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산행] 울산의 중심, 삶의 모든 기억이 녹아있는 남산
[행복 산행] 울산의 중심, 삶의 모든 기억이 녹아있는 남산
  •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승인 2018.04.1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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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정상인 은월봉에 위치한 남산루

<정상인 은월봉에 위치한 남산루>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자랐다. 산업도시 울산의 중심인 신정1동, 옥동이 필자의 고향이자 그리고 생의 공간이었다. 그 두 곳은 인접해있었고 공통점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항상 남산이 보였다. 옥동의 아파트단지에 살던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약수를 뜨러 간다는 핑계로 아침식사 전에 남산을 다녀왔다. 왕복 한 시간 반이 걸렸음에도 제법 꾸준히 다녔다. 신발 끈이 풀어져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날다람쥐다”하고 외치셨던 기억이 난다. 백과사전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날다람쥐를 나만 못 본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새벽의 새소리와 상쾌하고 습한 새벽 공기 냄새, 그리고 달고 맛났던 아침식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초등학생 시절의 남산의 기억은 소풍으로 남아있다. 김밥과 콜라 그리고 물총싸움, 정상의 포슬포슬한 잔디밭이 영상처럼 남아있다.


16큰 바위길과 소나무 숲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큰 바위길과 소나무 숲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중학생 시절 등하교는 가파른 법원 오르막길 대신 서강파크 앞으로 나 있는 산길을 택했다. 법원 뒤로 가는 산길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등하굣길에 코끝이 시렸고 진달래가 피어났다. 진달래를 보고 기뻐할 때쯤 목련이 피었다. 그 다음 벚꽃이 피며 바람이 보드라워지고, 떨어지는 벚꽃 잎을 손으로 잡으려고 아등바등하며 꺌꺌 웃어댔었다.


태어난 신정동으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고, 현관문에서 남산의 정상인 은월봉(119.8m)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7분, 아주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했다. 그때부터 날씨가 너무 좋거나, 덥거나 그런 날엔 어김없이 남산으로 올랐다. 푹푹 찌는 여름 날 책 한 권과 보온병에 담은 아이스커피를 에코백에 들고 천천히 오른다. 땀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도 소용없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할 때쯤 정상에 다다른다. 더운 날, 도심 속 뒷동산은 조용하다. 정자에 누워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면 낙원이 따로 없다. 집이 있는 남사면은 바람이 안 불어도 태화강을 바라보는 북사면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곳에서는 문수산, 입화산 등 도심에 접한 산들도 보이고 시야가 좋은 날은 영남알프스 일대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곳에서 보는 일몰에 한동안 빠졌던 적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었다. 하염없이 앉아 해가 넘어가는 하늘의 빛깔, 도시의 차와 건물들의 불빛이 밝아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6건설중인 오산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영남알프스

<건설중인 오산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영남알프스>



16남산 숲속도서관

<남산 숲속도서관>


근래에는 이렇게 좋은 남산을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인들이 커피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오면 어김없이 집 앞으로 불렀다. 배낭에 커피와 과자 또는 과일을 챙겨 넣고 함께 올랐다. 일몰시간에 맞춰서 오르면 같이 간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았다. 필자의 모든 삶이 남산에 녹아있었다. 놀이터이자 여름도서관, 공원이자 피트니스센터, 식수대이자 카페였다.


할머니께서 팔순을 갓 넘기셨다. 옥동에서 신정시장을 걸어 다닐 정도로 정정하셨는데, 병원에 입원을 하신 뒤로 동네 산책도 힘들어하셨다. 도심의 어르신들에겐 소일거리가 없다. 푸성귀를 키울 채마밭도 같이 놀 친구들도... 티브이를 친구 삼고, 누웠다 앉는 일을 반복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생기를 드리고 싶었고, 남산이 떠올랐다. 지난 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였다. 바람이 차가웠고 할머니는 다리에 근력도 없었다. 그때 함께한 남산은 할머니에게도 버거웠고, 필자에게도 버거웠다. 허나 그날을 계기로 할머니는 산책을 다니게 되었다.


16정상에서 바라본 태화강 정원박람회

<정상에서 바라본 태화강 정원박람회>



16남산에서 보는 일몰

<남산에서 보는 일몰>



16곱게 핀 철쭉과 함께 김춘자 여사

<곱게 핀 철쭉과 함께 김춘자 여사>


꽃피는 봄날이 왔다. 바람도 보드라웠다. 이번에 다시 할머니를 모시고 남산으로 향했다. 꽃놀이를 가자며 등산화를 챙겨 신을 것을 당부했다. 가방에는 과일과 목련꽃차를 챙겼다. 한결 할머니의 걸음이 좋아졌다는 것을 둘은 느꼈다. 오르는 길에 철쭉이 곱게 피어있었다. 연달래라고 불리는 고운 꽃이 마음까지 곱게 만드는 듯했다. 그 고운 순간을 담으려 사진도 찍었다. 남산 정상에 다다르니 강바람이 매섭다. 정상 약간 아래 벤치에 앉아 과일도 먹고, 따뜻한 차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휘익 다녀갈 코스지만 팔순이 넘은 어른께는 힘든 코스였다. 할머니께 “힘들지?”하고 물었다. “그렇지.” 대답하신다. “또 올까?”하고 물으니, “좋네.”라고 하신다. 성공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매주 이 길을 또 걷자고 약속한다. 사월초팔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길가에 알록달록한 등이 걸려있다. 내 마음도 할머니의 마음도 알록달록했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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