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철학] 도시인의 명상- 텃밭 가꾸기(밭과 흙, 심기)
[농부 철학] 도시인의 명상- 텃밭 가꾸기(밭과 흙, 심기)
  •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 승인 2018.05.0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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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은 역사적인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남, 북간에 숱한 선언이 있었으나 이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궁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자주성의 원칙을 공고히 하는 판문점선언에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의탁하는 표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한 것은 일종의 역할 분담까지도 협의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끝을 정확히 아는 새로운 시작이어서 더욱 벅차고, 앞길이 훤히 뚫린 탄탄대로를 달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농사꾼에게 5월은 나랏일에 곁눈 둘 새가 없는 계절입니다. 시쳇말로 닥치고 심어야 하는 계절입니다. 한날한시가 작물의 생육과 수확에 큰 영향을 끼치는 탓에 마음도 몸도 다급해 허방다리 짚는 일마저도 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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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비가 잦아 마늘이 잘 자랍니다>


1. 모종을 심기 전에


모종을 밭에 심은 것을 정식이라고 부릅니다. 정식은 물론 밭에서 이루어집니다. 농작물이 삶을 다하는 날까지 붙박이로 살아야 하는 곳이 밭입니다. 따라서 모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밭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토양관리에서부터 비료거름 투입(비배관리)은 물론 이랑을 알맞게 짓고, 배수가 잘 되도록 해야 합니다.


모종심기에 당면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의 수분함유입니다. 건조기가 계속 될 경우에는 피복(멀칭) 전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모종을 심을 당시 심을 자리에 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심기와 동시에 물을 주게 되면 뿌리가 왕성하게 뻗어 나오지 않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정식 초기에는 뿌리가 멀리, 그리고 길게 자라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피복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피복의 재료는 비닐이 일반적입니다. 구할 수만 있다면, 낙엽 등 유기물이 가장 좋습니다. 유기물 멀칭을 시도할 경우 썩는 과정에 있는 재료는 피해야 합니다. 미생물의 활발한 활동으로 열이 나 모종을 다치게 하거나 이 과정에서 왕성하게 질소를 소비함으로써 일시적인 토양의 질소부족(질소기아현상) 때문에 모종의 생육이 부실하거나 더디게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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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달리 어여쁜 홀아비꽃대>


2. 모종을 심는, 바로 그 때


봄 모종은 정식시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더 이상 서리가 오지 않는 날을 택해야 하며, 일교차가 극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비가 온 직후는 피해야 하는 반면 비 오기 직전이 최상의 조건입니다. 상추, 배추 등 엽채류는 서리나 높은 일교차에 버티는 힘이 강한 편입니다만, 고추 등 과채류는 매우 취약합니다. 특히 정식 후 일교차가 15도 이상을 상회하는 날이 지속되면 어떤 농작물이든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선조 농민들은 그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여 조팝나무 꽃이 피고 소쩍새가 울면 파종을 해도 좋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말 그대로 파종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모종을 심는 요즘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모종을 위한 택일을 했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식 바로 전에 모종을 심게 될 밭 곁에 최소한 하루는 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농작물은 그 생애가 수개월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생체시계가 사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따라서 단 하루일지라도 밭의 환경과 기후조건에 적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종판의 좁은 터를 벗어나 마침내 흙속에 뿌리가 묻힐 때 당황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죠. 사람이 뜨거운 목욕탕이나 수영장 물속에 불쑥 들어가지 않는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피복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피복의 목적은 토양의 수분증발을 막고, 일교차에 의한 토양의 온도변화를 최소화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풀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모종에게 수분부족과 극심한 토양의 온도 변화는 치명적이므로 반드시 피복해야 합니다. 가장 편리한 재료는 검은 비닐이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닐은 숨구멍이 없는 소재이므로 기후조건에 따라서는 역으로 수분부족이나 수분과다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한여름에는 비닐 속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작물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른 봄 모종을 심는 시기는 날씨와 기온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계절입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따로 관리할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일단 봄에는 편리하고 구하기 쉬운 검정 비닐을 피복 재료로 쓰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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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거름주기>


3. 모종심기의 정석


우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을 구멍에 먼저 물을 주고 모종을 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흙은 물에 젖으면 물러지고 다시 마를 때에 굳는 성질이 있습니다. 모종과 흙 사이에 벽이 생길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모종을 심은 다음 뿌리를 겨냥해서 물을 주어서는 곤란합니다. 뿌리가 물고 있는 상토가 물에 의해 부서지면 뿌리가 무척 괴롭습니다. 또, 흙으로 퍼져나가기까지 뿌리가 먹어야 할 식량을 씻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종판에서 모종을 미리 꺼내어 심을 자리의 간격에 맞추어 늘어놓지 않아야 합니다. 따가운 봄볕에 이파리가 상할 수 있고, 뿌리의 수분이 급격히 말라 뿌리가 다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해야 할 일입니다. 첫째, 정식 당일 이른 아침에 모종판에 물을 충분히 줍니다. 상토에 수분이 적으면 구멍에서 모종이 잘 빠지지 않거나 상토가 부서질 수 있습니다. 이는 뿌리에 치명적이고 모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둘째, 모종을 심는 깊이는 최대한 상토의 윗선과 일치하도록 합니다. 그보다 깊어 줄기부분이 묻히게 되면 그 자리에서 뿌리가 새로 나오게 됩니다. 있는 뿌리로도 살기 힘든 판에 새 뿌리까지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작물이 잘 자랄 리 없습니다. 반대로 상토 윗선이 흙보다 높게 되면, 상토가 지속적으로 말라 수분부족에 시달릴 뿐 아니라 멀쩡한 뿌리 일부가 고사해버릴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작물을 위기에 빠트리게 됩니다. 셋째, 구멍을 뚫느라 찢어진 비닐의 잘린 부위는 흙으로 잘 덮어줍니다. 이는 비닐 피목 당시의 주의사항과 관련하여 무척 중요합니다. 비닐은 최대한 팽팽하게 그리고 그 안의 이랑과 밀착하도록 씌워야 합니다. 느슨하여 바람이 든 공간이 있다면, 고온이 되는 오후 비닐 안의 공기가 뜨거워지고 바람이 불 경우 뜨거운 공기는 모종 심은 자리의 찢어진 틈으로 새나오게 됩니다. 이 때, 모종이 온몸으로 그 열을 받아야 하는데, 그 온도가 70도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익어버리는 것이죠. 만일 모종을 심을 때에 비닐의 펄렁임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부위를 중심으로 흙을 적당히 얹어 비닐 안에서 뜨거운 공기가 이동하지 못하도록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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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 직전의 토종고추, 수비초>


끝으로 모종을 다 심고 나서 전체적으로 토양의 수분이 부족했다는 판단이 들면, 물을 주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방법을 쓰지 않으면서 물을 줄 수 있습니다. 모종과 모종 사이 뿌리 근처가 아닌 곳의 비닐에 구멍을 뚫고 물을 충분히 흘려 넣어줍니다. 물 준 구멍은 작업이 끝난 다음 흙으로 메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모종 자체와 그 주변의 흙에 수분이 충분하면, 뿌리가 잘 뻗지 않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따라서 물을 과하게 주어 작물의 생육을 더디게 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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