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병영성안(3) 병영청년회, 최현배
[역사기행] 병영성안(3) 병영청년회, 최현배
  •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 승인 2018.04.17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07역사1

<1920년대 병영청년회관이 있던 중구 남외동 549-1번지 일대.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일제강점기 병영에는 지역 계몽과 문화 활동에 힘썼던 병영청년회가 있었다. 병영청년회가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3.1운동 이전부터 활동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병영청년회가 병영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겠다. 울산지역 대부분의 청년회가 1920년대에 조직된 것과 비교하면 병영청년회는 선구적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3.1운동의 영향으로 1920년대가 되면 전국적으로 청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청년운동은 교육계몽 및 항일독립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 시기 울산지역에서는 울산읍내의 울산청년회, 남목의 갑자구락부, 일산의 동면구락부, 방어진의 방어진청년회 등 각 지역마다 청년회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들 청년회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근대 교육과 민족의식 앙양을 위해 힘썼다. 1920년대 초반 정식 교육기관이 아닌 사립학교, 강습소, 그리고 의숙 등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에 앞장섰다. 울산읍내의 해영학원(海英學院), 상남면 거리(巨里)의 양정의숙(養正義塾), 동면 일산리의 보성학교(普成學校) 등 각 지역마다 설립된 사립학교들은 그 지역 청년회가 주관하여 운영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병영청년회도 회관 건립비, 운영비 등을 회원들의 회비나 지역 유지들의 찬조로 꾸려나갔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청년회원으로는 양석룡, 이문조, 이종욱 등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이문조와 양석룡은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에도 청년회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병영청년회는 노동야학과 여성부를 두어 문맹 퇴치 등의 문화활동을 하였다. 야학은 병영청년회관 건물을 이용했는데, 백 명 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신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이때 병영청년회를 주도한 인물은 언양 출신의 강철(강대곤)이었다. 1927년에는 병영청년회 교양부 사업으로 학술강습회를 개최했는데, 독립투사 이관술과 의사 안효식이 강사로 초빙되었다.


병영청년회에서는 교육과 계몽활동 외에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동천 백사장에서 씨름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당시 씨름대회는 각희대회라 했는데, 병영 각희대회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1,2등 입상자에게는 소가 상품으로 수여되었다.


병영청년회는 1929년 울산청년동맹 병영지부로 바뀌었다가 1931년에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병영주재소 청년회관 건물은 처음에는 병영초등학교 하마비 근처에 있다가 1926년 남외동 549-1번지로 이전하였다. 이전했던 회관 건물 자리도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07역사2

< 병영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동상.>


한편 병영로 동쪽 동동에는 외솔 최현배 생가 및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1894~1970)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다. 선생은 집 근처에 있는 일신학교를 졸업한 다음 17세 때 상경하여 한성고등학교(뒤의 경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였다. 재학 중에 조선어 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한글과 말본을 배웠다.


22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교육학을 전공.수료하였다. 귀국한 다음 1926년부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해방될 때까지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 연세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 재직하면서 한글전용촉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학회 활동을 통해 국어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1970년 선생이 사망한 다음 후손들과 뜻있는 사람들이 외솔회를 만들고 <나라사랑>을 펴내고 있다.


최현배의 삶은 한글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27년 한글사, 1931년 조선어학회 창립, 해방 이후 한글학회 운영으로 이어졌다.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해방 이후 국어교과서를 편찬하고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07역사3

<최현배 선생 생가>


선생이 태어난 동동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2010년에 생가를 복원하고 외솔기념관을 세웠다. 생가는 원래 초가 건물이었는데 1967년에 철거되어 집터와 축대 일부만 남아있었다. 생가는 ‘ㄷ’자 모양으로 남쪽이 트인 3동의 초가로 복원되었다. 선생의 동상은 외솔기념관 외에도 울산남부도서관과 병영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