건축시공자로서 자신의 일의 가치를 설명한다면?
 
내가 직접 지은 건물과 방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짜릿함이 몰려온다. 내가 지은 건물에 누군가가 와서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그 모습도 상상이 되면서 말이다. 이 건물이 쭉 이어진 거리를 또 만들면 거리가 환하게 살고, 동네가 바뀌는 모습도 상상해보면 참 재미있는 직업임은 분명하다고 느낀다. 정부에서 강조하는 도심 재생사업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고, 대자본이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도심에서 생활하는 소형주택 거주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주택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언젠가는 ‘덕구 애비뉴’(AVENUE, 큰길, 대로)도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0. 앞으로 계획은?


직영건축으로 쌓은 경험을 강의 활동을 계속하면서 좀 더 전문성을 갖는 건축시공 사업가가 되고 싶다.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퇴사 후 틈나는 대로 다닌 울산 골목골목 길에 특색 있는 거리,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거리를 중심으로 ‘울산덕구투어’(울덕투어)도 진행했었고, 앞으로도 건축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건축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었는지, 왜 이 거리가 변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덕구투어’에서 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버스기사’의 꿈도 이룰 것이다. 함께 부를 증식시키고 경제적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게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언젠가는 전국 방방곳곳을 누리며 집 짓는 꿈을 이루고 부동산 재테크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 ‘덕구버스’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이동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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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p 2018-05-19 13:35:28
I can do it. We can do it. Go korea!

제 꿈은 건축가입니다 건축가가되어 쫌더많은 건축물들을만들어

그건축물에 살고있는 사람들이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작지는 않은

꿈이있습니다

임금정 2017-12-30 18:06:42
참 용기가 대단 하시네요

안정된 직장을 뿌리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 일수있는데

당신의 열정이 그 무모함마져 녹여

아름다운 결실을 하나둘 맺어 가는가 봅니다

덕구버스 언젠가 저도 동승해 보구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