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2-01-17 00:00:32
  • -
  • +
  • 인쇄
기억과 기록

‘파독 간호사’라고 하면 영화 <국제시장>이 생각난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이들. 낯선 땅에서 거구의 환자들을 힘겹게 돌보며 월급을 꼬박꼬박 고국으로 보내는 희생적이고 대견한 한국의 딸들이 그려진다. 가난, 고국, 차관, 희생, 산업화, 파독 광부와 같은 연관 검색어가 떠오를 것이다.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2016. 박경란 지음. 정한책방). 이 책은 파독 간호사 스물한 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들이 들려주는 파독 간호사의 모습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국가사(史) 속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아주 낯설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스무 살 안팎의 한국 여성들이 한복과 고추장을 챙겨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이 책에 실린 구술자 중 20% 정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시장> 속 주인공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독일로 향한다. 가난한 가정형편을 생각해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해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간호사가 됐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파독 간호사가 되기 위해 무거움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나도 자라면서 종종 들었던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을 그들이다.


하지만 가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미래를 선택하기에 이들은 꿈이 많은 청년이었다. 한국에서 온 백의의 천사나 살림밑천 큰딸을 꿈꾸지만은 않았다. 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독일행을 결심하는 상기된 표정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모델을 꿈꾸던 소녀와 외교관이 되어 세계를 누비고 싶었던 소녀는 차선책으로 파독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노래에 재능을 보이며 음악대학에 가고 싶었던 소녀는 간호사로 독일에 온 지 3년 만에 음대에 합격하고 평생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의사가 꿈이었던 소녀도 파독 간호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독일 의과대학에 입학해 꿈을 이뤘다. 스튜어디스, 연기자를 꿈꾸던 소녀들도 꿈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며 용감히 한국을 떠난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파독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 이들도 적지 않다. “(파독 간호사 구인광고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죠. 집을 떠날 유일한 기회일 것 같았어요. 이 지독한 운명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단 말입니다.” “다른 간호사들은 가난 때문에 왔지만 나는 무조건 힘든 가정을 탈출하고 싶었어요. 결혼이나 외국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집을 떠나기 힘들었거든요. 독일이 나에겐 구원이었던 셈이죠.” 아버지의 폭력, 남자형제들과의 차별,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과 불안이 가득한 곳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자신을 위해 파독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지금은 어떨까? 영화에서처럼 파독 광부와 결혼하고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와 다음 세대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준 것에 뿌듯해하는 소시민, 자랑스러운 우리의 어머니로 살고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독일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간 사람들, 독일에 남은 사람들이 있다. 독일 현지에서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에서는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독일에 남아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독일인 남편과 결혼하고 그 2세가 파독 간호사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우간다 출신의 남편을 만나 가족이 모두 아프리카의 에이즈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활동하는가 하면 한국의 중증 암환자를 독일로 이송해 치료를 제공하는 사업에 참여하며 한국을 돕는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한국 문화의 씨앗을 제2의 고향에서 심고 가꾸는 이들도 있다. 한국 무용단을 꾸려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가곡을 들려주고 서예 전시회를 열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쳐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킨 어머니가 되었고, 60세 생일기념으로 마라톤을 완주하는 멋진 60대가 됐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용감한 젊은이들이라면, 이렇게 다양한 꿈을 이루고 여러 색깔의 삶을 살고 있어야지’ 싶었다.


최근에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 기록이 없는 사람들의 역사가 조금씩 관심을 받고 있다. 파독 간호사 개개인의 역사는 국가사의 굵은 줄기와 만나기도 교차되기도 하며 펼쳐진다. 이야기 줄기들이 퍼지며 여러 관점에서 시대를 바라볼 수 있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나와 현재의 사회를 이해하는 창을 열어준다. 이 책은 간호사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에게 추천하려고 한다. 독일로 향하는 선배들을 보며 사막이 펼쳐진 낯선 나라의 간호사로 가려고 준비하다가 할머니에게 들켜 포기했다던 엄마. 엄마와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질 것 같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