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전리 각석은 한반도 동,남,서해안 파노라마 지도다”

인터뷰어 이종호 / 기사승인 : 2018-02-28 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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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울산저널 기고(인터넷판 1월 19일, 지면 1월 24일자 270호)를 통해 천전리 각석은 한반도를 그린 선사시대 바위지도였다고 주장한 백무산 시인을 22일 만났다.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을 돌아보고 언양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백무산 시인은 천전리 각석이 한반도 동,남,서해안을 30킬로미터가량 폭으로 그린 파노라마 지도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내놓았다. 백 시인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천전리 각석이 바위지도가 아니라 선 문자 단계의 선사시대 기호라면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잇는 중간단계 그림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발견되지 않았고, 그림문자에 걸맞는 양식의 체계와 배열의 규칙성도 전혀 없다며 천전리 각석의 제작 연대도 반구대암각화보다 후대의 것이라고 할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천전리 바위지도의 패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산을 사각형과 마름모, 원으로 표시했고, 산봉우리 숫자와 물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그렸다는 것. 천전리 바위그림 중앙부에 새겨진 여러 겹 동심원은 그 옆에 그려진 ‘특별한 인물’이 주석하는 선사시대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의 언양지역에 해당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백무산 시인은 천전리 각석에 “지도 이상의 무엇이 있다.”며 “대지의 형상을 통해 어떤 초월적인 메시지를 얻으려는 시도처럼 보이면서도 구체성을 잃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편집자 주>






05백무산시인

<천전리 각석 중앙부 바위면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백무산 시인 ⓒ이동고 기자>



선 문자 단계 선사시대 기호라면
중간단계 그림문자 반드시 있어야




이종호 기자(이하 ‘이’)=고고학은 매우 전문가 영역이 아닌가? 전문가들은 비전문가의 주장을 인정하려고 할까?
백무산 시인(이하 ‘백’)=모든 문제가 다 그렇지만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인간문제에 있어서는 사실 모든 인간이 다 특별한 전문가다. 특히 인간의 경험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일 때는 비전문가가 더 옳을 때도 있다. 암각화 문제에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오히려 지나치게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가까운 것도 잘 모르면서 먼 곳을 이해하려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한 말인데, “우리는 주변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채 수수께끼와 불가해성의 바다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인류의 어떤 공통성도 한 개인에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학계에 보고된 지 오래됐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각석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보나?
백=지금까지 암각화에 대한 해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 목적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적 표기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해야 설득력이 있는 것인데, 어느 것도 그럴 듯한 해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선 문자단계의 선사시대 기호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사실적 기호와 비교해서 인식능력이 발달된 추상화 단계의 문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자의 역사에서 어느 민족이든 언어 기호의 전 단계는 그림문자가 일반적이다. 그런 다음에 그림과 기호가 혼합되는 과정을 거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천전리 각석으로 발전돼 온 것이라면 그 중간단계에 그림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역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천전리 각석을 문자라고 본다면 선행하는 그림을 관용화하여 단순화한 것인데, 이 단계면 본격적인 기호로 발전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양식의 체계와 배열의 규칙성도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은 전혀 그렇지가 않으면서 여기 저기 필요에 따라 그려지지도 않았다. 계획과 배치가 엄격하면서 규칙성이 아니라 변형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패턴 인식해야 바위지도 이해 가능
산을 사각형, 마름모꼴, 원으로 표현
지도 경계는 물 흐르는 골짜기나 강




이=이 그림을 어떻게 지도라고 판단하였는지?
백=처음에는 나도 고고학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관심 있게 본 것은 문양들이 지형의 배치와 닮았다는 점과 신화학을 읽으면서 그들의 사고체계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들의 인식수준이 현대인들과 다를 바 없거나 더 통합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그 동안 몇 번 지도와 대조해 보았지만 내 상상력도 몇 킬로미터 범위를 넘지 못해서 주변 지형에서 닮은꼴을 발견할 수 없었다. 상상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지도라고 판단한 후에도 지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는지?
백=어느 순간에 지도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았고, 그보다 많은 시간을 지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았다. 먼저 가설을 세우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나가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에 필요한 정보만 선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도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내 지식으로는 다 짚어 볼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부정성의 요인들을 판단해 보았다.



이=현대적인 지도와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지도라고 설명한 후에도 일반인들이 금방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지도의 특징을 설명해 달라.
백=우리가 국가의 지도라고 하면 국경과 해안선을 경계로 삼아서 형태를 판단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인식이 먼저 머리에 관념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도에는 해안선이 전혀 없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생각해보면, 해안선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일제시대 울산의 항공사진만 봐도 해안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남해와 서해는 두 말할 것도 없다. 해수면이 오락가락하고 펄과 모래밭은 언제나 변할 수 있었다. 지도는 변하지 않는 것을 그려야 하므로 산과 강을 위주로 그렸다.



이=강도 형태가 일정하지는 않다.
백=강도 사실 인간이 농경시대에 인위적으로 형태를 바꾼 것이다. 농경지로 만들기 위해 둑을 쌓았고, 치수를 하기 이전에는 강 주변 일대는 습지 혹은 늪지대였을 것이다. 암반 지역과 협곡이 아닌 곳은 과거와 많이 다를 것이다. 지도에 나타난 이상한 표기를 따라가 보면 습지를 표현한 곳이 많은 것 같다.



이=그래도 그림 형태가 자연지형이라는 판단이 서지 않는 부분이 많다.
백=이 지도에도 현대지도에서 ‘범례’라고 할 수 있는 패턴이 있다. 패턴을 인식해야 지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백=산을 사각형, 마름모꼴 혹은 원의 형태로 그리지만 각자 다른 특징을 표현한다. 산봉우리가 하나일 때와 여러 개일 때 그리고 물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그린다. 산의 높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높은 산이라고 해서 반드시 크게 그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고도는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산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으면 크게 그리고 산이 높아도 경사가 심해 영역이 좁으면 작게 그린다. 구릉지대도 높은 산과 다름없이 의미 있게 표현한다. 그 경계는 고도의 차이가 아니라 항상 물이 흐르는 골짜기나 강이다.




해안에서 30킬로미터 폭으로
동,남,서해안 파노라마처럼 그려




이=어디서 어디까지 그렸다고 할 수 있나?
백=대체로 해안에서 30킬로미터 폭으로 동해, 남해, 서해안을 그렸다고 판단한다.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남해안 전부와 서해안 태안반도 부근까지를 중요 지점은 거의 짚어 볼 수 있다. 거제도 역시도 뚜렷하다. 대부분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림은 그 이상 더 길게 이어진다. 각석 주위에 흩어져 있는 다른 문양을 해석하면 그 범위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한반도 전체라고 할 수 있나?
백=해안에서 대략 30킬로미터 이상의 내륙은 그리지 않았다. 미완성인지 필요성이 없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북방 민족이 해안을 따라 이동해온 경로와 그에 따라 습득된 지식일 수도 있다.



이=동,남,서해안을 직선으로 그린이유는?
백=바위면 형태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파노라마 사진은 360도 풍경을 하나의 평면에 담고 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파노라마 지도를 그린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방위개념이 없어서인가?
백=그건 아닐 것이다. 방위개념이 없었다면 지도 제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이탈리아 발카모니카에 바위지도가 있다. 그곳에는 집과 농경지와 도로가 그려져 있어 천전리 각석과는 많이 달라 지도적 요소가 빈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백=이 지도는 대동여지도와 크기가 비슷하다. 대동여지도도 7미터가 넘는다. 그곳에 무슨 집과 농경지를 그릴 수가 있나? 그 당대 사람들이 동네지도를 그렸다면 쉽게 이해가 가는데, 한반도 지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하니 질려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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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울산 지형도와 천전리 각석 중앙 부분을 90도로 세운 그림 비교. 백무산 시인에 따르면 동심원이 겹으로 새겨진 곳이 언양지역이고, 그 옆으로 연화산, 국수봉, 옥녀봉이 표시돼 있다. 45도 방향으로 그려진 사선이 태화강이고 그 끝에 돋질산이 있다. 오른쪽 아래부터 염포산, 무룡산, 동대산, 조항산이 차례로 그려져 있고, 태화강 왼쪽 중앙에 문수산, 영취산, 남산이, 그 아래 외항강이 표현돼 있다.>






대동여지도보다 정확하고 구체적
지리정보 이상의 ‘무엇’이 있다




이=이동수단도 도로도 없던 시대에 활동 범위가 그렇게 넓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백=그때는 국가 체제도 형성되기 전인데, 무슨 목적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대인들을 미개인이고 지능이 덜 발달된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종교적 열정에 빠지고 우주의 신비에 경탄하듯이 그들 역시 자신들의 먼 조상들의 위대한 삶을 기리고 자연 순환의 법칙을 이해하고 초월적 인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신화나 유적에서 읽을 수 있다.



이=선사인들은 물질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던 것은 유적이 말해주고 있다.
백=그 역시 현대인들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선사인들을 이제 겨우 동물적 단계를 벗어나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정도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관심 말고 무엇이 있었겠느냐고 단정한다. 그래서 그 당시의 염원과 활동은 모두 풍요와 다산이라고 결정해버린다. 이것은 현대인의 경제적 논리를 투사한 것이다.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어떤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상적인 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선사인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읽을 수 있나?
백=레비 스트로스나 조지프 캠벨 같은 신화학자들의 연구에서 고대인의 사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들 마음 안에 그들이 있다. 우리는 첨단 기술을 문명의 정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의 심연과 원형적 삶을 잃어버렸다. 첨단기술의 감각적 조작기술로 인간 심연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문명의 첨단은 인간의 심연과는 역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이것이 지도라면 이것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도 있나? 아니면 단순한 지리 정보일 뿐인가?
백=아니다. 지리를 이해하는 것은 곧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지도를 그리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 작업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라. 불과 150년 전에 그린 것인데, 그 동안의 모든 지리 지식을 집대성한 것이 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그 지도가 매우 부정확하다. 울산 지도는 각석 지도가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정확하고 구체적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형상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다. 특정 지역을 묶어서 하나의 독립되고 완성된 형상을 빚어내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리를 통해서 어떤 상징적 형상을 창조해내려는 시도까지 엿보인다. 지도는 형태를 나열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목적이 지리 정보뿐이라면 이렇게 신중하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 단순하게 그리지 않았다. 지리 정보 위주의 대동여지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도 이상의 무엇이 있다. 대지의 형상을 통해 어떤 초월적인 메시지를 얻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구체성을 잃지 않는다. 그들의 구체과학을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번 그리고 만 것이 아니라 거듭 어떤 염원을 담으려는 행위가 부가된 듯이 수많은 손길이 그림에 깊이를 만들어온 듯하다.



이=각석에 표현된 상징기호 하나하나를 태양신이나 샘, 우주뱀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백=자연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그 후대의 일이지만, 우리 민족 전통신앙에 태양이나 뱀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태양이 아니라 하늘 혹은 하늘을 인격화한 상제를 신앙하고, 용을 상스럽게 여기긴 해도 유일신을 상징하는 태양이 독립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뱀은 부정의 동물이라 회피해 왔다. 사막이나 평원 지역의 민족과는 달리 숲과 산악 지형을 근거로 살아가는 민족의 정신세계에는 범신론적이고 지모신 신앙이 더 지배적이다. 그 점에서도 지도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민족 신앙을 설명하면서 서구의 정신을 그대로 가져오면 곤란하다.




천전리 각석, 추상적 언어기호 아니라면
반구대암각화보다 제작 연대 앞설 수도




이=해석이 달라지면 제작 연대 추정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백=당연하다. 추상적 언어기호가 아니라면 반구대암각화보다 후대의 것이라고 할 근거가 없다. 보다 선대의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청동기 시대라고 표현했지만, 상상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 전문가들이 밝혀야 할 문제다.



이=지도는 중심부를 표현하게 되어 있다. 안내지도에 ‘현위치’같은 표시 말이다.
백=언양이 중심부다. 바위의 가운데 면에 새겨진 여러 겹 동심원은 언양지역으로 추정된다. 그 옆에 그려진 ‘특별한 인물’이 ‘주석’하는 곳일 것이다. 언양 가운데서도 좀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으나 내 짐작일 뿐이다. 과장되게 말하면 언양은 선사시대의 수도(?)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체제도 형성되기 전인데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의 우리의 판단이 많이 빗나간 것도 인정해야 한다. 고대 유물들이 대거 출토된 지역 역시 지도 표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어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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