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낙하산' 인사에 성실한 공무원, 남구 주민이 통곡”
“대놓고 '낙하산' 인사에 성실한 공무원, 남구 주민이 통곡”
  • 울산저널
  • 승인 2018.03.07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영(2)

남구의회 이미영 의원의 의정활동 모습. ⓒ이미영 의원 제공


“무소불위로 가장 편하게 일한 서동욱 남구청장”

'기초의회 잔혹사' 마지막 순서다. 태양광 발전 입찰 비리로 불거진,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을 둘러싼 의혹과 파문이 가라앉고 있지 않다. 서동욱 청장 체제의 독주에 대한 우려는 남구 안팎에서 오래 전부터 불거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지난호에 이어)

-서동욱 청장 얘기로 운을 떼볼까 합니다.
=다시 나온다고 하네요. 어딘지는 모르나 (사조직이) 이미 가동됐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팬 관리를 워낙 잘해요. 팬클럽 이름이 ‘콩깍지’랍니다. (서사모 외 몇몇 선거 준비 사무실이 구청 근처라는 풍문이 있는데 사실 2년 전부터 들려오던 오랜 얘기죠. 기본적 조직 관리라고는 하지만) 또 구청장하고 몇몇 의원이 뭐 ‘리틀 서’라 할 정도로 친분 있는 걸 보면 솔직히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구 주민께 말씀 드리고픈 얘기는 없는가요.
=이건 조금 다른 문제인데, 보육 쪽에 계시는 분들이 너무너무 착하세요. 아이들과 같이 일 하니 철두철미합니다. 또 여리고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의원들 앞에서 그럽니다. 특히 구청장 앞에서는 거의 막 뭐라고 해야 되지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완전히...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어떤 분이 연합회 임원이 됐는데 처음 접한 광경이 선생님들 임원들 연합회 교육 때 구청장 의장 가면을 쓰고 서동욱, 서동욱 연호하고, 안00, 안00 연호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했대요. 모 원장님은, 이 의원님 머리 스타일 넥타이가 잘 어울립니다, 라고 말하라 연습하래서 이런 훈련들을 임원 되고 다 없앴대요.

알고 보니 그걸 20년 동안 했다네요. 서로 순번 정해 완전 극 칭찬하고, 조리사비 예산을 그렇게 받고, 보육용품 예산을 그렇게 받았답니다. 연합회가 왜 있나요. 왜 회장을 뽑고 임원을 뽑습니까? 기초단체장이고 임원입니다. 여러분 세금으로 나오는 예산입니다.

명분 있는 사업계획서 갖고 정정당당하게 구예산 받아서 하면 주민에게 돌아가고 가정에 돌아가고, 구청장이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주민 위해 일하고 정당하게 얻어내야지 왜 구청장 의장 기분 맞춰서 얻어냅니까? 아부 집단도 아니고... 그런데 다른 비슷한 단체들도 이렇게 남구 행사에 동원이 됐던 거죠. 갑자기 뒷골이 땡기네요.

동원도 동원이지만! 이번 행감에서 무엇이 화두였냐, 동원이 화두였습니다. 2017년 행감에서 모든 협의체나 단체가 그런 성향을 띠면 일단 공문에, 각 동사무소에 과 대부분에 준공식이나 이런 걸(행사) 하면 단체별 다섯 명, 혹은 몇 명, 총 몇 명 동원 공문을 보낸 겁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제보가 있었어요.

그 뒤로 저희가 계속 3차 추경, 2차 추경에서도 그런 얘길 했으니... 그랬더니 구청장이, “여기 여러분 동원된 사람 없지요?”라고 물어보고 인사를 시작해요. 구청장이 알면서도 그러는 거면 사람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하겠습니까. (구청장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야당 빼고는 전부 다 그렇게 침묵하니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청장 중에서도 ‘무소불위’로 가장 편하게 일한 사람이 서동욱 청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원된 사람 없죠?”가 한동안 유행어처럼 돌아다녔어요. 제보 받고 자료 공문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실이었죠. 각 과에도 각 주민자치센터에도 공문을 보내 동원한 거죠. 동장은 정말 그런 분위기 맞춰서 하고, 찝찝한 사람도 분위기에 묻어가고, 사실 무거동에선 동원돼 가면 “이게 뭔데?” 하면서 주민들이 가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실제로요. 이젠 좀 공무원들이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삼호동 도시재생학교 첫날 서동욱 구청장 강연(!) 끝나고 몇몇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뭘 이런 데를 데려왔냐?’고 언짢아하면서 돌아가던 일이 떠올랐다. -기자 주)

‘낙하산’ 대놓고 고백...공채들 ‘멘붕’

-또 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나름 꼼꼼해서 신경 써서 한다고 해도 측근들로 너무 많이 인사를 채워넣고 기획실에도 누가 선거 때 도와줘 들어왔고 그런 거 다 압니다. 아는데, 소리 없는 메아리고, 심지어 이런 인사 같은 경우 시에서 외부에서 기간제로 오신 분들이 많은데 남구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일자리 특혜라던가 이런 게 제일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의원들은 찾아봐야 이런 게 보이지만 일하시는 분들조차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정말 심각하죠. 공고를 띄우든 안 띄웠든 간에 많은 분들에게 공유되는 일자리는 아닌 듯합니다.

-어떤 일자리였는데요?
=심지어 남구ㅇㅇ센터에서도 가령 연세되시는 분들 일자리, 노인일자리는 3개월씩 반기로 나누고 기간제 경우에는 11개월씩 했는데 지금까지는 계약직이나 이런 분들이 아예 대놓고 그렇게(낙하산) 들어와서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모르겠는데, “난 서동욱 구청장 홍보해주러 들어왔잖아.”라고 대놓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공채로 직장에 온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득문득 그렇게 이야기하는 낙하산들을 보면 “난 뭐지,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뭐지?”하고 자괴감이 들더래요.

어느 순간 직원들도 거기에 물들어 ㅇㅇ센터 같으면 관련 사업 위탁이나 지원할 때도 위로 기안을 예산 1,2억씩 올리면서 원래부터 해당 분야에 경험을 쌓은 곳이 아닌 난데없이 처음 보는 데가 와도, 이 사업 한다던데, 그랬다던데(얘기됐다던데), (그런 말) 들었는데 하면 인맥이겠거니 하고 하려는 거예요.

원래 이러면 안 되니 차단하고 하면 어느 정도 정상적인 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아예 시에다가 비슷하게 예산을 내 사업을 타간 경우를 봤다는 거죠. 정정당당하게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너무 기가 차대요. 1,2년은 참겠는데 3년차부터는 쏟아내는 이야기가 감당이 안 되는 거죠. (낙하산으로 들어온 직원이든 낙하산으로 들여보낸) 의원이 든 본분을 다하면 ‘안하무인’일 수 없겠죠. 그렇지 않더라도 구청장이 인기몰이로 하지 않고 자기 사람 챙기지 않고 당당하고 공정해야 제대로 인정받고 치적이나 공로가 쌓일 텐데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현재 점수를 까먹는 거 같습니다.

중소기업 물류창업센터 졸속 논란

-물류센터 이야기는 뭡니까?
=최근에 중소기업 물류창업센터가 거의 다 지어져서 봤는데, 일단 공공기관에서 사익침해하면 안 되죠. 중소 및 물류지원센터는 택배에 영향을 줍니다. 안 그래도 택배업계 너무 힘들잖아요. 구정질문이나 5분 발언에 하려고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갔어요. 사실에 근거해야 되잖아요. 범죄사실이 될 수 있는 걸 짚거나 정확하게 지적하려면 많은 자료가 필요하고 대안 제시도 해야 하고요... 근데 자료를 보는데 ‘헐’, 행자위 안은 면적 150평이었는데 최종 전(지금)에 130평으로 줄었어요. 근데 시에 올려서 딴 사업계획이거든요.

남구 행복기획단 업무보고로는 부지매입비 10억 원이고 나머지는 공사비인데, 그럼 두 번째 변한 것이 있다 싶어 보니 현 부지가 원래 짓기로 한 곳도, 시유지도 아니었고, 시유지는 공고 근처였는데 부지가 세 번이나 변한 겁니다. 첫 기안은 원래 시립도서관 옆이었는데 중소 및 물류지원센터 부지는 450평으로 30억원 예산이었거든요. 그것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아닌 조립식 구조였고요. 그걸 받은 건데 이게 다시 공고 쪽으로 갔다 최종적으로는 토지매입비도 얼마 안 드는 구유지로 가고 대신 부지는 130평으로 줄어드는데도 그대로 예산은 똑같은 돈을 써요.

이야길 취합해보니 설계사 왈 이건 설계도도 안 나온다, 근데 돈을 받으니 지금 짓고 있는 상태인데 대체 시에서는 뭐하는지, 처음 계획대로 안 하고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보고는 됐는지, 보고에 대한 제재는 없는지 현재 다시 시로 가신 부구청장 때 일이라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그분 일이라 문제를 걸 수가 없어요. 사실 1년도 안됐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안 그래도 관련 의정질문하고 하면 “물류지원센터 잘 봐주이소. 저 그거 사업비 딴다고 시에서 왔다 시로 갔는데 정말 엄청 노력했습니다.” 이래요. A 아무개 씨 그분 얼굴은 기억나는데 물론 수고하신 건 맞죠. 시 예산 남구에 많이 들어오면 좋죠. 그렇지만 공공기관과 물류업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니 공과 사를 따지고 문제제기한 겁니다.

청년 아이디어 뺏고 제대로 소화 못해

실은 사업계획 당시부터 이 센터가 공무원들이 심사숙고하고 낸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어디 벤치마킹한 것도 아니라 외부에서 사업계획을 낸 젊은 청년사업가들 것을 그대로 받아서 올린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특별한 보상을 주지도 않았어요. 더군다나 완전히 본인들 것으로 소화도 못하니 장소가 몇 번이나 바뀌고 취지도 바뀌고 사업 자체가 엉성한 걸로 된 거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른 아이디어를 따올 순 있죠. 그럼 안정감 있고 취지에 맞게 운영을 해야 하는데 주먹구구로 그때그때 맞추니 1년 동안 제대로 된 사업이 나올 수가 없죠. 그동안 대체 울산시는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도서관 옆 부지는 왜 안 된 거죠?
=월 임대료 협상이 잘 안 됐나 봅니다. 계획을 내도 그런 걸 미리 협의를 다 하고 계획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한 거죠. 시유지에서는 또 다른 걸 한다고 하고 하니 안 되고 구유지는 130평 규모인데 그 면적으로는 물류센터가 가능하지 않죠. 이제는 1인기업 인큐베이팅까지 하겠다는데 5평짜리 방을 만들고 상상만 하는 거죠. 실제 어떻게 해야 되고 이것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방수도 줄고 평수는 좀 늘고, 주어진 공간에서 맞춰가는 거죠. 앞으로 1인 기업들이 뭘 만들면 택배를 보내는 상황도 있고 물류보관소도 있어야 하는데 협소한 여기서 다 모아 택배로 갈 건가요? 어떡할 건지요? 그때 가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그제야 움직일 건가요...

"예측불능...투명한 인사가 아니었다"

-요즘 남구 공무원 사회가 시끌하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심각한 제보여서요. 공무원 인사 문제입니다. 참다 참다 못 참고 이번 인사발령보고 이런 문제가 터져 나왔어요. 구청장이 공무원 인사를 하죠. 매번 일어난 인사인데 특히 이번에 문제된 게 뭐냐면, 지금까지 민선 5기를 되돌아봐도 이처럼 상식이 안 맞는 인사가 없었다는 거죠. 구청장 마지막 인사라 자기 사람 챙기기가 극에 달했다는 얘긴데 지방선거를 의식한 인사라는 거죠. 임금 부분을 봐도 경력과 실력을 안배한 인사여야 직원들 동요가 없는데 이번 남구 인사는 왜 말들이 많으냐.

첫째, 예측 가능한 투명한 인사가 아니었단 거죠. 예고랑 달리 예측이 빗나간 인사여서 직원들이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후 관련 5분 자유발언에 대해 담당자의 설명이 있었지만) 당장 직원들이 동요했던 부분은 주민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죠. 편파적 인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상처 받는 직원들도 생깁니다. 편파적 인사는 즉각 멈추고, 혈연 학연 지연 말고 상식적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인사를 바라요.

-더 큰 일은 무엇이었나요?
=행정안전부 청백리상을 받은 사람이 승진에 누락된 겁니다. 그는 구정베스트부터 문수양궁장 유공, 고래축제 교통 분야 등등 여러 성과를 냈는데 승진이 안 된 거죠. 특히 청백리상 받은 사람이 승진대상자가 되면 중앙정부에서 우선승진 권유가 오거든요. 그런데 청백리로 귀감을 주어 상금까지 받은 분이 승진을 못했다? 동료 중에 2년, 5년 전에 승진한 이도 있는데 왜 그만 그렇게 됐을까요? 항간에 먼저 승진한 케이스는 구청장에게 매일 동향보고 하고, 자료 채집해서 바로 고하고. 과잉 충성했단 얘기도 있어요.

-화제를 바꿔서요. 이미영 의원에게 유월 항쟁의 의미는 남다르다면서요.
=고등학교 때였는데요.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에서부터 광주의 이야기와 민주화운동의 사진들, 이런 게 충격이었고, 그때 주부 학생 할 거 없이 유인물에서 처음 보게 된 진실이었죠. 고교 문학동아리 일원으로 주리원백화점 앞을 지날 때 항쟁의 엄청난 인파들이 쏟아지던 그 순간, 그 날의 사진들... 충격이었고 저는 열일곱 고등학생이었는데 광주는 폭동, 간첩사건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진실은 민주화운동이었고 많은 시민들이 총칼 앞에 피 흘리며 군인에게 끌려가고... 교과서랑 다른 세상에 한 달 동안을 적잖이 앓았습니다.

저는 기장에서 중앙여고로 유학해 하숙했습니다. 항쟁 당시에 그분들은 왜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교과서와 다른 얘기가 쏟아지고 어떤 게 진실일까 고민하고, 또 국민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올바른 변화, 억울하고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지 않게 국가가 해줘야 된다고 처음 생각하고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유월 항쟁 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를 해야겠다. 그때부터 정치가 저의 꿈이 됐습니다.

1989년 고3이었는데 5공 청문회 때 국회의원 노무현의 활약상을 보면서 고3이었는데도 정치사회에 관심을 뒀죠. 문학 동아리다보니 87,88,89년에 울산대 민중가요동아리 행사라든가 민중가요제나 문학동아리 선배들과 연결돼 같이 가서 보고 들은 게 많죠. <광야에서>라든가 민중가요를 듣고 따라 불렀죠. 고등학생 때 정치사회 중에서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청문회를 보면서 노무현 국회의원에게 같이 응원하고 그랬죠.

학보사에서 펜으로 투쟁하다

대학에서 역사와 심리를 전공하게 됩니다. 원래 심리학하고 싶었는데 동아리 때문에 국문학을 할 줄 알았죠. 당시만 해도 대학교에 심리학과가 몇 없어서 근처에 대구대 밖에 없고, 대구대는 잘 모르니 울산대로 가라고 해서... 대구 갈 거면 좋겠지만 안 갈 거면 비슷한 과를 찾자고 해서 울대 철학과를 택했죠. 90학번인데 철학 역사 인문학 선배들이 데모를 많이 하죠. 1학년 때 데모 많이 하고, 돌 날라주고, 문선대하고 민중가요 동아리도 바로 가입하고, 고등학교 때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민주주의 민중을 많이 공부하고 그러다 신문사를 들어갑니다.

여름방학 때부터 3년 넘게 4학년 때까지 했고 당연히 정치사회를 할 수밖에 없죠. 그 당시에는 정치 분야를 특히 많이 다뤘어요. 전대기련, 영대기련 등에서 서로 교류하고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펜으로 투쟁했죠. 3학년 때부터 편집국장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신문사 기자 시험도 치고 그랬는데 2,3차에서 떨어지고 다시 준비하겠다고 하면서 들어간 곳이 교육 분야였습니다.

교사의 꿈도 있었어요. 어머님 아이들이 좋아했고 그때는 소위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사원은 국장부터 전환하는 건데 너무 좋아해주셔서 1년6개월 만에 그렇게 됐죠. 20여년을 학습지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8년6개월 동안을 지역국장으로 일하며 채용, 교육, 조직관리, 학부모관리 등을 했고 스피치 교육도 시키고 하면서 같이 발표하고 하던 게 도움이 됐죠.

그때도 지금도 정치인이 꿈이었기에 오십이 지나면 포용의 정치를 하리라 결심했죠. 김대중 대통령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누군가 DJ께 여쭤보기를 ‘정치는 손수건’이라 답하셨대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럼 오십부터 정치를 하겠다. 화합하고 포용이 돼야 하는데 오십부터는 그 마음의 크기가 엄청날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 나이 때부터 정치를 해 한국의 올바른 변화에 이바지하자, 사내 교육이나 간담회 때도 늘 얘기했었죠. 그랬더니 마흔부터는 안팎에서 벌써 마흔인데 언제 정치할 거냐고 물어보고 그래요. 그럼 저는 “아닙니다. 저는 오십부터 할 겁니다.” 그랬었는데... 앞서 말씀드린 친한 언니의 눈물 영향이 컸어요.

-긴 대담이었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3년 반을 피눈물 흘리며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진짜 운 건 처음 발언할 때가 마지막이지만 당당한 야당, 민주당, 그리고 여성의 모습을 갖추려 열 명에 맞선 한 명으로 가랑이 찢어지도록 노력했는데.... 5개 구군 중에는 서동욱 청장 시절 남구가 제일 심했다고 봐요.(끝)

<특별취재팀>
기획.대담=이종호 국장
정리=이채훈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