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이 사람] 정치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절실히 깨달았다는 윤영미 님
[울산 이 사람] 정치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절실히 깨달았다는 윤영미 님
  • 인터뷰어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01.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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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점을 풀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문제, 정치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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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온누리는 친환경재료를 쓰는 사회적기업이다. 친환경급식센터를 그만 둔 윤영미 씨가 자주 들르는 곳이다.>


어떤 일이든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보면 결국 지역문제,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환경급식센터 일을 하면서, 또 우연히 주택조합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정치나 지역문제에 눈뜨게 되었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는, 잘못한 점은 지적하더라도 잘하고 있는 것은 칭찬하는 데 인색한 현재 우리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 친환경 급식지원센터에서 구체적으로 한 일은 무엇인가? 


동구청에서 지원하는 친환경급식지원센타에서 근무했다. 올해부터는 중학생들까지 무상급식하기로 결정됐다. 초등학생은 친환경까지 하는데 초등생은 차익 부분만 지원을 하고 중학생은 무상급식만 하는 걸로 결정됐다.


구청에서 센터를 만들고 내가 들어가게 됐고, 보통 최저가 입찰을 하는데 친환경은 적정가격을 정하는 분들이 계셔서 각 영양사, 농사꾼, 지역전문가가 참여해 적정가격을 결정한다.


학교에 공지를 드리고 식단이 나오면 받아서 우리가 발주를 한다. 재료에 가공식품도 있으니 그런 업체를 발굴해서 관리하고 업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센터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이동거리를 줄이자는 ‘로컬푸드’였다. 동구에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 곳이 없어 가까운 북구에서 작목반을 만들었고 북구에 있는 센터 공간을 같이 쓰면서 일을 했다. 학교 선생님이 발주를 넣으면 학교 사정에 따라 변경이 생기는 것을 챙기는 것도 우리 일이었다. 학생들 대상으로 농가에 데리고 가서 농사체험과 수확도 해보는 교육도 했다. 때로는 거기서 피클이나 딸기잼 같은 것을 만들어 가는 체험 일까지 해봤다. 채소를 먹지 않던 아이들도 농장을 방문해서 농사체험을 직접 해보고 나서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만큼 농사체험은 중요하더라. 


1년으로 치면 동구 초등학교가 16개이고 학교 한 반이 오는 방식으로 횟수가 16번도 안 됐다. 10번에서 8번까지 줄더라. 학생들 반응은 좋았지만 아이들에게 지자체가 예산을 쓰는 일이라 표가 안 되니 갈수록 기존 예산도 못 지키고 예산이 자꾸 줄더라.


2. 친환경무상급식지원 일로 친환경 농사가 많이 활성화 되었나?


초등학교만 들어가다 보니 처음에는 북구에서 먼저 진행했다. 물론 기존에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왕 농사짓는 것이면 친환경으로 해보자 하면서 처음 하는 분들도 있었다. 친환경급식으로 마음이 맞아 작목반을 만들고 농사짓는 분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그런 것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물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영영사분들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크기도 좀 있고 보기에도 좋은 것을 원하지만 동구 선생님들이 많이 이해해줬다. 4~5년차 접어드니까 농사짓는 분들도 터득해서 그럴싸하게 모양이 나와서 점차 안정적으로 정착화 되었다.


기존 친환경 물품보다는 계약재배와 직거래를 하는 것이니 가격대가 낮았고, 공동구매 방식도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친환경 먹거리와 겉으로 비교하면 경쟁력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 그냥 시중에 나가서는 그 물건으로는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다. 친환경 농사가 그렇게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같이 살아야하기 때문에 북구, 동구 초등생만으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너무 좁다.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넓히려고 애썼지만 예산 지원이 잘 안 됐다. 올해부터 중학생까지는 무상급식은 된다고 하는데 ‘친환경’까지는 안 되어 아쉽더라. 교육청에서 지원되고 일부는 지자체에서 지원되는 것인데, 친환경이라면 끼니 당 100원에서 300원정도 무상 지원되는 방식인데 500인 미만 학교 등은 규제가 있었다.


우리 동구 같은 경우 이전에는 초등학생 6학년만 구청에서 친환경 급식비를 지원해주던 방식이 되었다. 1학년에서 5학년까지는 학부모로부터 직접 친환경 급식비를 받고 지원하는 형태였다. 이제 초등생은 완전히 친환경무상급식이 된 것이니 초등 6학년 아이들에게 갔던 예산을 조금만 확보하면 중학생에게도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이 갈 수 있다. 그런데 안 됐다. 내가 부모로서 아이를 키워보니까 아이는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같이 키우는 것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안타까웠다. 


3. 친환경 급식효과가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라 어려움도 있을 텐데 친환경 급식을 하는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내가 기본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가 천식, 아토피가 심했고 지금은 고등학생인 그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친환경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백화점 코너에 가야 구할 수 있었다. 친환경 급식은 아이들에게 힘을 키워줘는 일이라고 본다. 안 좋은 것이 몸에 들어왔을 때 받아 쳐내고 그걸 희석해서 배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이들이 삼시세끼 다 친환경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때로는 아이들도 바깥에서는 군것질도 하고...


적어도 학교는 아이를 가르치는 공간이지 않나. 먹는 것도 교육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봐야 한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아이를 제대로 먹이자는 것이다. 모든 제품을 다 친환경 급식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재료가 없는 것도 있고 해서 그 중에 최대한 나은, 친환경에 가까운 것을 고르고 하는 방식이 된다.


친환경 농사를 짓다가 자연스레 ‘생협’이나 ‘한살림’에 납품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북구 농협하나로마트에 친환경 로컬푸드 매장이 따로 있으니 농가가 도움을 받는다.


4. 친환경 급식을 하면서 체험한 결과가 있다면?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유치원을 다니든 바깥에 다닐 때도 도시락을 싸다니고 했던 아이다. 이제 친환경 음식을 먹이니 아이들이 덜 산만한 것 같다. 인스턴트 위주로 먹었던 아이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안정이 되기도 하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많은데 그런 아이들은 방치가 된다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바빠서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는 습관이 많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크다보니 그런 인스턴트 음식을 선호한다. 집에서 먹는 한 끼, 두 끼 정도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먹이자는 그런 주의다. 요즘 부모님들이 다 맞벌이를 하지 않나. 그러니 학교에서나마 한 끼 정도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자는 것은 아주 현실적 절박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5. 초등학교 문방구 주변 먹거리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초등학교 문방구 주변에서 파는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하다. 우리도 그런 문제를 잠시 고민해보았다. 우리들 자랄 때와 큰 차이점은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이 자랄 때 그런 것을 먹어도 아토피나 천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쫀득이, 비닐과자, 뽑기, 사탕도 입에서 빨면 금세 혀가 새빨개지는, 라면 봉지 들고 다니며 부서 먹지 않는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때는 집밥이 뒷받침이 되면서 군것질을 한 것인데 지금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지금 부모들은 아이들이 먹는 것에 대해 너무 관대하지 않나? 배만 부르면 된다는 생각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아이들을 관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쉽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전화 한 통화로 인스턴트 음식이 배달되는 문화도 일조하게 된다.


사실 나도 아이들에게 안 먹이는 것은 아니다. 나도 먹고 아이들도 다 먹는다. 실제 맛이 있다. 하지만 늘 그걸 먹는 아이와 어쩌다가 먹는 아이들과는 다르더라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덜 안정되고 집중력도 많이 떨어지게 되더라는 거다. 나도 아토피로 희생타를 하면서 농사짓는 분들, 병원, 약사와 만나보면 모든 것의 출발은 먹는 것이더라. 먹는 것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들 신체와 정신이 다 망가질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이 출발이다 생각한다.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


내 아이들도 집 음식이 심심하고 맛없다고 한다. 바깥음식이 더 강하고 자극적인 맛이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강한 맛을 선호하니까. 내가 음식을 잘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집에서는 미원, 다시다를 쓰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데 원재료가 제대로여야 그런 맛을 살릴 수 있다.


6. 친환경 재료로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공간인 라온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여기도 가능하면 친환경 재료를 쓰려고 노력하고, 구할 수 없거나 단가가 너무 높아 버리면 쓸 수가 없는데 이곳은 좋은 재료를 쓰고 있다. 여기 같은 경우에는 이 불경기에게 한 달에 한 번, 지역에 있는 아동들을 불러 한 끼 식사하게 하고 피자, 스파게티, 돈가스 중에서 골라 준다. 이번 주 월요일 할 때 내가 자원봉사를 왔는데 애들이 너무 잘 먹고 좋아하고 신나하더라. 가격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만 최대한 마지노선을 잡아서 가격을 안 올리려고 애쓴다.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 맨 적도 있다지만 성경식 셰프가 재능기부를 해서 목살, 삼겹살을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 소스도 직접 만든다. 셰프도 이사장도 자원봉사를 통해 도와준다. 내가 원래 치즈를 좋아하는데 여기 치즈가 너무 맛있다. 비법을 물어서 샐러드용 니코타 치즈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더라.


아이들이 주로 먹으니까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 니코타 치즈, 수육, 훈제, 삼겹살은 돈도 안 받고 재능기부로 하니까 좋은 재료로 저렴하게 맞출 수가 있다. 


7. 동구 분위기가 어떤가?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은 보이는데 대책이라는 것이 급조하다 보니 어설프고 문제가 많다. 센터에서 일하면서도 진행되는 것도 너무 답답하더라. 실적위주 보여주기 식 행정으로만 접근하려고 한다. 기술이나 직업으로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강사진 양성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참 안타깝더라. 

 
나이 드신 분들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연세 드신 분들이 잘 안 보이더라 집 주변을 돌아보면 연세 드신 분들도 안 보이고 빈 집도 많고 주인만 앉아있는 식당도 많고. 부모님도 최근에 귀농을 하셨다. 우리 부모님들도 두 분 다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해봤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 직접 텃밭도 가꾸고 몸에 배어있는 분이라 어려움이 없다. 귀농하고 실패하는 분도 많고 주민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렇고, 자연도 모르고 훼손하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과 오해도 쌓이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얘기하시더라. 작은집, 친척 분들이 거기 계시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일 년에 몇 번씩 오가면서 했기에 일반 귀농인과는 조금 다르다. 한 3개월 만에 동구 집에 오셨는데 며칠 안 되어 바로 가시려고 하더라. 이 동네 할배 할매들 다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길도 아닌데 심심하다 하더라. 아침에 일어나면 ‘점방에 불 피워 하는데.’ 동네 노인분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 모양인데 그 불 지피는 일을 하는 당번인 모양이더라. 본인이 안 때도 주인이 알아서 때는 데도 굳이 가셨다.  


우리 부모님은 여기 동구에서 텃밭농사를 지을 때도 큰 농사를 지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것은 싫어한다. 음식 다 만들어 가져오면 좋아하는 편이다. 농사체험을 이끌 때는 내가 먼저 맨손으로 흙을 만져야 아이들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것이지 체험이자 놀이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전에 숲체험 강사자격증도 따고 체험활동 강사생활도 했다. 한 때는 아이들 데리고 많이 다녔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집에서 하는 것은 주로 일이 되지만, 바깥에 나가면 아이들하고는 놀이고 체험이지 일이 아니다. 부모님이 하는 것은 ‘일’이다.


8. 노후생활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나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그동안 아이 키우는 등 생활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지금은 여행 다니는 것이 좋다. 안 가본 곳, 만나지 못한 사람 만나는 것이 너무 좋다. 금전적으로 힘들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지금 안 하면 나이 들면 후회하고 더 힘들어 질 것 같으니, 다녀보자고 마음먹는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안 따라 다닌다. 어렸을 때는 토일 놀지 않나. 금요일 저녁에 할 일 없고 심심하면 지금 어디 가볼까 하면 아이들 짐을 싸고 바로 간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면 여기 괜찮네, 여기서 잘까, 가까운데 절이 있네... 박물관이 있어 가볼까 해서 갔는데 그날이 휴무인 적도 있다.


아이들이 크니까 지금은 잘 안 된다. 이제는 혼자라도 다닌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자하는 것이 강하다. 접하지 않은 더 새로운 모습과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걸 추구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책도 좀 봤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직접 부딪쳐보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본다. 책 속에 지도는 있지만 길은 없다. 책과 자기 경험이 적절하게 섞이면 다르다. 책을 쓴 사람은 이랬는데, 내가 경험했을 때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네 하는 생각. 경험을 하지 않으면 그 책 내용대로 그렇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일이 빨빨 돌아다니는 것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나이에 비해 사람들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다. 그 실망한 가운데 정말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되더라. 어떤 일을 할 때, 그 힘듦도 사람이 주는 것이지만 그럴 때 내 옆에 있어 힘을 주는 사람도 또 다른 사람이더라.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젊은 30대 친구들을 보면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강하더라. 우리 부모나 부모 세대를 보면 우리가 무척 이기적이지 않나. 그런데 나하고 젊은 세대를 비교하면 나보다 훨씬 이기적이다. 정말 자기밖에 모른다. 선거가 어찌되든지 말든지, 지역사회에 관심이 없다. 그들도 애를 키우고 있고 역시 경험이라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벽을 쌓아두고 그 너머로 넘어가지 않고 자기 테두리 안에 갇혀 산다. 나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


9. 주택조합 일을 하다가 큰일을 겪었다는데 그 이야기를 좀 들려 달라.


주택조합을 했다가 문제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일반 조합원을 모아서 아파트를 짓는 일이었다. 주도하는 조합원이 사업이 안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의도적으로 속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30대가 먼저 알게 되었고 알리고 다니면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센터 일을 보면서 밤에는 아파트 조합 일도 하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마음먹고 10명부터 시작했다. 나는 약수동쪽이었는데 중구, 남구, 북구 그 아파트와 관련된 조합원이 다 깔려 있는데 다 문제가 있었다. 한 5년 전에 그 조합 일 했고 싸우는 과정에 나는 짤렸다. 그 일을 하면서 동지회가 만들어지면서 누나 동생하면서 끈끈한 관계로 지금 만나고 있다.


그 당시 300대 30명 수준으로 싸우면서 나는 밀려 나왔지만 이번 주에 뒤집었다. 술좌석에서 “정말 대단하다, 누나는 이걸 어떻게 꾸준히 지금까지 이렇게 하느냐” 묻길래 “이것도 대가가 따라와. 좋게 바꿔놓으면 우리한테 혜택이 오는 것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 일 자체가 당장 효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당장 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 모두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문제가 될 수 있다. 관심을 가져라.”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라 들어간 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주택법이 문제가 많다. 신축인데 주택법이 재개발주택법과 애매하게 묶여 있다. 대행업체나 건설업자는 이걸 꿰뚫어 보고 신축이나 재개발에 뛰어든 사람들을 이용만 한다. 어려운 전문적 영역인데 공부해가며 물어가며 싸웠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우리 엄마 아빠 행복했을 것이라 했다. 


2년 정도 기간이었는데 바짝 싸운 것은 1년 정도였다. 1년 전에 뒤집으려고 했는데 41표가 모자라 뒤집지 못했는데 그동안 내 집을 장만해버려서 이제 조합원이 안 된다. 법이 제대로 안 되서 그렇다고 보고는 북구, 동구 국회의원 사무실 가서 이런 법률 만들어 달라고 부탁도 했다. 피해를 본 조합들이 여러 곳 많다. 우리는 기본 돈은 나갔지만 대출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피해를 크게 보지 않았다. 정치문제라는 것이 내가 겪고 보니 이런 것이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구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치문제에 신경 쓰게 되었다.


최근에도 최저시급은 올랐는데 월급은 똑같다. 시간은 줄이고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그걸 악용하는 사람을 욕해야 하는데 ‘나는 500원 받는데 너는 왜 1000원을 받느냐’면서 노동자 끼리 분열과 반감을 조성한다.


친구가 여성만 일하는 회사를 다니는데 툭 하면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업주를 바꾸고 퇴직금을 정산하고 편법을 쓴다. 노조도 없고. 사람들이 부당한 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안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도와줄 방도가 없다.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는 남 이야기는 쉽게 하지만 칭찬에는 참 인색하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면 되는데, 정치권에 대해서도 잘한 것은 잘한다 하고. 우리는 칭찬에 인색해진 것 같다. 남을, 옆에 있는 사람을 칭찬하면 내가 낮아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남을 헐뜯거나 안 좋은 점을 보는 데는 촉각을 세우는데 좋은 점을 보여주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 같다. 학교폭력, 학교폭력 하는데 사실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본다. 엄마가 ‘저런 애들하고 놀지 마. 현재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리지 않아도 돼.’라고 가르친다. 부모들도 인식이 바꿔져야 할 것 같다. 좋은 점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사람을 볼 때도 저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할까 하는 식으로 많이 보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묶이는 패거리문화, 그 무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같이 하지 않으면 버림받는 왕따가 되는 문화, 그런 문화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터뷰어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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