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보는 세상] 신과 함께
[작가가 보는 세상] 신과 함께
  • 조숙 시인
  • 승인 2018.03.0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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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난 <신과 함께>는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일상에서 함께 했던 한국 신들의 이야기. 삶과 죽음에 관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 존재했던 신들.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젊은 사람이 성주상을 차리거나 용왕신을 거론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사라진 한국 신들에 대한 아쉬움은 인도여행에서 처음 느꼈다. 인도 갠지스 강은 시바신의 몸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파괴와 창조의 시바신이 죽음과 삶을 관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갠지스강가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과 환자가 많았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이상하고 낯선 강.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한 갠지스의 밤과 아침, 꽃을 뿌리고 종을 울리고 향을 피우며 지내던 제사의식.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소, 하늘을 나는 새,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의식, 사람들을 만나서 일어나는 싸움에도 신은 함께 했다. 인도 여행 내내 보았던 유적지의 장식과 그림은 모두 신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현실과 신들의 세계에 경계가 없는 삶을 보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었던 한국 신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떠올랐다.


할머니 집 선반 위에 있던 작은 항아리, 부엌에 있던 조왕신, 화장실을 지키는 측신,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거의 잊어버린 아주아주 오래 전의 신들. 이런 신들에 대한 새마을운동식 사고방식은 ‘미신 타파’였다. 아침에 새마을 운동가를 들으며 마을길을 쓸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시대에 학교교육을 받은 나는 우리 신들을 미신이라고 여기며 천시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신들을 보면서 교육받지 못한 비과학적 사고방식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문지방을 밟고서면 신들이 싫어하신다는 말을 들으면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와 주변에 쌓인 돌,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면 빨리 사라져야 할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의 태도를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인도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며 부러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 머릿속의 세상은 신들이 이야기를 걸어오고, 신들의 색을 보여주고, 사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꽤 멋진 세상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일상적으로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온 저승사자와 49제, 신의 심판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거짓말을 하면 혀가 만발이나 빠진다는 이야기, 음식물을 버리면 굶주림의 벌을 받는다는 말, 살인을 하면 받게 되는 가혹한 화탕지옥. 삼신 할매의 점지로 아이를 잉태하고, 어린아이는 삼신 할매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난다는 이야기.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사람이 행해야 할 일상에서의 윤리를 중층적인 상상으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 본 멕시코 만화 영화 <코코>는 죽음에 대한 멕시코 문화를 소재로 하였다. 집안에 있는 제단에는 조상의 사진이 있는데 죽은 자의 날이면 사진속의 조상들을 꽃으로 불러내어 함께 축제를 한다. 사진을 놓아두지 않고 가족이 기억하지 않으면 사후 세계에 사는 영혼은 사라져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현재의 삶이 사후의 영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할 수 있는 문화이다. 


영화 <신과 함께>는 권선징악에 대한 메시지가 강했다. 합리성과 과학적 태도에 밀려 척박해진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러나 죽는 순간 영혼이 그냥 사라져버리고 끝난다는 생각을 벗어나, 죽음의 순간 당황한 영혼을 처사가 데리고 간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죽음의 주변을 둘러보며 저승사자를 상상하고, 그 영혼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다음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면, 넘어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또한 삶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잊어버린 신들을 다시 상상할 때이다. 생각만으로 신들은 다시 살아난다. 우리의 신들이 함께 한다면, 아마도 눈을 뜨고 구름 위를 올라가거나 청명한 하늘에서 울리는 신들의 나팔소리 정도는 듣게 되지 않을까.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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