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아저씨] 꽃지짐
[밥 짓는 아저씨] 꽃지짐
  • 성경식 셰프
  • 승인 2018.04.11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일요일 삼남면 작괘천 들머리의 벚꽃 길에 잠시 다녀왔다. 꽃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아 꽃 내음을 맡기 전에 기름내 진동하는 음식 냄새에 먼저 숨이 막혀버린, 꽃이 볼모가 되어버린 길을 숨을 고르며 걸었다.


지금이야 봄을 여는 꽃으로 길가에 피는 벚꽃으로 꼽으며 동네방네 꽃 축제로 야단법석이지만, 우리민족에게 더 익숙한 봄꽃은 진달래다. 36년 식민의 역사로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 짓밟히고, 생산중심의 빠른 속도를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때맞추어 누리고 즐기던 여유롭던 풍속은 인스턴트에게 자리를 뺏겨버렸다.


오래전 고구려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삼월 삼짓날이 되면 나랏님과 백성들까지 진달래 꽃그늘에 둘러 앉아 꽃지짐을 부치며 놀았던 화전놀이, 오늘 꽃길을 걸으며 봄날 꽃지짐을 했던 진달래를 그려본다. 바람에 퍼지는 치맛자락 같은 붉은 꽃을 먼저 피우는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부른다. 옛날 중국 촉나라의 전쟁에서 패하고 죽은 망제 두우가 두견새가 되어 나라 잃은 것이 슬프고 원통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온 산을 날아 다녔는데 이때 흘린 눈물로 온 산에 붉은 꽃이 피었다 하여 그 붉은 꽃을 ‘두견화’라 부른다는 전설. 그래서 일본제국의 왜놈들은 우리 땅에 저들의 벚나무를 사방에 마구 심었을까? 나라 잃은 백성들의 한이 서린 붉은 진달래를 가리려고... 딱히 중국의 전설 탓이 아니라도 봄날 지천에 피어나는 진달래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로 만들거나 시로 만들어 한 많은 우리네 마음을 달래었고, 꽃지짐이나 음료를 만들어 주린 배를 채우곤 하였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둥글게 빚어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지진 다음 진달래 꽃잎을 얹어 한번 더 슬쩍 지져 꿀을 둘러 먹던 음식이 진달래화전이다. 그리고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장미.맨드라미,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대추를 이용한 화전을 만들어 철따라 피는 꽃과 열매를 곁들여 계절을 즐겼던 음식이다.  


음료로는 진달래 꽃잎을 따서 녹두녹말가루를 입힌 뒤 살짝 데쳐서 우린 오미자 국물에 잣과 함께 띄운 두견화채라 부르는 진달래화채도 있다. 진달래꽃은 맛은 시큼하고 달며 꽃엔 독이 없지만 꽃술엔 독이 있어 조리 전에 꼭 꽃술은 제거해야한다. 진달래꽃이 가진 효능에는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혀주는 효능을 갖고 있다하니,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몰려오는 봄에 딱 맞춰 찾아낸 약선요리라는 생각에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고맙다.


요즘의 꽃놀이는 봄이 꽃보따리의 끈을 풀기 전에 그 꽃길에 사람들이 넘쳐나 북새통을 이룬다. 이 동네 꽃축제나 저 동네 꽃잔치가 흥청망청에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아 굳이 이런 요란스런 행사들을 꼭 해야하나 싶다. 놀이에 먹을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먹고 혹은 먹다 버린 것들이 무더기 무더기 쌓여있는 풍경은 꽃놀이답지 않다. 좀 요란스럽지 않은 꽃내음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축제 없는 꽃놀이가 그립다.


꽃길을 거닐다 꽃지짐 생각이 나지만... 이제 들어가 화전을 부칠 만한 꽃그늘도 없고 그닥 어렵지 않은 꽃지짐을 굽는 일도 이젠 성가시다고 여길 만큼 우린 너무 쉽고 간단한 먹거리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 꽃지짐은 ‘그 땐 그랬지!’로 아련히 기억에서만 꽃피고 있다.  


성경식 셰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